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일 : 2015/05/18
■ 업데이트 : 2017/05/15


아빠의 봄날
책표지 : Daum 책
아빠의 봄날

박상률 | 그림 이담 | 휴먼어린이


평화롭기만 하던 어느 봄 날이었습니다. 농사일로 모두들 여념이 없는 작은 시골 마을에 순박한 농부들 머리 바로 위로 헬리콥터들이 쉴새 없이 지나가고, 무장한 군인들이 논둑 위에 나타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서슬 퍼런 군인들을 대하고있자니 불안하기도 한 마음에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마을 어귀에 모이기 시작합니다. 밭에 나갔던 아버지 역시 식구들 걱정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군인들이 갑자기 아버지에게 총을 겨누었습니다. 삽 한 자루 들고 밭에서 돌아오던 아버지에게 길을 가로 막고 무기를 내려놓으라며 위협을 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 보던 마을 사람들이 어이 없어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아버지 있는 곳으로 모여들려 하자 군인들은 난데 없이 총을 쏴대기 시작합니다.

그저 겁을 주기 위해 허공에 대고 쏘는 위협사격이 아니라 무슨 일이냐고 묻기 위해 다가서는 농부들을 향한 조준사격이었습니다. 총에 맞은 마을 사람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피를 흘리며 흙바닥에 나뒹굴고, 가까스로 총알을 피한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채 집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 날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무슨 까닭으로 죽은지도 모른 채
아빠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마을 뒷산 언덕바지에 묻혔습니다.
아빠는 서른 살이었습니다.
사람 나이 서른이면 봄날이지요.
그런 봄날에 아빠는 떠났습니다.
자기가 가꾸던 딸기들도 그냥 두고,
자기 닮은 아이도 그냥 두고,
울부짖는 아내도 그냥 두고,
정든 마을도, 다정했던 이웃도 그냥 두고
떠나간 것입니다.
봄날에 말입니다.

그 날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아버지의 영정을 든 채 겁에 질려 있던 아이, 그저 아버지가 빨리 돌아와 다시 놀아줄 날만을 기다리던 그 아이는 이제 아빠가 되었습니다. 나이가 든 아이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는 듯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영정을 바라 보며 자신과 꼭 닮은, 할아버지와 꼭 닮은 아들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 줍니다. 할아버지가 살던 시골 마을 이야기, 할아버지가 키우던 딸기 밭 이야기, 할아버지와 다정하게 지내며 살던 이웃 사람들 이야기 말입니다.


“아빠의 봄날”은 한 마을, 한 아버지와 한 아이에게 어느 날 갑자기 벌어졌던 비극을 통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글을 쓴 박상률 작가는 20대 초반에 그 참혹한 현장에서 그 일들을 모두 직접 겪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감정에 휘몰리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아이들이 그저 감상적인 일로 그 날을 기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그토록 잔인한 일을 거리낌 없이 저질렀는지, 그리고 지금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올바로 인식하고 배울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저는 아버지가 돌보던 딸기 밭에서 더 이상 딸기가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서던 날 멀리서 들려 오는 총소리에 아버지가 놀라시던 그 순간 딸기 역시 고개를 떨구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딸기밭에서는 더 이상 딸기가 자라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그 날의 상처가 얼마나 오래도록 그들의 가슴에 남아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림책 “아빠의 봄날”의 이야기가 모두 끝난 후 작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내 꾹 참고 있던 울분을 토해냅니다. 과거의 일 때문이 아니라 오늘의 우울한 현실로 인한 분노입니다. 작가는 아직도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만큼 지척의 거리에 있는 시민의 얼굴에 대고 켑사이신을 뿌려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는 민주화를 많이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독재 시대의 그늘이 사회 여기저기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림자를 지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해 봄날, 사람만이 아니라 딸기와 강아지와 병아리와 소도 함께 스러져 갔습니다. 모두 이 땅에서 자기 목숨을 받아 살고 있던 생명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생명이 짓밟히자 그들의 생명도 같이 짓밟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 땅의 주인이라서 그렇습니다.

다시 봄입니다. 올 봄에도 생명들이 마음껏 싹을 틔우지 못했습니다.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동안 그 자리에서 묵묵히 모든 생명을 보듬어 주던 우리의 강과 산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독재 시대의 그늘이 강과 산까지 삼키고 있다고 여깁니다. 얼마 가지 않아 사람들은 깨닫겠지요. 예전에 권력에 눈먼 사람들이 국민의 생명을 짓밟았고, 이제는 그 권력의 단맛을 함께 나누는 이들의 자연의 생명까지 짓밟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걸 깨닫는 순간, 우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겠지요. 사람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생명의 값은 엄청나지요……

다시 아이의 눈망울을 떠올립니다. 죽은 아빠의 모습이 아이의 눈망울 속에 살아 있습니다. 아이의 모습은 다시 그 아이들의 눈망울 속에도 살아 전해지겠지요. 생명은 계속 살아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다시 희망을 가져 봅니다. 이 봄에.

– 2011년 봄 박상률


※ 함께 읽어보세요

오늘은 5월 18일오늘은 5월 18일 : 어버이날 소개했던 “엄마에게”의 서진선 작가가 쓴 그림책입니다. 서진선 작가는 독특하게도 부산에서 나서 광주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작가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자신의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그 때의 아픈 기억을 그림책 속에 담아냈습니다. 오늘 소개한 “아빠의 봄날”이 다소 묵직하다면 이 그림책은 조금 더 아이들 눈 높이에 맞춰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 5.18 광주민주화운동 자세히 알기

※ ‘가슴에 꽃으로 피어라’란 글은 2017년 4월 20일 이후 연결되지 않고, 네이버 캐스트 내에서 제목과 동일한 키워드로 검색했으나 해당 컨텐츠를 찾을 수가 없어 삭제했습니다.(2017/04/23)
기존 URL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42&contents_id=2695

※ 앞으로 시공주니어 그림책은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Mr. 고릴라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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