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내 마음

글그림 천유주 | 창비
(발행 : 2015/02/05)


내 마음

터벅터벅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내 마음

내 마음

내 마음

파닥파닥 비둘기들
그렇게 배고팠나?
아껴서 먹던 건데…….
내 배는 꼬르륵.

내 마음

“내 마음”은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글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글은 최소한의 분량 으로 나오고 있어요. 하지만 간략한 글은 한 편의 시처럼 주인공 소년의 마음을 차분하게 담아 내 이야기를 돋보이게 합니다.

‘터벅터벅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이라는 문구에서도 느껴지듯이 소년의 모습이 많이 쓸쓸하고 외로워보입니다. 계단에 앉아 혼자 도넛을 먹으려던 소년이 비둘기에게 도넛을 모두 빼앗기자 소년의 마음처럼 휑한 바람이 소년을 휩쓸고 지나갑니다.

그 때 소년 앞으로 짝꿍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갑니다. 소년은 반가운 마음에 벌떡 일어나 손을 크게 흔들며 “야!” 하고 불러보았지만 자전거를 탄 짝꿍은 본 체 만 체 쌩~하고 지나가버리네요.

새초롬한 내 짝꿍.
불러도 모르는 체한다.
내가 지우개 숨겨서 아직도 삐쳤나?
눈길도 주지 않고 따르릉 가 버린다.

머쓱해진 소년이 혼잣말을 하는 장면에서는 다른 배경이 모두 생략이 된 채 소년의 독백과 의기소침해진 소년의 모습만 보여줍니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는 어김없이 소년 주변으로 쓸쓸한 바람이 불어오지요. 바람은 어쩌면 소년의 허전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바람에 어디선가 전단지가 날아와 이번에는 소년의 얼굴을 강타합니다. 여자 아이 하나가 강아지를 찾는 전단을 돌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소녀는 바람에 날린 전단지만 주워서는 쌩하니 가버렸어요. 소년은 오직 도넛을 지니고 있었을 때 비둘기 떼에게만 잠시 존재감을 발휘한 듯 합니다.

저 아이는
강아지를 잃어버렸나?
내가 도와주고 싶은데
나한테는 묻지도 않고 가 버리네.

내 마음

그리고 또다시 소년 주변으로 휘잉~ 불어오는 바람. 혼자 남은 소년은 계단에서 책을 꺼내 읽고 있는데 소녀가 찾던 전단지 속 강아지가 나타났어요. 소년이 강아지를 잡으려 하니 강아지는 계단 위로 줄행랑을 칩니다. 강아지를 쫓아 계단 위로 올라가 보니, 강아지와 주인이 계단 꼭대기에서 이미 재회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중입니다.

소년의 빵을 빼앗어 먹은 비둘기들, 가족과 함께 자전거를 타던 짝꿍, 잃어버렸던 강아지와 다시 만난 소녀…… 모두들 누군가와 함께인데, 소년만 혼자입니다. 소년 주변으로 또 한차례 바람이 불어올까요?

계단 끝에서 강아지와 재회한 소녀의 모습을 부러운 듯한 눈길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소년이 마주한 것은……

내 마음

탁 트인 푸른 하늘이었어요. 소년은 말 없이 하늘을 바라봅니다.

내 마음

소년은 계단을 내려와 풀어놓았던 가방을 메고 다시 걸어갑니다. 아마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겠죠? 잔뜩 풀 죽어 어딘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첫 장면과 달리 마지막 장면의 소년은 움츠렸던 어깨를 쫙 펴고 앞을 똑바로 바라보며 걸어갑니다. 소년의 발걸음에서 탁탁탁 신나는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요. 소년이 떠난 계단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미소를 머금고 소년을 바라보고 있어요. 마치 이 모든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고양이의 미소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네요.^^

전에 “늑대가 나는 날” 이라는 그림책을 소개해 드린 적이 있어요. “늑대가 나는 날”이 아이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하루 동안 느낀 감정을 강렬한 색감과 거친 붓터치로 표현해 냈다면, 천유주 작가의 “내마음” 은 아이 주변 숲에서 놀고 있는 동물들, 바람에 움직이는 풀숲 등 미세한 변화까지 잘 잡아내서 섬세하고 잔잔하게 아이의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림 한 장 한 장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자면 내 마음도 조금씩 소년의 마음과 동화되는 듯 합니다.

도넛을 다 먹은 비둘기가 소년을 버리고 유유히 사라지는 장면, 잃어버린 강아지가 어디선가 짠하고 나타나 소년이 보는 책을 능청스럽게 함께 보는 장면, 소년이 떠난 계단 위에서 고양이가 흐뭇하게 소년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 등 그림 곳곳에 숨어있는 유머는 잔잔한 그림책 속에서 발견하는 색다른 재미입니다.

또 하나, 계단 옆 풀밭에 들락거리는 다양한 동물들을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그 중에서 첫 장면부터 이게 뭘까하고 눈여겨 본 것이 하나 있었어요.

내 마음

풀 숲에서 사람 얼굴을 한 보일락말락 작은 형체, 무얼까하고 들여다 보았더니 풀숲에 버려진(혹은 누군가 잃어버린) 인형처럼 보입니다.

내 마음

이 인형은 같은 장소에서 시시각각  풀잎에 얼굴이 보였다 살짝 가려졌다 하면서 계속 나타나는데요.(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해요.^^)

내 마음

마지막 장면에서 씩씩하게 걸어가는 소년 가방에 이렇게 매달려 소년을 따라갑니다. 아마도 하늘을 만나고 내려온 소년이 계단을 내려오다 발견해서 가방에 매달았겠죠? 이 인형은 마치 소년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해 주는 것 같습니다. 머리 모양이며 줄무늬 옷까지 인형과 소년의 모습은 많이 닮아 있어요. 줄곧 무표정이었던 인형의 얼굴은 가방에 매달렸을 때 씩 웃고 있어요. 한 손은 ‘안녕!’ 이라고 말하는 듯 흔들고 있구요. 이제 소년도 인형도 혼자가 아니네요. ^^

그런날 있죠? 무얼해도 마음이 안 풀리는 날, 세상에 나만 홀로 뚝 떨어져버린 것만 같은 그런 날, 한 번 꼭 읽어 보세요.


 함께 읽어보면 좋은 책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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