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글/그림 박연철 | 시공주니어
(발행 : 2007/04/15)

※ 2007년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선정작


잔소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엄마가 세상에 있을까요? 하루종일 아이 곁에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본의 아니게 잔소릴 늘어 놓다 때로는 회유와 협박까지 하게 되는 엄마.  이럴때 엄마의 회유와 협박을 도와주는 사람이 세상에 딱 두 분 계신데요. 혹시 알고 계신가요? 힌트를 드리자면 두 분 모두 남자고 할아버지입니다. 한 분은 토종 한국인, 다른 한 분은 외국인인데…… 눈치 채셨다구요? 맞아요, 바로 망태 할아버지와 산타 할아버지입니다.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는 엄마 아빠 추억 속 망태 할아버지를 모티브로 만든 그림책이예요. 아이에게 다가오는 검은 손은 누구의 손일까요? 눈을 동그랗게 뜬채 무서움에 바르르 떨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담긴 표지 그림이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말 안 듣는 아이를 잡아다 혼을 내고, 우는 아이 입을 꿰매 버리고, 떼쓰는 아이 데려다 새장 속에 가두고, 밤늦도록 안 자는 아이 올빼미로 만들어 버린다는 망태 할아버지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나요?

음, 저는 어린 시절 많이 들어봤는데…… 요즘 아이들도 망태 할아버지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아이 서넛은 거뜬하게 들어갈 만큼 커다란 망태를 둘러메고 커다란 집게를 딱딱 거리며 돌아다니다 말 안 듣는 아이, 밥 안 먹는 아이를 집게로 집어 망태에 넣어 잡아간다는 이야기.(말 안 듣는 아이는 제 동생, 밥 안 먹는 아이는 저였어요…^^) 그 시절엔 실제로 망태를 둘러메고 다니는 분들을 흔히 볼 수 있어서 그 무서움은 더 크게 다가왔죠.

그런데 망태 할아버지가 저렇게 많은 종류의 아이를 다 잡아 간다니, 망태 할아버지의 레이다 망에 걸리지 않을 아이가 있긴 있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많은 말썽꾸러기들을 다 잡아다 망태 할아버지는 도대체 무얼 하는 걸까요?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망태 할아버지는 나쁜 아이들을 잡아다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만들어서 돌려보낸대요.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어느 순간 일제히 같은 표정 같은 자세로 걸어나가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 보면 등 뒤에 동그라미 도장이 찍혀있는 것이 보여요. 착한 아이가 되면 망태 할아버지가 저렇게 도장을 찍어주고 집으로 돌려보내 주나봐요. 하지만 아이들 표정이며 몸짓이 왠지 부자연스러워 보이네요.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엄마에게 망태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망태 할아버지가 무서워 죽을 지경입니다. 아이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엄마는 툭하면 이렇게 소리치셨어요.

“너, 자꾸 거짓말 하면 망태 할아버지한테 잡아가라고 한다.”

커다란 엄마, 아이를 향해 길어진 팔, 망태 할아버지가 무서운 아이는 구석에 몰린 채 작아질 대로 작아졌어요. 아이는 벌을 서면서 생각해도 억울해 죽겠습니다. 꽃병을 깨지 않았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더러 거짓말쟁이라 몰아붙인 엄마, 게다가 엄마도 거짓말 하는거 열 번도 더 봤는데 자기한테만 그런다구요. 뭐 그래도 망태 할아버지가 무섭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요.

엄마가 망태 할아버지를 부르는 건 이뿐만이 아니예요. 밥 빨리 먹지 않는다고, 늦게까지 자지않는다고, 걸핏하면 망태 할아버지를 부른대요. 엄마도 밥 안 먹으면서, 엄마도 늦게 자면서 맨날 나한테만……

분명 엄마도 잘못하는게 있는데 왜 망태 할아버지는 맨날 아이들만 잡아가는 걸까요? “엄마, 자꾸 그러면 망태 할아버지한테 잡아가라 그런다!” 이럴 수는 없는 걸까요?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겨우 아홉시인데 들어가 자라는 말에 아이는 화가나서 엄마한테 따졌어요.

“어서 들어가 자!”
“엄마도 안 자잖아.”
“얘가 어디서 말대꾸야. 엄마는 어른이잖아!”
“그런게 어디 있어!”
“너, 망태 할아버지한테 당장 잡아가라고 한다.”
“엄마 미워!”
난 너무 화가 나서 크게 소리쳤어.

겨우 아홉시, 세상에 재미난 게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벌써 들어가 자라니…… 씩씩대는 아이에게 ‘어디서 말대꾸야. 엄마는 어른이잖아’ 라는 억지에 이어 망태 할아버지 소환술까지 쓰려는 엄마, 화가난 아이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아이의 그림자가 아주 커다랗게 변했습니다.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엄마보고 밉다 소리치고 화가 난 채로 방으로 돌아가 누웠는데…… 바로 그 때 문 밖에서 들리는 으스스한 소리, 아이는 혹시나 망태 할아버지가 잡으러 왔을까 봐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었어요. 스르륵 스르륵 무서운 소리는 계속 되고……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아이는 침대에서 덜덜 떨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커다란 무시무시한 검은 그림자가 “너 잡으러 왔다!”하고 소릴 쳤죠. 그리곤…… 엄마를 잡아 갔어요. 아이가 아닌 엄마를 말이예요.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엄마!” 하고 소리치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보니 아이는 꿈을 꿨던가봐요. 엄마는 달려와 아이를 꼭 안아주었어요. 시종일관 무채색이던 배경 화면이 밝은 노랑색으로 변했습니다. 눈물이 맺힌 채 엄마에게 꼭 안긴 아이, 자신이 망태 할아버지에게 잡혀가는 것도 무섭지만 엄마가 잡혀가는 것도 무서웠던 모양이네요.

“엄마 여기 있어. 이제 괜찮아.”
“엄마, 아까 화내서 미안해.”
“엄마도 미안해.”

난 이제 망태 할아버지가 하나도 안 무서워.

‘엄마 미워!’ 하고 소리쳤던 아이가 망태 할아버지에게 엄마가 잡혀가는 꿈을 꾸고 나서 엄마와의 사랑을 다시 확인한다는 훈훈한 마무리구나 싶은 순간, 마지막 남은 페이지가 엄청난 비밀을 말없이 보여줍니다. 아이를 꼭 안아주고 있는 엄마의 뒤태에 숨은 반전을 놓치지 말고 꼭 살펴 보세요. ‘난 이제 망태 할아버지가 하나도 안 무서워.’라고 말했던 아이의 말 뜻에 담긴 비밀이 마지막 페이지에 담겨있거든요.

검은색과 갈색을 주로 사용한 무채색의 그림은 망태 할아버지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불안에 떠는 아이의 맘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디서 말대꾸야’, ‘엄마는 어른이잖아’, ‘너, 망태 할아버지한테 당장 잡아가라고 한다’는 식으로 나약하고 여린 존재인 아이를 을러대고 겁주는 어른들. 이 그림책은 마지막 반전을 통해 아이들에게는 통쾌함을, 어른들에게는 오싹함을 선사합니다. 아마도 이 책을 읽고나면 망태 할아버지를 무서워할 아이들이 없어지지 않을까요. (망태 할아버지 팬클럽이 생길지도 ^^) 상상을 뒤집는 작가의 통통 튀는 센스에  읽는이 모두가 한바탕 웃게 되는 그림책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옛이야기를 모태로 독특한 일러스트와 신선한 스토리를 가진 그림책을 만들어 온 박연철 작가는 “어처구니 이야기“, “떼루떼루”,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 등의 작품을 통해 친숙하면서 재미있고 신선한 그림책을 선보인바 있습니다. 그의 그림책을 볼 때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0 0 votes
Article Rating
알림
알림 설정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모든 댓글 보기
0
이 글 어땠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