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숲을 기억해요
책표지 : 노란상상
나무는 숲을 기억해요 (원제 : De cómo nació la memoria de El Bosque)

글/그림 로시오 마르티네스 | 옮김 김정하 | 노란상상

 ※ 2006년 멕시코 ‘바람 끝에서 상‘ 수상작


로시오 마르티네스는 스페인에서 활동중인 그림책 작가입니다. 국내에 소개된 책은 오늘 소개할 “나무는 숲을 기억해요”와 “무지개 전사호 이야기” 두 권입니다. “나무는 숲을 기억해요”는 숲과 나무를, “무지개 전사호 이야기”는 바다와 고래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그림책으로 두 권 모두 자연 보호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번역을 맡은 김정하는 스페인어로 된 좋은 책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콜롬비아 내전으로 아빠를 잃은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집으로 가는 길” 역시 김정하가 번역한 그림책입니다.

나무는 숲을 기억해요

옛날 아주 먼 옛날 어느 숲 속에 나무꾼이 살았대요. 나무꾼은 숲을 사랑했답니다. 숲과 나무는 늘 더위와 바람을 막아주며 나무꾼을 보호해 주었으니까요. 나무꾼의 아버지도 나무꾼이었고, 나무꾼의 아버지의 아버지도 나무꾼이었대요. 나무꾼은 아버지에게서 배웠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숲을 사라지게 한다는 것을

‘오직 사람만이 숲을 사라지게 한다’ 라는 말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숲은 늘 사람에게 베풀지만 우리는 그 고마움과 소중함을 쉽게 잊는다는 뜻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베어낼 줄만 알고 돌볼 줄 몰라 종종 숲을 잃게 된다는 또 하나의 뜻 말입니다.

나무는 숲을 기억해요

하지만, 나무꾼은 선대에서 배운 가르침을 잊지 않고 숲을 정성껏 돌 불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해 나무꾼은 숲에 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정성껏 가꾸었어요.

모래시계에서 쏟아지는 모래, 손바닥 안의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잎이 무성해지면서 한 그루의 어엿한 나무가 되고, 그 나무가 숲을 이루는 모습, 나무꾼의 수염이 점점 길어지고, 달이 차고 기우는 모습들이 담긴 그림을 통해 숲과 사람이 더불어 살며 서로의 삶과 역사를 주고 받는 모습이 그림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나무는 숲을 기억해요

나무꾼은 자신이 심은 나무가 좋은 목재로 쓰기에 충분할만큼 자라자 나무를 자르고 손질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기억을 더듬어 소박한 탁자를 만들었습니다. 이젠 탁자가 되어 나무꾼의 집 안에 자리 잡았지만 숲에서 자라던 지난 시간과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변함 없이 나무꾼과 함께 나이를 먹어 갔죠.

나무꾼은 탁자에서 밥을 먹고, 웃고, 카드놀이를 하며
도란도란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어.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어.
그리고 탁자에 기대어 숲을 바라보며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어.

나무꾼의 아들은 탁자를 볼 때마다 자신의 아버지가 보고 싶어 견디기가 힘들었대요. 그래서 그 탁자를 빵 가게 주인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또 흐르고 흘러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빵 가게 주인은 탁자를 우유 짜는 아저씨에게 줬어요. 또 시간이 흘러 우유 짜는 아저씨도 늙어서 더는 일을 할 수 없어져서 이번엔 가게 주인에게 탁자를 줍니다. 가게 주인은 가게가 점점 번창하면서 더 큰 탁자를 사고 낡은 탁자는 조카에게 줍니다. 조카는 그 탁자를 새로 예쁘게 칠하곤 그 위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곤 했어요. 그러다 조카의 집에 불이 나서 모든게 다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무꾼이 만들었던 그 탁자는 불에 까맣게 그을리고 다리도 삐딱해져서 볼품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어요. 더 이상 아무도 탁자를 원하지 않았고 결국엔 쓰레기 신세가 되었어요.

나무는 숲을 기억해요

그러던 어느 날 젊은 부부가 탁자를 발견하곤 집으로 가져가서 깨끗이 닦고 칠도 새로 해 주었어요. 자그마한 자기들 집에 맞게끔 삐딱했던 다리도 가지런히 잘라 낸 탁자는 젊은 부부의 집에 있는 유일한 가구가 되었습니다. 부부는 탁자에서 밥을 먹고, 글을 쓰기도 하고, 또 예쁜 딸과 행복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죠. 먼 옛날 나무꾼이 그랬던 것 처럼 말입니다.

나무는 숲을 기억해요

또 다시 길고 긴 시간이 흘러서 젊은 부부와 탁자에 앉아 행복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그 예쁜 딸이 그 탁자를 물려 받았죠. 딸은 우연히 나무꾼이 살던 숲 근처에 가서 살게 되었어요. 탁자는 까마득한 옛날 자신을 자라게 했던 산들바람과 숲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어요.

어느 날 낡은 탁자는 아주 조그만 싹을 틔웠어.
딸은 옛날 나무꾼이 했듯이 정성껏 가꾸었어.

부부의 딸은 알게 되었어.
오직 사람만이 숲을 사라지게 하고
또 숲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딸은 종이와 연필로 낡은 탁자와 숲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냈습니다. 훗날 이 책을 읽은 딸의 아이와 손자와 그 손자의 아이들이 숲이 전하는 이 놀라운 기적을 기억하도록 말이죠.

나무와 사람이 얽히고 설켜 끝없이 돌고 돌며 순환되는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삶이고, 우리가 살아온 자연과 지구의 역사 아닐까요? 나무와 숲, 자연이 베풀어 주는 선물의 소중함을 배우고 우리 역시 자연을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함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긴 그림책 “나무는 숲을 기억해요”, 아직 못 본 분들은 꼭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나무는 숲을 기억해요”에서 로시오 마르티네스는 다양한 그림들이 모여 한 장의 그림을 이루는 형식으로 각 장면들을 독특하게 구성했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식탁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거치며 그속에 그들의 삶과 세월의 흔적이 깃들어 있음을 그림 한 장 한 장에 담아내려는 그의 의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모자이크 같기도 하고 오래된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는 것 같기도 한 그림들은 작가가 글로 다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려 주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모든 페이지는 위의 그림들에서 본 것처럼 동일한 패턴의 구성이 반복됩니다. 왼쪽 페이지엔 나무의 현재 상태를 알려 줍니다. 싹이 트길 기다리는 시간을 담은 모래시계의 모습으로, 바람과 땅의 향기를 맡고 자라던 시절의 어린 나뭇가지의 모습으로, 갓 만든 매끈한 탁자에서 세월의 풍상을 겪으며 낡고 닳아 가는 탁자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오른쪽 페이지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무의 모습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작가는 이런 독특한 구성으로 나무가 처음 숲에 심어지던 날부터 베어져 식탁이 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간 끝에 버려지고, 새로운 싹을 틔우기까지의 모든 이야기들을 풀어갑니다. 나무꾼이 심은 씨앗에서 모든 역사가 시작되었고, 나무는 또 다시 숲으로 돌아가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되듯 돌고 도는 우리의 삶과 위대한 자연의 순환을 표현하려는 것 처럼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래 그림처럼 이 그림책의 모든 장면을 하나의 그림으로 재구성해보니 마치 인류의 대서사시를 담은 오래된 벽화처럼 느껴집니다.

나무는 숲을 기억해요

△ “나무는 숲을 기억해요”의 그림들을 이야기 순서대로 이어 붙인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