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 : 2015/04/14
■ 마지막 업데이트 : 2020/07/25


어니스트 섀클턴
어니스트 섀클턴 – 남극 탐험을 향한 멈추지 않는 도전

(원제 : Shackleton’s Journey)
글/그림 윌리엄 그릴 | 옮김 이은숙 | 찰리북
(발행 : 2014/12/20)

가온빛 추천 그림책
※ 2014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 선정작
※ 2015년 케이트 그린어웨이상 수상작

※ 윌리엄 그릴 홈페이지 : williamgrill.co.uk


우리가 자랄 때는 어니스트 섀클턴의 이름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늘 아문센스콧을 비교하는 이야기들뿐이었으니까요.

아문센과 스콧의 이름은 늘 붙어다닙니다. 최초의 남극점을 정복한 아문센, 아쉽게 한 달 늦게 도착한 스콧. 뿐만 아니라 아문센은 남극점 탐험 후 무사히 귀환하지만 스콧은 돌아오는 중에 조난을 당해 사망합니다. 덕분에 자기계발서에서 이 두 사람은 자주 비교되곤 합니다.

승리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며, 사람들은 이를 ‘행운’이라고 한다.패배는 미리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찾아오며, 사람들은 이를 ‘불운’이라고 한다.

– 로알 아문센

아문센의 이 유명한 말을 인용해 가면서 두 사람의 차이는 ‘철저한 준비’에 있었다고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입니다(참고 : 위대한 기업의 선택, 짐 콜린스, 김영사, 2012). 경영전략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는 짐 콜린스가 한 말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말을 위한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스콧이라고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았을 리 없죠. 개개의 관점에서야 성공과 실패로 갈리지만 인류의 역사라는 커다란 관점에서 보면 모두가 하나의 과정일뿐입니다.

어니스트 섀클턴

그런데, 요즘은 남극점 정복에 성공한 아문센과 스콧보다 더 유명한 이름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그림책의 제목이기도 한 바로 “어니스트 섀클턴”입니다. 그의 이름에 ‘위대한 실패’ 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섀클턴은 남극점을 155Km 남겨두고 식량 부족 등의 이유로 탐험을 포기하고 생환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남극의 혹한 속에서 634일을 견뎌내고 스물여덟 명의 대원 중 단 한 명도 잃지 않고 모두 무사히 귀환합니다. 비록 남극점 정복엔 실패했지만 영국 국왕으로부터 ‘경’의 칭호를 받았으며, 리더십의 훌륭한 모델로 많은 책들에 인용되고 있습니다.

윌리엄 그릴의 멋진 그림과 함께 위대한 여정을 따라가 볼 수 있는 그림책 “어니스트 섀클턴”은 남극 종단 탐험을 위한 준비 과정부터 그들의 탐험과 생환 경로가 담긴 지도들, 끝도 없는 얼음 대륙 위에서 벌인 그들의 처절한 생존의 노력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그림들로 가득합니다.

어니스트 섀클턴

스물여덟 명의 대원들. 얼핏 보면 27 명이지만 맨 마지막 대원 아래 설명을 자세히 보면 밀항자가 한 명 더 있습니다. 정식 대원 스물일곱 명과 밀항자 한 명, 이렇게 해서 모두 스물여덟명의 대원이 남극 종단 탐험 길에 오릅니다.

어니스트 섀클턴

캐다나에서 보내온 아흔아홉 마리의 개들 중에서 섀클턴은 예순아홉 마리를 고릅니다. 그리고 한 마리 한 마리에게 모두 이름을 지어줬다고 합니다. 아문센 같은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 주기도 하고, 탐험대원들의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는군요.

탐험대원들은 각자 한 마리 이상의 개를 돌봤다고 해요. 아마도 탐험 중 대원들과 개들 사이에 강한 유대감을 위해서였겠죠?

어니스트 섀클턴

인듀어런스(endurance. 인내) 호는 원래 관광 유람선으로 만들어진 것을 이번 탐험을 위해 더욱 튼튼하게 보강하고, 남극의 상황에 맞는 다양한 개조를 거쳐 재탄생했다고 합니다. 인듀어런스라는 이름은 섀클턴 집안의 가훈인 ‘우리는 인내로 정복한다’ 에서 따왔다고 해요.

아문센이 남극점 정복시 탔던 배 프램 호와 인듀어런스 호는 당시 나무로 만든 배들 중에서는 가장 튼튼한 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똑같이 남극 탐험에 나섰지만 두 배는 얼음으로 가득한 부빙군에 대한 설계에서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위 그림에서 인듀어런스 호 뒷부분에 정면에서 바라 본 두 배의 모양을 비교한 그림이 조그맣게 보입니다. 인듀어런스 호는 얼음들 사이를 빠져나가도록 뾰족하게 설계되었고, 프램 호는 얼음 위로 떠오를 수 있도록 바닥이 둥글게 설계되었대요.

어니스트 섀클턴

드디어 섀클턴과 그의 대원들의 위대한 탐험이 시작되었습니다. 거대한 얼음 덩어리들 사이로 이제 막 들어서는 인듀어런스 호 앞에 놓인 끝도 없는 얼음 덩어리들. 길이가 무려 1100Km 나 된다고 합니다(서울-부산 까지가 약 400Km). 이 그림 한 장만으로도 그들의 여정이 얼마나 힘들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니스트 섀클턴

얼음에 갇혀 버리고 만 인듀어런스 호. 얼음 사이를 헤쳐 나가던 인듀어런스 호가 결국 얼음에 갇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열흘이 넘도록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보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어니스트 섀클턴

인듀어런스 호가 부서져버린 후 대원들은 오션 캠프와 페이션스 캠프를 거치며 얼음 위에서의 생활을 견뎌냅니다. 하지만 상황이 점점 악화되자 섀클턴은 지긋지긋한 얼음을 벗어나고자 엘리펀트 섬으로 향합니다.

어니스트 섀클턴

엘리펀트 섬에서 구명보트를 뒤집어서 만든 집 안에서 추위를 견뎌내는 대원들의 모습. 섀클턴이 구조하러 돌아오기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대원들은 하루하루를 버텨나갑니다. 구명보트를 이용한 집은 화가 마스턴의 아이디어였대요.

엘리펀트 섬에 남은 대원들이 자칫 무기력함에 빠져 위험하게 될까봐 탐험대 부대장이었던 와일드는 대원들에게 일거리를 주어 바삐 움직이게 했고 책임감과 목적의식을 심어주었어요. 대원들이 하는 일 없이 앉아만 있으면 몸도 마음도 약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어니스트 섀클턴

구조를 요청하러 간 섀클턴 일행은 목표로 했던 사우스조지아 섬에 무사히 도착합니다. 하지만 원래의 목적지였던 스트롬니스 항구의 반대편이었죠.

어니스트 섀클턴

다시 바다로 가기엔 위험하다고 생각한 섀클턴은 자신들과 항구 사이를 가로막은 채 버티고 서 있는 얼음산을 넘어가기로 결정합니다.

어니스트 섀클턴

결국 섀클턴은 사우스조지아 섬에서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얼음산을 넘어서 스트롬니스 항구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구조대를 결성해서 엘리펀트 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대원들에게 돌아갑니다. 이렇게 해서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어니스트 섀클턴과 그의 스물여덟 명의 대원들은 단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모두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나는 나 자신과 동료들을 위해 죽음을 이겨내고 삶을 얻어냈다.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여 탐험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실패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 어니스트 섀클턴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위대한 실패와 섀클턴의 리더십

사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어니스트 섀클턴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런데 윌리엄 그릴의 “어니스트 섀클턴”은 또 다른 탐험대의 도전해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니스트 섀클턴

로스 해 팀은 섀클턴의 탐험대의 남극 종단을 돕기 위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섀클턴 탐험대의 육로 이동 경로의 중요한 곳에 식량저장소를 짓는 일이었죠. 그런데, 이들의 배가 떠내려가버리면서 10여 명의 대원들이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섀클턴은 엘리펀트 섬에서 인듀어런스 호의 대원들을 구조해 낸 뒤 곧바로 뉴질랜드로 향했어요. 남극 대륙의 또 다른 곳에 고립되어 버린 로스 팀 호의 대원들을 구하기 위해서요(생존자들 모두 구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남극 대륙을 종단하는 탐험은 실패로 끝났어요. 하지만 불굴의 용기와 도전 정신과 따뜻한 인간애는 어니스트 섀클턴을 20세기 최고의 탐험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일이겠죠.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 아닐까요? 어니스트 섀클턴의 탐험은 실패로 끝났지만 오늘날 그 누구보다 더 위대한 이름으로 그의 이름이 우리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바로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그의 숭고한 정신 때문일 겁니다.

2014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으로 선정될만큼 작품성도 뛰어난 그림책 “어니스트 섀클턴 : 남극 탐험을 향한 멈추지 않는 도전”, 우리 아이들에게 꼭 읽어주길 권합니다.


※ 함께 보면 좋은 책

어니스트 섀클턴

윌리엄 그릴이 그려낸 섀클턴의 위대한 도전 이야기를 아이가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번엔 그림이 아닌 사진으로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세요. 섀클턴의 탐험 대원 중에는 프랭크 헐리(Frank Hurley)라는 사진 작가가 있었고, 그는 그들의 길고 험한 여정의 순간들을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겪었는지 아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아이들용으로 나온 책은 아니지만 글보다는 사진 위주의 사진집 형태로 나온 책이라 이 그림책을 본 아이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겁니다.)

프랭크 헐리의 사진집 “인듀어런스”(캐롤라인 알렉산더, 프랭크 헐리 / 뜨인돌 / 2002)를 봤던 게 2005년이니 10년만에 다시 이 이야기를 접하게 되네요. 윌리엄 그릴의 그림이 아주 인상적이긴 한데 전체적으로 푸른색 톤의 그림들 속에서 섀클턴과 대원들의 긴박하고 처절했던 상황을 간접적으로 느끼기엔 역부족이란 생각이 듭니다. “인듀어런스”에 담긴 실사 사진들은 글과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담겨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꼭 아이들에게 보여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The Elephant Island party
엘리펀트섬에서… (출처 : Wikipedia)

또 다른 남극 이야기 : 소피 스코트 남극에 가다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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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진
2023/01/06 15:37

최고 조회수 기록했다고 해서 무심코 들어왔는데요 ^^;; 책 소개가 좋아서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탐험의 여정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삶에서 중요한 나의 가치가 뭘까? 자문하게 되었어요. 아이와 꼭 읽어 볼게요 소중한 그림책 소개 감사합니다.

이 선주
Editor
2023/01/06 22:07
답글 to  유혜진

함께 읽고 싶은 그림책 중 한 권이에요.^^

이 책부터 커럼보의 왕 로보, 반둘라까지
윌리엄 그릴 그림책은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지만 다 좋아요. 혜진님!

Last edited 1 year ago by 이 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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