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원제 : Madame Cerise Et Le Trésor Des Pies Voleuses)
글/그림 상드라 푸아로 셰리프 | 옮김 문지영 | 한겨레아이들
(2015/04/03)

2015 가온빛 BEST 101 선정작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할머니 한 분이 차에 기댄 채 하늘 저 멀리 날아가는 까치 떼들을 망연자실 쳐다보고 있습니다. 도둑 까치가 자동차 열쇠를 훔쳐 갔거든요. 돌아가서 할아버지에게 까치가 자동차 열쇠를 훔쳐갔다고 말해봐야 믿지 않을 게 뻔하고, 집에 어떻게 돌아갈지도 막막한 할머니……

그런데, 가만 보면 차가 좀 이상합니다. 다음 장으로 넘겨 보니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흠… 이 차는 아무래도 할머니가 몰고 다닐 차로 보이지는 않네요.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어쨌거나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나서 할머니는 날씨도 좋고 하니 그냥 걸어서 가기로 결심합니다. 막상 걷다 보니 기분이 좋아졌어요. 어린 시절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날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가끔 땅바닥을 살펴 보기도 하면서 할머니는 집을 향해 걸었습니다. 땅바닥은 왜 살피냐구요? 혹시 도둑 까치가 자동차 열쇠를 버리고 갔을지도 모르잖아요. ^^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햇볕 좋은 오후에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는데 할머니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달이 떠 있습니다. 집 앞에는 할아버지가 경찰관과 함께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었구요. 할머니를 보자마자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달려갑니다.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그리고 할머니를 꼭 안아줍니다.

돌아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여보, 알다시피 난 좀 걱정이 된다오.

자신을 향해 달려온 할아버지를 빙그레 미소지으며 바라보는 할머니, 그리고 자신을 꼭 안아주는 할아버지 품에 가만히 안기는 할머니, 할머니의 미소는 조금씩 조금씩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변해갑니다. 그리고, 할머니를 바라보며 활짝 웃음짓던 할아버지의 표정엔 서서히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걱정의 마음이 번져갑니다.

알고보니 할머니는 할아버지와의 저녁 식사를 위해 피자를 사러 갔었던 거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맨 처음 그림에서 피자 상자가 벤치 위에 놓여 있었던 게 생각 나네요.

할머니는 요즘 이따금씩 기억을 잃곤 합니다. 아까도 피자를 사서 돌아 오는 길에 자신이 뭘 하고 있었던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던 거죠. 할머니는 잠시 기대어 쉬던 자동차가 자신이 몰고 나온 차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집에 돌아가기 위해 자동차 문을 열려고 했더니 열쇠가 없었구요. 그래서 할머니는 자동차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아니, 도둑 까치 녀석이 훔쳐갔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입니다. 자신이 사서 들고 오던 피자는 까맣게 잊은 채 말이죠.

그런 자신의 모습에 당황스러워 풀이 죽은 아내에게 할아버지는 말합니다.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지금 당장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식당으로 갑시다!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참 보기 좋죠? 다정하니 헬멧을 나눠 쓰고 스쿠터를 타고 피자집으로 가는 황혼의 부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제일 좋은 옷을 차려입고 그들만의 식당으로 데려가 주는 든든한 남편, 그런 남편의 등에 맘편히 얼굴을 기대고는 자신의 사랑을 그대로 실어 남편의 허리를 꼭 끌어안은 아내. 이 그림에서 더 이상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를 걱정하는 할아버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랑에 푹 빠진 한 쌍의 커플 말고는 말이죠.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그날 밤 할아버지는 잠든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예쁘구나.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할머니도 때때로 잠을 이루지 못하곤 합니다. 머릿속이 점점 뿌예지는 느낌때문에요. 자신의 기억이 모두 지워져버리고 나면 이런 느낌조차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할머니는 무섭기까지 합니다. 그러다 곁에서 곤히 잠든 할아버지를 보고 있자면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할머니를 한없이 사랑하는 할아버지는 두렵습니다. 사랑하는 할머니가 언젠가는 자식과 손주들, 그리고 심지어는 자신 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될까봐서요.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몇날 며칠 동안 창고에서 두문불출하며 뭔가를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저녁 창고에서 나온 할아버지의 팔에는 아주 커다란 상자가 들려 있었습니다. “자, 여보, 내가 당신을 위해 뭘 좀 만들어 봤소.”하며 할머니에게 건넨 상자 안에는 아주 멋진 드레스가 들어 있었습니다.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하늘이랑 새들이랑 창문들로 가득 채운,
정말 아름다운 드레스예요.
할머니는 창문을 조심스레 열어 봅니다.
창문 안쪽에는 사진이랑 기념품이랑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할아버지가 하나씩 꿰매서 붙여 두었지요.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언제나 소녀같이 사랑스러운 할머니의 이름은 에드메 세리즈, 그런 아내를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이름은 드니 세리즈입니다. 드레스에 드니의 사진이 있는 창문을 열면 이런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언제나 그곳에 있으리

당신의 심장과 맞닿은 바로 거기

그림책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을 다 읽고 난 후 제 기억 속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사라지고 가슴 깊이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 에드메와 드니만 남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을 보면서 그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로만 여겨왔습니다. 그분들도 우리처럼 뜨거운 가슴과 꿈에 대한 열정, 삶에 대한 사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은 채 그저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 내 아버지와 어머니로만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 우리에게 드니 세리즈와 에드메 세리즈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줍니다. 바로 이 점이 이 그림책이 빛나는 점입니다.

아이들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꼭 읽어 주고 싶은 그림책, 내 형제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그림책,  그리고, 사랑하는 내 아버지 어머니에게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가 아닌 ‘○○씨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하고 싶게 만드는 그림책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이었습니다.


※ 함께 읽어보세요
  • 지난 여름 할아버지 집에서 : 할머니를 향한 할아버지의 달달한 사랑을 담은 또 한 권의 그림책입니다.
  • 스틸 앨리스 : 그림책이 아니라 얼마 전 개봉한 영화입니다. 희귀성 알츠 하이머에 걸린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줄리안 무어에게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중한 기억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그림책 놀이 : 드레스 카드 만들기

어버이날 특집 : 엄마에게 들려 주는 노래 | 아버지, 사랑합니다! |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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