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삼킨 코뿔소
책표지 : Daum 책
달을 삼킨 코뿔소

글/그림 김세진 | 키다리

가온빛 추천 그림책
2015 가온빛 BEST 101 선정작


김세진 작가와는 이번이 두 번째 만남입니다. 첫 번째 만남이었던 “양들을 부탁해”의 그림이 워낙 인상적이었기에 지난 봄 그의 새 그림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주저 없이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사들고 왔었습니다. 바로 오늘 함께 볼 “달을 삼킨 코뿔소”입니다.

김세진 작가의 그림은 숨이 막힐만큼 느낌이 강렬합니다. 단 두 권뿐이었지만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마치 깊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합니다. 우리 그림책 작가들 중에서 이렇게 그림만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느껴지기는 김동성 작가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두 작가의 느낌은 사뭇 다릅니다. 서정미 넘치는 김동성 작가의 그림이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감싸주며 잔잔한 감동을 준다면, 김세진 작가의 그림은 보는 이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고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느껴집니다. 김동성 작가가 한국의 제리 핑크니라면 김세진 작가는 한국의 찰스 키핑이라고 하면 제격인 듯싶습니다.

“달을 삼킨 코뿔소”는 아이를 잃은 엄마의 슬픔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투박한 듯 거칠면서도 그림 구석구석 세심한 붓놀림을 따라가다 보면 폭주하고 마는 어미 코뿔소의 감정에 동화되어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져버릴 듯한 느낌에 감정을 추스리기 힘들어집니다. 그러다 어미의 상처를 보듬 듯 둥근 달 위로 아기 코뿔소의 환한 미소가 반짝이는 순간 격해졌던 감정이 사그라들며 나도 모르게 밀려나오는 눈물…… 그리고 텅빈 듯 한 마음……

달을 삼킨 코뿔소

엄마 코뿔소는 하루 온종일 지칠 줄 모르고 뛰어노는 아기 코뿔소가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길 빌며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고 있자면 세상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기 코뿔소는 늘 곁에서 자신을 돌봐주는 엄마 코뿔소가 있어 마음이 든든합니다. 그리고 어서 빨리 자라서 엄마처럼 크고 멋진 코뿔소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원한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비가 오는 초원은 생기가 넘쳐납니다. 엄마 코뿔소도 아기 코뿔소도 시원한 빗줄기가 반갑습니다. 그리고 빗속을 신나게 뛰어다니던 아기 코뿔소가 강으로 첨벙 뛰어듭니다. 오랜만에 만난 단비를 즐기던 엄마 코뿔소는 아기 코뿔소가 갑작스레 강물로 뛰어드는 바람에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달을 삼킨 코뿔소

빗줄기가 거세지면서 강물은 순식간에 불어났고 세상을 다 삼켜버릴 듯 거칠어진 물살 속으로 아기 코뿔소는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아기를 찾으려 강물에 뛰어들어보지만 엄마 코뿔소 역시 거친 물살을 헤쳐 나갈 수가 없습니다.

달을 삼킨 코뿔소

아기를 찾지 못한 채 물밖으로 떠밀려 나간 엄마 코뿔소는 넋이 나간 채 하염 없이 강만 바라봅니다. 길고 긴 하루가 지나고 비가 그쳤습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해진 강물. 그리고, 망연자실 강물만 바라보던 엄마 코뿔소의 눈에 아기 코뿔소의 모습이 들어옵니다. 강물위에 떠 있는 노란 아기 코뿔소의 모습에 엄마 코뿔소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릅니다.

“얘야, 어서 나오렴! 어서!”

하지만 아무 소용 없습니다. 아기 코뿔소는 물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달을 삼킨 코뿔소

엄마 코뿔소는 견디다 못해 강물로 뛰어듭니다. 그 순간 방금 전까지 물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아기 코뿔소는 사라져 버립니다.

“얘야, 얘야, 어디 있는 거니?”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리 찾아봐도 아기 코뿔소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강가로 나오자 아기 코뿔소의 모습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엄마 코뿔소는 다시 강물로 뛰어듭니다. 그러자 아기 코뿔소는 또 다시 사라집니다. 그러기를 수차례……

“얘야, 어서 나와 엄마 품으로 오렴!”

목 놓아 외칠 뿐,
더는 강으로 뛰어들 수 없었어요.
아기 코뿔소가 영영 사라질까봐 두려웠어요.

달을 삼킨 코뿔소

물위에 떠 있는 아기 코뿔소의 모습이 사라질까 두려워 더 이상 강물에 뛰어들지도 못한 채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엄마 코뿔소.

그러다가,
그러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어미 코뿔소는 알게 되었지요.
물 위에 비친 것은 아기 코뿔소가 아니라 달이라는 것을.

달을 삼킨 코뿔소

엄마 코뿔소는 화가 났습니다. 무심히 강을 비추는 달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추는 달이지만 자신의 소중한 아이가 있는 곳은 비춰주지 않는 달이 미웠습니다. 엄마 코뿔소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달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달을 향해 뛰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달을 삼켜 버렸습니다.

달이 사라지고,
초원은 모두를 잃은 듯이 고요와 어둠만 가득했어요.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그리움이 더 컸어요.

달을 삼킨 코뿔소

그리움의 시간이 덧없이 흐르는 동안,
엄마 코뿔소의 배 속에는 새로운 생명이 자랐어요.
얼마 후 새로운 아기 코뿔소가 태어났고요.
그리고 초원에도 달이 돌아왔답니다.

달을 삼킨 코뿔소

다시 돌아온 달이 초원을 환하게 밝혀주었습니다. 그리고 달 속에서 아기 코뿔소가 환한 웃음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엄마, 사랑해요! 난 잘 지내고 있어요.”

라고 말이죠.

엄마 코뿔소가 아기 코뿔소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때에 달은 늘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어두운 밤에도 아기 코뿔소가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도록 어둠을 밝혀주던 고마운 달이었습니다. 하지만 아기 코뿔소를 잃은 엄마 코뿔소에게 달은 원망의 대상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아기 코뿔소를 위한 노란 달빛이 아기 코뿔소가 없는 세상을 여전히 비추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엄마 코뿔소는 달을 미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슬픔에 아랑곳하지 않는 세상 모든 게 미웠을 겁니다.

그러나 자식 잃은 어미의 세상을 향한 원망은 달을 삼키는 순간 사그라듭니다. 사라진 달에 대한 그리움이 초원을 가득 채우자 엄마 코뿔소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기 코뿔소를 그리워 하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음을, 세상 모두가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있었음을, 온 세상이 자신과 함께 슬픔을 나누고 있었음을……

이제 달은 아기 코뿔소입니다. 엄마 코뿔소는 달을 삼킴으로써 아기 코뿔소를 자신의 마음에 묻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아기 코뿔소가 태어나는 날 엄마 코뿔소는 마음 속에 묻어두었던 아기 코뿔소를 달빛에 띄워 보냅니다. 이제는 놓아주어야만 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기 코뿔소에게 다해주지 못한 사랑까지 더해서 새로운 아기 코뿔소를 돌보는 것이 떠나간 아기 코뿔소를 온전히 놓아주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엄마 코뿔소를 바라보며 아기 코뿔소는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던 엄마에게 짧은 사랑의 위로를 달빛에 띄워 보냅니다.

“엄마, 사랑해요! 난 잘 지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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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족(아래 글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과 짐작일 뿐 작가와 출판사의 본래 의도와는 무관함을 미리 밝혀둡니다)

“달을 삼킨 코뿔소”의 출간일은 2015년 4월 20일입니다. 잘은 몰라도 책을 기획하고 작가와 출판사 간의 계약이 맺어지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책이 만들어진다고 치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1년 이상의 공이 들어갔을 겁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구요? 그림책을 다 본 후가 아닌 보기 전에 나오는 작가의 말 때문입니다.

수년 전,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친구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얼마 후,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에 잠긴 아이 엄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위로의 말 한마디조차 전할 수 없더군요. 절절한 아픔을 공감하며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렸습니다.

코뿔소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이들의 아픔을 위안하는 작은 씻김굿과 같은 책이 되길 바랍니다.

– 작가의 말

원문은 단락의 구분이 없지만 제가 임의대로 끊어봤습니다. 그림책을 만드는 중에 세월호 사고가 있었기에 작가는 지난 봄 이 그림책을 내며 세상의 슬픔에 편승하는 것 아닌가 싶은 마음의 부담을 떨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첫 번째 단락은 그런 작가의 변명 아닌 변명입니다. 하지만 출판사의 입장은 조금 달랐던 듯 합니다. 두 번째 단락은 세월호와의 연결점을 떼어내고 싶지 않은 출판사의 마음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분명한 건 애초에 책을 만들기 시작한 동기와는 무관하게 이 그림책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세월호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은 작가에게 틀림없이 부담이 되었을 거란 점입니다. 그림책을 소개하는 저 역시도 지난 4월 이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소개글을 올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4월 서점에서 만난 그림책’ 다섯 권 중 하나로 올리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주목할만한 그림책’ 목록 맨 윗자리에 얹어 놓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만큼 부담이 되어 이제서야 이 그림책을 소개하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