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자 어디 갔을까?
내 모자 어디 갔을까?

(원제 : I Want My Hat Back)
글/그림 존 클라센 | 옮김 서남희 | 시공주니어
(발행 : 2012/07/20)

※ 2011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 선정작
※ 2013년 케이트 그린어웨이상 최종후보작


오늘 함께 볼 “내 모자 어디 갔을까?”는 칼데콧상을 세 번이나 받은 존 클라센의 첫 번째 그림책입니다. 워낙 대세 작가인데다 이미 2012년에 국내 출간한 터라 이미 본 분도 많을거라 생각됩니다. “내 모자 어디 갔을까?”는 의미심장한 엔딩으로 으스스한 열린 결말을 제시하는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와 분위기가 아주 흡사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로 칼데콧 메달(2013년)과 케이트 그린어웨이상(2014년)을 모두 차지하는데 “내 모자 어디 갔을까?”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용이나 분위기 뿐만 아니라 그림체나 컬러톤도 두 그림책이 아주 비슷합니다. 큰 물고기와 작은 물고기, 큰 곰과 작은 동물들의 대비 역시 흡사하구요. 차이가 있다면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는 검은 색 배경이고 “내 모자 어디 갔을까?”는 흰색 배경이라는 점이겠네요.

그럼, 존 클라센의 첫 번째 그림책 “내 모자 어디 갔을까?” 시작해 볼까요~

내 모자 어디 갔을까?

곰이 모자를 잃어버렸대요. 곰은 모자를 찾아서 숲을 휘젓고 다니며 다른 동물 친구들을 하나씩 만나 물어봅니다.

“혹시 내 모자 못 봤니?”

하고 말이죠. 마주치는 동물들의 반응과 대답은 모두 비슷비슷합니다. 시큰둥하거나 무관심하거나. 그런데 그림을 잘 보면 다른 동물과 다른 한 친구가 눈에 뜨일 겁니다. 토끼가 뭔가를 쓰고 있네요. 그러고 보니 모자를 못 봤냐는 곰의 질문에 유독 토끼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응, 왜 나한테 물어보니?
난 본 적 없어.
어디서도 모자를 본 적 없어.
내가 모자를 훔쳤겠니?
나한테 더 이상 물어보지 마.

아니……. 못 봤으면 그만이지, 뭘 이렇게까지 짜증을……. ^^

내 모자 어디 갔을까?

모자를 찾아 종일 돌아다니더니 결국엔 지쳤나봅니다. 힘 없이 풀밭에 드러누운 채 실망 가득한 곰……. 이 때 사슴이 나타나서는 곰에게 왜 그렇게 누워 있냐고 묻습니다. 곰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사슴은 모자가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보고, 사슴에게 모자에 대해 ‘빨간색이고, 뾰족하고….’ 하며 찬찬히 설명을 해주던 곰은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뭔가가 있습니다.

내 모자 어디 갔을까?

아까 내 모자를 봤어!

그러니까요~ 우리는 아까 이미 알고 있었는데 말이죠! ^^

내 모자 어디 갔을까?

곰은 벌떡 일어나서는 허겁지겁 아까 지나온 길을 되돌아갑니다. 오늘 하루 종일 만났던 동물들이 모두 곰을 지켜보고 있네요. 궁금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걱정스러운 것 같기도 한 동물들의 표정. 걱정하는 거라면 과연 누구를 걱정하는 걸까요? 모자를 잃어버린 곰일까요, 아니면 토끼일까요?

내 모자 어디 갔을까?

드디어 곰과 토끼가 만났습니다. 토끼 머리 위엔 여전히 아까 보았던 빨간색이고 뾰족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게 곰의 모자가 맞는 걸까요?

내 모자 어디 갔을까?

잠시 후 다람쥐 한 마리가 와서 곰에게 묻습니다. “저기, 혹시 모자 쓴 토끼 못 봤니?” 라고. 그리고 곰이 대답합니다.

응, 왜 나한테 물어보니?
난 본 적 없어.
어디서도 토끼를 본 적 없어.
내가 토끼를 잡아먹었겠니?
나한테 더 이상 물어보지 마.

어디서 많이 듣던 대답 아닌가요? 모자가 토끼로, ‘훔쳤겠니?’가 ‘잡아먹었겠니?’로 바뀌었을 뿐 아까 토끼가 곰에게 신경질적으로 했던 대답과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똑같습니다. 자신의 모자를 쓴 채로 뻔뻔하게 신경질적인 대답을 했던 토끼에 대한 복수인 걸까요?

곰은 과연 토끼를 잡아 먹었을까요?

내 모자 어디 갔을까?

판단은 우리 몫입니다. 곰이 토끼에게 다시 찾아갔을 때 토끼는 작은 덤불 속에 있었습니다(왼쪽 그림). 그런데, 곰과 토끼의 묘한 대면 후 토끼는 온데 간데 없고 토끼가 있던 덤불은 곰이 짓뭉갠 채 깔고 앉아 있습니다(오른쪽 그림).

진실은 입이 아니라 눈으로 말한다

내 모자 어디 갔을까?

“내 모자 어디 갔을까?”에 등장하는 모든 동물들의 생김새에는 두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눈이 모두 똑같이 생겼습니다. 송편 같기도 하고 아몬드 같기도 한 눈, 존 클라센은 모든 동물들에게 똑같이 생긴 눈을 그려줬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입이 없다는 점입니다. 모두 한 마디씩 하지만 입을 가진 동물은 단 한 마리도 없습니다.

모든 동물들의 눈이 똑같이 생겼고, 모두 입이 없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보는 사람들마다 자기 나름대로의 추리와 상상을 해 볼 수 있겠지만 저는 사슴에게서 답을 찾아봤습니다.

사슴을 제외한 모든 동물들은 곰과 눈을 마주치지 않습니다. 곰이 모자를 못 봤냐고 물을 때 제 각각 답을 해 주지만 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해 주는 동물은 단 한 마리도 없습니다. 곰과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눈 유일한 동물은 사슴입니다.(물론, 드러난 진실 앞에서 마주하게 된 토끼와 곰도 서로 시선을 마주하고 있긴 합니다.)

어쩌면 모든 동물들은 곰의 모자를 누가 쓰고 있는지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자신의 일이 아니라서 모두들 모른 채 하며 진실을 외면하는 상황 속에서 상심한 곰에게 사슴이 넌지시 힌트를 제시해 준 것 아닐까요? 그런 건 아니라 하더라도 어쨌건 눈을 마주보며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건네는 사슴 덕분에 곰은 모자를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됩니다.

살다 보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 주는 말을 모두 믿고 살 수만은 없다는 우울한 현실에 부딪히는 때도 있겠죠. 존 클라센은 곰과 동물 친구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통해 바로 이런 삶의 아이러니를 가르쳐 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가해자는 토끼가 아니라 곰?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곰은 원래 모자가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모자의 주인은 토끼였습니다. 그리고 곰은 토끼의 모자가 갖고 싶었던 겁니다. 빨간색이고 뾰족한 모자가 말이죠. 그리고 곰은 결심합니다. 토끼의 모자를 갖기로. 그리고 곧 자신의 계략을 실행에 옮깁니다.

숲에서 만나는 모든 동물들에게 자기 모자를 못 봤냐고 묻습니다. 빨간색이고 뾰족한 내 모자 못 봤냐고 말입니다. 가장 힘 센 곰의 물음에 작고 약한 동물들은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모자는 네 모자가 아니라 토끼 모자잖아!’ 라고 말할 수 있는 동물은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곰의 모자라고 인정해 준 동물도 역시 아무도 없구요.

바로 그 때 영악한 사슴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곰에게 동조합니다. 한 명의 동조자는 두 명으로 늘어날테고, 두 명의 동조자는 네 명으로… 점점 더 늘어나겠죠. 이제 곰은 행동합니다. 모자 주인 토끼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토록 원했던 모자를 빼앗습니다.

곰의 만행 앞에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다람쥐가 용기를 내서 곰에게 말을 건넵니다. 힘을 휘두르는 곰과 잘못을 보고도 침묵하는 다른 동물들의 양심에 던지는 갸냘픈 함성입니다.

저기, 혹시 모자 쓴 토끼 못 봤니?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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