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 약속

(원제 : The Promise)
글 니콜라 데이비스 | 그림 로라 칼린 | 옮김 서애경 | 사계절
(발행 : 2015/01/05)

가온빛 추천 그림책
2015 가온빛 BEST 101 선정작
※ 2014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 선정작
※ 2014년 볼로냐 라가치상 우수상 수상작(픽션 부문)
※ 2015년 케이트 그린어웨이상 최종후보작


니콜라 데이비스가 글을 쓰고 로라 칼린이 그림을 그린 “약속”은 2014년에 ‘뉴욕 타임스 올해의 그림책’과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에 각각 선정된 그림책입니다.

“아주 작은 친구들”, “똥”, “앗, 상어다!” 등 주로 생물학이나 동물과 관련된 지식과 정보를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책을 썼던 니콜라 데이비스가 이번엔 감성적인 그림책을 선보였습니다.(논픽션을 잘 쓰는 작가는 픽션도 잘 쓰나봅니다 ^^) 바로 그림책 “약속”입니다. 희망 없이 살아가던 한 소녀가 노부인과 맺은 약속을 실천하며 변화해가는 모습을 감동 깊게 전달하고 있는데요. 그녀의 글에 일러스트를 맡은 로라 칼린은 독특한 감성과 서정미 넘치는 색감의 일러스트로 책의 깊이와 무게를 더했습니다.

약속

마른 먼지가 길을 덮고 누런 모래 바람이 끝없이 불어와 아무것도 자라지 않고 아무도 웃지 않는 더럽고 가난하고 흉측한 잿빛 도시에 살고 있는 소녀는 자신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며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내 심장은 공원에 서 있는 죽은 나무들처럼 말라비틀어졌지.

말라비틀어진 것은 소녀의 심장만이 아닌 듯합니다. 희망이 사라진 회색빛 도시에 사는 사람들 표정 하나하나 삶에 대한 애착이나 내일에 대한 기대감을 져버린 듯 모두가 우울한 표정뿐이네요. 풀 한 포기조차 자라지 않는 땅 위에서 우울함은 사람들 마음 속 깊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약속

그렇게 하루하루 남의 지갑을 훔치며 살아가던 소녀는 어느날 밤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노부인의 불룩한 가방을 훔치려고 했어요. 하지만 엄청난 힘으로 가방을 쥐고 버티던 노부인은 실랑이 끝에  소녀에게 말했어요.

“네가 이걸 심겠다고 약속하면 놓아주마.”

“알았어요. 약속해요.”

소녀는 가방 속의 물건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건성으로 덜컥 약속을 했어요. 그러자 노부인은 쥐고 있던 가방을 놓아 주었습니다.

약속

노부인에게서 빼앗은 가방 속에는 푸르디 푸른, 흠 없이 온전한 도토리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도토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녀는 비로소 자신이 한 약속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도토리 숲 하나가 통째로 내 품에 안겨 온거야.
내 심장에도 변화가 일어났지.

시작은 거짓된 약속이었지만 흠 없이 온전한 수많은 도토리는 소녀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이라는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약속

남의 돈을 훔치며 공원에 서 있는 죽은 나무들처럼 심장이 말라비틀어졌다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소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행운이 찾아온 듯 한 느낌에 젖어보았어요. 꿈속에서 푸른 잎사귀가 너울거리는 꿈을 꾼 소녀는 아침이 되자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갔어요. 자신의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였어요.

아침이 왔고
나는 약속을 잊지 않았어.

약속

소녀는 찻길 옆, 로타리 한가운데, 무너진 건물더미, 전찻길 옆, 기찻길 옆, 신호등 옆, 버려진 공원…… 더럽고 가난하고 흉측한 것들을 치워내며 도토리를 심고 또 심었어요.

약속

물론 처음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모래 바람은 여전했고, 찌푸린 얼굴의 사람들의 모습도 변함이 없었지요. 하지만 어느날부터 푸른 싹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나무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약속

푸른 나무를 따라 사람들도 변해갔어요. 집 안에만 숨어있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나무를 바라보며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어느새 사람들도 소녀를 따라 나무를 심기 시작했어요. 공원이며 정원, 발코니 옥상까지 나무며 꽃, 과일 채소들이 싹이 트고 자라기 시작했지요.

푸른 나무들이 온 도시로 노래처럼 퍼져 나갔지.
나무들은 하늘까지 닿아 축복의 비를 뿌렸어.

하지만 소녀의 약속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약속

소녀는 이제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에 와있어요. 절망과 슬픔, 가난 등으로 가득한 또 다른 도시에 토토리를 심기 위해서요. 한 곳에서의 미션이 끝나면 또 다른 도시로, 또 다른 도시로 그렇게 옮겨갔지요.

약속

간밤에는 인적 없는 어느 골목길에서
젊은 도둑이 내 도토리 가방을 앗아 가려 했어.
나는 빙긋 웃으며 그 옛날 노부인처럼 흥정을 했어.
또다른 심장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알았거든.
내 약속이 계속 이어지리라는 것도…….

회색빛 삭막한 도시를 생명의 도시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나게 큰 힘이나 돈이 아닌 작은 소녀의 심장을 울리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메말라 버렸다고 생각한 소녀의 심장을 울린 흠없이 온전한 수많은 도토리들, 노부인이 건네준 희망의 씨앗은 그녀를 변화 시키고 그녀 주변을 변화시키며  끝없이 이어집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소녀가 약속을 지켜가는 과정 속에서 또다른 누군가의 심장을 두드렸다는 점이겠죠.

우리 삶에 꿈과 희망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일깨워주는 “약속”은 작은 실천 이끌어 내는 커다란 변화의 과정을 아주 담담하고 차분하게, 급하거나 무리없이 이야기하며 읽는 이에게 묵직한 감동을 선물하는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작가 니콜라 데이비스는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고 난 후 영감을 얻어 이 그림책 “약속”을 썼다고 합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진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풀버전으로 감상해 보세요.

“나무를 심은 사람” 영상 : 풀버전(30분) | 편집 버전(5분)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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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ROOM
KOOROOM
2016/09/11 02:08

삶의 방향성이 좀 더 구체화 된것 같아요. 도토리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노부인이 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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