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보다
서로를 보다

윤여림 | 그림 이유정 | 낮은산
(발행 : 2012/10/08)

가온빛 추천 그림책


“서로를 보다” 라는 제목이 다소 묵직하게 다가오는 그림책입니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산양의 깊고 고요한 눈빛,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지, 무슨 이야기를하고 있는지 찬찬히 책장을 넘겨 봅니다.

서로를 보다

바람처럼 초원을 달리는 동물, 치타

넓고 푸른 초원 위에서 치타가 먹잇감을 향해 쏜살 같이 달리고 있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 치타, 시속 100 km에 육박하는 바람처럼 빠른 동물 치타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치타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바로 이런 모습일 거예요.

서로를 보다

하지만 다음 장을 펼치면 이야기가 확 달라집니다. 철창 뒤 우리 안에서 우울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는 애처로운 치타의 모습에서 푸른 초원을 달리던 그 날쌘 기상, 늠름한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앞장에서 멋지게 달리는 치타의 모습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동물원 우리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치타에게 말을 걸었어요. 하지만 치타가 하는 대답은 심드렁합니다.

네가 젖먹이 동물 가운데 가장 빠르다며?
한 시간에 백 킬로미터 속도로 달리 수 있다니, 멋지다.

글쎄, 난 잘 모르겠어. 그렇게 달려보지 못했거든.

동물들은 저마다 삶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만의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런 능력은 동물원에서는 도무지 쓸 데가 없습니다. 구름처럼 하늘을 나는 쇠홍학은 동물원에서 먹이를 찾아 다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자 날갯짓을 해도 날 수 없게 되구요. 나뭇가지를 타고 숲을 누비는 긴팔 원숭이는 엄청난 팔 힘을 동물원에서는 하루 종일 창살에 매달리는 일에 씁니다. 파도를 타고 바다를 누비는 돌고래도 예외는 아닙니다.

서로를 보다

얼음 들판 위로 떠도는 북극곰 역시 자연을 떠나 동물원에 갇히게 되면 똑같습니다.

서로를 보다

너는 원래 추운 북극에 산다면서?
때때로 먹이를 찾아 눈보라도 헤치고 말야.

추운 북극? 눈보라? 기억이 나질 않아.
근데 여기 너무 덥다.

먹이를 찾아 눈보라를 헤치며 살아가는 동물이라 생각했던 북극곰은 어쩌면 동물원에서 태어나 북극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문득 한여름 동물원에 갔을 때, 북극곰의 특별식으로 얼음 속에 과일을 얼려 던져 주면 무료한 표정으로 얼음을 껴안던 북극곰의 모습이 생각나네요.

이렇게 그림책은 가장 동물답게 살아가는 야생의 동물 모습과 동물원 우리에 갇힌 채 자신 본래의 삶을 잃어버린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보여주고 있어요.

서로를 보다

어두컴컴한 공간 한 구석 올빼미의 텅빈 눈은 고독한 동물원에서의 무료한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치타, 홍학, 긴팔 원숭이, 돌고래, 북극곰, 올빼미, 바바리양, 늑대, 프레리도그, 콘도르까지 동물원에 갇혀 살아가는 동물들에게는 자신의 본능이 무엇인지, 자기가 어떤 곳에서 살았는지 조차 알지 못 합니다.

어두컴컴한 장소에 있다고 해서 올빼미가 살아가는 최적의 장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위산 모형을 만들어 주었다고 해서 바바리양이 행복한 것도 아니겠죠. 생존을 위해 뛰지 않아도 되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할 필요가 없으니 그만큼의 자유를 박탈 당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까요? (문제는 울타리 안의 안락함도, 야생의 자유도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겠죠.)

서로를 보다

이제 동물들이 우리에게 이야기 합니다.

너희 사람은 아주 똑똑하다고 들었어.
자연을 이해하는 능력이랑
자연을 파괴하는 능력
모두 뛰어나다고.

치타처럼 빨리 달릴 수 없고, 홍학처럼 날 수 없고, 긴팔 원숭이처럼 강한 팔힘을 가지지도 못했지만, 누구보다 똑똑했기에 자연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는 능력 또한 뛰어나다는 일침은 순간 정신을 번쩍 들게 합니다.

서로를 보다

동물들이 서로를 본다.

우리 안에서, 우리 밖에서.

마지막 한 장의 그림이 많은 여운을 남깁니다. 눈과 눈을 마주하고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아이와 산양의 눈빛에는 거짓됨이 없어 보입니다. 우리는 모두 지구별에 함께 공존하는 생명체로 모두가 소중하고 모두가 아름다운 생명이며 모두가 평등하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표지 그림과 묘한 대조를 이루는데요. 산양의 옆모습만 나온 표지 그림을 양쪽으로 펼쳐 보세요.

서로를 보다

바로 이렇게요. 마주보고 있던 아이와 산양의 마지막 그림은 표지 그림을 펼치면 이렇게 등을 돌리고 서있게 됩니다. 서로를 바라 볼 때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눈이 될 수 있지만 이렇게 등을 대고 돌아 서면 서로 어떤 것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어요. 서로를 등지고 있던 아이와 동물, 하지만 이 그림책 “서로를 보다”를 보고 난 후엔 이렇게 마주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겠지요.

“서로를 보다”는 많은 의미를 남기는 그림책입니다. 본래의 삶을 빼앗긴 채 누군가 만들어 놓은 틀안에 살아가고 있는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진정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스스로의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진실된 눈으로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행복한 동행, 아름다운 공존, 그것이 바로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동물 우리 인간들의 책임과 의무 아닐까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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