줄 서세요!
(원제 : Still Deg I Ko!)
글/그림 크리스틴 로시프테 | 옮김 김배경 | 책속물고기
(발행 : 2014/07/15)
어제는 집 근처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처음 가 봤습니다. 소장 도서는 13,000여권 된다고 하는데 초등학생 꼬마들이 의외로 많이들 이용을 하고 있더군요. 그림책들 뒤적이고 있다 보니 사서분이 아이들에게 무슨 교육 시작하니 어서들 올라가라고 알려 주더군요. 아마도 방과후 프로그램 같은 걸 듣는 아이들이 와서 기다리는 동안 책을 보고 있었나봅니다. 여하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책읽고 있는 꼬마들 모습이 예쁘더라구요.
칼데콧상 수상작 중 몇 권 찾아서 사서에게 갔더니 신간 코너에 눈에 띄는 책이 한 권 있었습니다. 높이는 야트막하고 가로로 넓다란 그림책 “줄 서세요!”입니다.
그림책 “줄 서세요!”는 독특하게 책표지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위의 이미지처럼 책표지 앞뒤를 활짝 펼치면 “거기 원래 제 자리였다고요!”라며 뛰어 오는 아저씨가 한 분 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줄 서세요!
그리고 그 대답이 바로 그림책 제목 역할을 하네요. ^^
여자 아이가 지루한지 엄마에게 보챈 모양입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라고 말해주면서 달래줍니다. 도대체 무슨 줄이기에 이렇게 길게 늘어선걸까요? 가만 보니 맨 앞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카트가 보이네요. 흠… 소문난 소프트아이스크림 집인 걸까요? 궁금해하며 다음 장을 넘겨 보지만 줄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집니다.
우리 차례가 될 때까지 얌전하게 기다려야 한단다.
이번엔 사내 아이를 달래는 엄마가 보입니다. 얌전하게 엄마 말 듣고 있는 사내 아이와는 달리 남편을 닥달하는 중년 부인도 보이는군요. 아줌마는 남편에게 “돈 주고 다른 사람한테 대신 서라고 해요.” 라면서 궁시렁 거리고 있어요. 신종 알바가 탄생하는 순간인가요?
이번엔 훈훈한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아가씨들, 급해 보이는 뒷 사람에게 자기 차례를 양보하는 아주머니의 모습. 놀이공원에서 지루하게 자기 차례를 기다려 본 경험이 있는 우리 아이들이라면 이 장면 보면서 ‘아, 줄 서는 게 마냥 지루하기만 한 일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해 보며 피식 웃음 지을 수도 있겠네요.
반면 줄이 길어지다 보면 뻔뻔한 사람들도 나타나기 마련이죠. “할머니, 자리 좀 비켜 주실래요? 할머니는 시간이 많으시잖아요.”라며 할머니께 무례하게 구는 남자말입니다. 할머니의 대답이 아주 멋집니다.
“이보게, 젊은이.
나한테 제일 부족한 게 시간이라우.”
이 대목만 따로 떼어 내도 그림책 한 권이 나올 법한 주제 아닐까요? 할머니의 대답이 참 철학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평소에 할머니 할아버지들 바라보면서 ‘참 여유롭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그 분들 입장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야만 남은 여생 후회 없이 보내실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그나저나 이 사람들 모두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게 뭐냐구요? 그걸 알려 드리는건 비매너 스포일러겠죠? ^^ 이번 주말엔 아이와 함께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 보세요. 서울 사는 분들은 ‘서울시 도서관 지도‘를 참고 하셔도 좋구요. ‘작은도서관‘ 통합 홈페이지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 보셔도 좋습니다.
질서와 평등
도대체 뭘 기다리는 줄일까? 도대체 줄이 끝나기는 하는 걸까?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음 장엔 답이 나오겠지’ 하는 기대와 함께 책장을 넘겨 보지만 줄은 끝도 없습니다. 하지만 줄을 선 채로 기다리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은 자연스레 사회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약속 한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바로 ‘질서’라는 약속 말입니다. ‘질서’엔 수많은 약속들이 담겨 있지만 그 중 가장 기본은 바로 ‘줄 서기’ 아닐까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줄을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계급이 아주 높아 보이는 군인, 왕관을 쓰고 있는 임금님 등 우리 사회에서 소위 ‘특혜’라는 걸 주장하곤 하는 사람들도 끼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책 속에서 그들은 나란히 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차분히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의 마음 속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심어져야 하는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요?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이야말로 바로 질서의 본질일테니까요.
쓸 데 없는 호기심 ^^
Q. 줄 서 있는 사람은 모두 몇 명일까요?
A. 모두 227명입니다. 청소년을 포함한 성인이 216명, 어른과 동반한 아이가 11명입니다.
Q. 사람들이 서 있는 줄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요?
A. 약 134M 정도 됩니다. 1명이 차지하는 길이를 성인은 60Cm, 아이는 40Cm, 그리고 중간에 휠체어를 탄 사람 1명이 있었는데 이 분은 120Cm 로 정했습니다. 아래와 같이 계산하면 줄의 길이는 약 134미터입니다. 성인 1명이 빠졌다고요? 잘 찾아 보시면 친구끼리 장난을 치는 건지 아니면 연인 사이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둘이 꼭 끌어안고 있는 두 명이 있답니다. 이 두 명은 한 명으로 계산했습니다. ^^
(214 × 0.6) + (11 × 0.4) + (1 × 1.2) = 134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