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초상화
책표지 : 이야기꽃
엄마의 초상화

글/그림 유지연 | 이야기꽃


화사한 모자를 쓰신 엄마의 발그스레하게 물든 두 뺨, 소녀적 감성이 그대로 살아있는 듯한 엄마의 모습 속에 설레임이 느껴지는 그림책 표지와 마주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마주 하게 되는 사람, 엄마.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하게 되는 말 역시 엄마. 내가 필요한 모든 곳에 늘 공기처럼, 물처럼 함께 존재 하신 분 엄마, 그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엄마의 초상화

나는 엄마를 그리고 있어요.
엄마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누군가 미영 씨를 그리고 있어요.
미영 씨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두 개의 손이 각각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 손은 엄마를 그리고 있고, 다른 한 손은 미영 씨를 그리고 있네요.

아직 세밀하게 그려진 것은 아니지만 대략의 선이 나와있어요. 검은 손이 그리는 엄마는 우리들에게 익숙한 언제나 편안하고 익숙한 모습 꼬불꼬불 파마 머리의 엄마의 모습이 나올 것 같아요. 하지만 파란 스웨터를 입은 손에서 시작되는 ‘미영 씨’는 모자를 쓴 한 여인이 그려지고 있는듯 합니다.

그림 속 두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리고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엄마의 초상화

익숙한 엄마의 모습 속에는
낯선 미영 씨도 살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왼쪽의 엄마와 오른쪽의 미영 씨는 같은 사람입니다. 나에게 가장 익숙한 ‘엄마’ 속에 살고 있는 낯선 ‘미영 씨’. 하지만 같은 사람이라고 하기엔 두 사람의 모습이 많이 다릅니다.

곱게 차려 입고 그림 테두리를 뚫고 나오려는 듯한 미영 씨의 팔에서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머물며 우리를 기다리는 엄마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생동감느껴집니다. 미영 씨의 눈빛에는 설레임이 담겨 있어요. 마치 나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모습으로요.

그런 미영 씨를 부러운듯 바라 보고 있는 왼쪽의 엄마는 우리에게 익숙한 엄마의 모습입니다. 아무런 색깔이 없는 엄마의 모습, 그저 집의 풍경처럼 존재하면서 늘 같은 자리에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언제라도 내가 부탁하는 일이며 우리 가족이 떠맡기는 일들을 말 없이 해주실 것 같은 그런 엄마의 모습으로 말이예요.

우리에게 엄마는 익숙한 존재지만 ‘미영 씨’라는 엄마의 이름으로 불려질 때 웬지 모를 낯선 존재가 되는 듯 합니다. 엄마가 미영 씨고, 미영 씨가 엄마인데…… ‘엄마’의 모습과는 달리 ‘미영 씨’는 왜 낯설게만 느껴지는 걸까요?

엄마의 초상화

내가 아는 엄마의 모습 뒤엔
상상치도 못할 미영 씨가 있을지도 몰라요.

가슴 찡해지는 장면입니다. 엄마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 외에 엄마 자신만의 그 무엇, ‘미영 씨’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왜 해본적이 없을까요? 그저 우리만 기다리고 바라보며 사는 엄마가 아니라, 활기차고 자신에 찬 모습으로 언제라도 날개를 달고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향해 나비처럼 훨훨 날아갈것만 같은 미영 씨의 모습이 엄마 뒤에 숨겨져 있음을 왜 우리는 모르고 있었을까요?

엄마의 초상화

엄마는 우리가 편히 쉴 수 있는 집이지만
미영 씨는 집이 아니고 싶을 때도 있을 테니까요.

책장을 펼치면 마주하는 왼쪽과 오른쪽의 그림이 대조를 이루며 ‘엄마’와 ‘미영 씨’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림책은 전개 됩니다. 그림 왼편은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엄마의 하루가 단조롭고 어두운 색상으로 그려지는 반면, 오른 쪽 미영 씨는 화사하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가족을 기다리며 텔레비전을 보다 잠든 엄마, 생선 머리만 먹는 엄마, 집안 일에 치여 울퉁불퉁한 발을 가진 엄마…… 하지만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서 미영 씨인 엄마는 재미있고, 두려움을 모르는 탐험가이며, 꽃을 찾아 떠나고 싶어하는 나비와 같은 존재입니다.

엄마으 초상화

그림 그리는 딸이 자랑스럽지만 미영 씨는 딸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딸이 그려준 초상화 속에는 ‘미영 씨’의 모습이 아니라 그냥 ‘엄마’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거든요. 미영 씨는 딸이 그린 엄마의 초상화를 슬며시 내려놓았어요.

딸이 그린 그림 속 ‘엄마’의 모습이 엄마 가슴 속에 잠자던 ‘미영 씨’를 깨웠는지도 모르겠네요. 여행을 꿈꾸었던 엄마는 드디어 결심을 했어요. ‘엄마’가 아닌 ‘미영 씨’가 되어 꿈꾸던 세상으로 떠나보기로요. 화사한 핑크 빛 여행 가방에 줄무늬 치마, 엄마의 가슴 속 열정이 담긴 듯 빨간 가방을 메고, 예쁘게 화장도 한 ‘미영 씨’ 모습으로 말입니다.

엄마의 초상화

꿈에 그리던 여행을 떠난 미영 씨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그 곳에서 만큼은 엄마로 살지 않아도 되었거든요. 미영 씨는 날개를 달고 세상을 날아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곳에서 자유롭게 춤도 추고 노상 까페에 앉아 차도 마시며 재미있는 사람이 되어 봅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미영 씨의 마음에 쏙 드는 초상화도 얻었답니다. 뽀얀 얼굴에 생기 있게 화장도 하고 세련된 의상으로 한껏 꾸민 미영 씨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초상화를요.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엄마와 화가의 모습 찾으셨나요? 첫 장에 그려진 두 개의 초상화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리는 순간입니다. 왼쪽 그림은 딸이 그려준 그림이고, 오른쪽 그림은 바로 여행지에서 만난 길거리 화가가 그려준거였군요.

딸이 그려준 ‘엄마의 초상화’와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이름 모를 화가가 그린 ‘미영 씨의 초상화’는 같은 사람을 그린 그림이지만 전혀 같지 않습니다. 딸이 그린 초상화에는 세월을 지내온 엄마의 모습이 담겨 있지만, 길거리 화가가 그린 초상화에는 꿈과 설레임 가득한 개성 넘치는 여성이 그려져 있습니다.

엄마의 초상화

여행에서 돌아온 엄마의 방에는 두 개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딸은 액자조차 검정색으로 만들어서 가져다 줬나봅니다. 하지만 미영 씨의 초상화는 분홍색 액자 속에 걸려 있습니다. 엄마가 손수 고른 액자겠죠? 엄마가 살아가고픈 삶의 색깔로 말입니다.

엄마의 방엔 엄마와 미영 씨가 공존합니다. 딸이 그려준 것과 길거리 화가가 그려준 두 개의 초상화가 나란히 있듯이 말입니다. 위 그림에서 엄마의 것과 미영 씨의 것을 골라보세요. 늘 그자리에 계시겠지란 생각에 우리 엄마에게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심했었는지 돌아보게 되는 좋은 방법 아닐까 생각됩니다. 알록달록 화사한 나비, 창밖에서 지저귀는 새, 화사한 꽃무늬 셔츠… 어두침침하고 후줄근한 엄마의 방에 화사한 젊은과 희망을 꿈꾸는 열정을 되돌려 드려야겠습니다.

둘은 서로 다르게 생겼어요.
하지만 하나 뿐인 우리 엄마, 미영 씨 입니다.

엄마의 초상화“가 첫번째 창작 그림책이라는 유지연 작가는 ‘익숙한 엄마의 모습을 되새기고 그 이면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조금이나마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이렇게 찡하게 풀어간 그녀의 그림책은 벌써부터 다음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네요.

세상 모든 엄마들이 엄마를 생각하며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그림책 “엄마의 초상화“는 가슴이 찡해지고 코끝이 시큰해지는 그림책입니다. 존재만으로도 거룩하고 아름다운 세상 모든 엄마에게 바치고 싶은 노래, 바로 “엄마의 초상화“입니다.


작가의 말

미술대학 시절 전시 소재를 찾던 중, 엄마를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료도 평소와 다르게, 작업방식도 새롭게 해서 나름 만족스러운 엄마의 초상화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 달리 엄마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몇 달 뒤 엄마는 여행지에서 새 초상화를 그려왔고 액자까지 만들어 걸어 놓았습니다. 내가 그린 초상화는 창고 한구석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 엄마에게도 엄마이기 이전에 독립된 자아가, 여자가 존재했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왜 엄마가 내 초상화를 싫어했는지에 대한 답을 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두 개의 초상화에 대한 이야기를 가슴에 품게 되었습니다. 또 몇 년이 흘렀고, 결혼하여 집안 살림을 꾸려 가며 조금씩 엄마의 수고와 희생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친정에 가니 내가 그린 엄마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걸 보며 다시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왜 내 초상화를 싫어했는지가 아니라, 왜 새로운 초상화를 원했는지를.

엄마를 이해하기엔 난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아니 평생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또 다시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에서야 다시금 그리게 된 엄마의 초상화를 말이지요. 새로운 초상화를 엄마가 좋아할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 미영 씨는 ‘예측불가’이거든요.

– 출처 : 이야기꽃 출판사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