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
책표지 : 문학동네
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 (원제 : Le Grand Livre De La Bagarre)

다비드 칼리 | 그림 세르주 블로크 | 옮김 정혜경 | 문학동네


코에는 커다란 반창고, 한 쪽 눈썹 실종, 얼굴은 상처에 멍투성이, 한 쪽 귀는 너덜너덜, 팔에는 깁스, 다 뜯어진 옷, 분명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누군가와 크게 한 판 싸운 듯 한데, 몸 상태와 달리 해맑게 빙그레 웃고 있는 아이의 표정…… 저 웃음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물을 보는 눈, 사건을 보는 눈이 남다른 다비드 칼리의 그림책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적”이라는 그림책을 통해서였어요. 그림책 “적”이 전쟁의 본질을 명쾌하게 그려낸 책이라면 이 그림책 “싸움”은 싸움의 실체와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

쉬는 시간이다.
그리고 쉬는 시간은 언제나
싸움판이다!

우당탕 꽈당, 꽥! 으윽, 팍!, 쾅…… 초등학교 교실 풍경으로 보이네요. 쉬는 시간마다 전쟁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팔, 다리, 표정이 강조된 그림, 온갖 시끄러운 소리들, 장난인지 싸움인지 한바탕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싸움에 대한 아이들의 눈높이식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싸움은 언제 시작된 걸까?

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

첫번째 질문은 싸움의 기원에 관한  ‘도대체 싸움은 언제 시작된 걸까?’ 입니다. 매머드 등짝 위에서 곤봉을 들고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 짐작이 되지요? 인류 최초의 싸움은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왜 싸웠는지는 짐작해 볼 수 있다는 말과 함께 그려진 매머드 등짝 위에서의 싸움은 ‘내 거야!’ 때문이라는 사실.

시간이 흘러 인류는 진화했지만 싸움에 관해서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답니다. 왜냐구요?

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

싸움은 여전히 사소한 일로 시작되기 때문이예요. 변한건 구실 뿐이죠! ^^

교실에서 시작된 두 아이의 싸움은 4색펜 때문! 매머드를 차지하기 위해 싸웠던 일백만 년 전과 그리 달라진 게 없죠?^^ 보여달라는 자와, 보여주지 않겠다는 자, 그들의 강한 의지, 못된 눈빛, 앙다문 이, 꽉 쥔 주먹은 이제 막 시작될 싸움의 서막입니다.

좋은 싸움의 순기능과 기대 효과

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

혹시 싸움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생각하나요? 싸움은 팔다리 관절 단련, 혈액 순환 촉진, 산소의 원활한 공급, 위장 단련 등 순기능을 가지고 있어요. 좋은 싸움은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될만큼 완벽한 훈련이기도 하다는 말에 킥킥 웃으며 끄덕끄덕 공감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네요.^^ 싸우고 나서 엄마에게 혼나기 직전 이 말을 잘 외워두었다가 써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엄마, 싸운게 아니라 형과 혈액 순환 촉진 운동을 하고 있었어요.’ 라구요. ) 하지만 그러려면 싸우고 나서 절대 울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겠네요. ^^

싸움의 진정한 의미 : 진정한 싸움의 조건

싸움에는 여러 유형이 있지만 진정한 싸움을 위해서라면 똑같은 키, 똑같은 몸무게(?), 똑같은 수로 싸워야 하며 ‘진정한 싸움은 놀이가 되지만, 싸움에 증오가 생겨나게 되면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 라는 메세지. 어른들이 하는 싸움인 레슬링 같은 것은 재미로 하는 스포츠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전쟁이 될 경우는 별로 재밌지 않다는 뼈가 담긴 한 마디는 뜨끔하기까지 합니다. 듣고 있나? 전쟁광들!

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

싸움의 끝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보통 해 지기 전까지, 때때로 선생님이 오시거나, 눈에 모래가 들어가거나, 누군가 싸움 중에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는 잠시 싸움을 끝내야 한다는 암묵적 약속 역시 싸움에 빠져서는 안되는 중요한 규칙입니다.

이유나 구실이 어찌 되었건 진정한 싸움에는 ‘재미’ 가 들어가 있어야 하며, 양쪽 ‘힘의 균형’ 이 맞아야 하고 싸우는 도중에도 ‘상대편에 대한 배려’ 를 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읽다보면 폭력이 동원되고, 일방적이며 처음부터 균형이 맞지 않는 싸움은 진정한 싸움이 아니다는 것을 제대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

자, 그림책 표지 속 꼬마가 다시 등장했네요. 조금(?) 다치긴 했지만 이것들은 친구들 사이에서 나를 돋보이게 하는 훌륭한 트로피가 될것입니다. 특히나 친구들이 싸우는 것을 못 본 경우는 더 부풀려 싸움을 이야기 할 수 있죠.^^ 위에 열거한대로 싸움이 정의로웠다면 부풀려 말하는 것쯤이야~

그런데, 이렇게 피 터지게 싸우고 나서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거의 없어요. 왜냐, 이유가 사소했으니까…^^

매머드를 차지하려고 싸우기 시작한 100만 년 전 원시 인류부터, 쉬는 시간 마다 벌어지는 초등학교 교실의 엉망진창 난장판 싸움, 그리고 국가 대 국가가 벌이는 전쟁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싸움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싸워야 비겁하지 않게 정의롭게 이길 수 있는지, 싸움의 장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까지 조목조목 알려주는 이 책의 위대함!

공명정대하게 싸운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가슴 후련함은 읽는 이에게 유쾌함과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웃으면서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다보면 오히려 여러 생각과 마주하게 되는 책이네요.

짤막짤막한 문장 속에 어김없이 발휘되는 유머와 시니컬함 속에 싸움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 “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 부디 이 책을 읽은 모든 사람들은 꼭 이대로, 이 속에 든 말을 곱씹고 곱씹어 싸움이 천박해지지 않도록, 싸움이 비겁해지지 않도록, 제대로 정의롭게, 멋지게 잘 싸울 수 있게 되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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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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