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의 마당

조지프의 마당

(원제 : Joseph’s Yard)
글/그림 찰스 키핑 | 옮김 서애경 | 사계절

가온빛 추천 그림책

※ 1969년 초판 출간


지난 주에 소개했었던 “찰리, 샬럿, 금빛 카나리아”가 찰스 키핑에게 첫 번째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을 안겨준 그림책이라면 오늘 함께 볼 “조지프의 마당”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입니다(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찰스 키핑은 모두 22 권의 그림책을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 이 책의 표지를 가장 좋아했다고 합니다).

조지프의 마당

여러분은 국내에 출간된 찰스 키핑의 일곱 권의 그림책들 중에서 어떤 책의 표지가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저는 그의 그림책 중에서 “윌리의 소방차”를 제일 좋아하는데, 책 표지는 “윌리의 소방차”“창 너머” 중에서 고민이 좀 되네요.

조지프의 마당

찰스 키핑이 “조지프의 마당”의 표지 그림을 가장 좋아했던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모델이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엔딩 장면에서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조지프와 찰스 키핑의 미소가 많이 닮은 듯 합니다.

더 재미있는 건 그림책 제목입니다. 원제인 ‘Joseph’의 영어 발음은 ‘조셉’입니다. 프랑스어로는 ‘조제프’ 정도로 읽을 테구요. 어떤 의도로 ‘조셉’을 ‘조지프’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조셉의 마당’보다는 ‘조지프의 마당’이 뭔가 좀 더 느낌이 있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흠… 설마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

쓸데 없이 서론이 좀 길었나요? ^^ 자~ 그럼 지금부터 찰스 키핑의 그림책 연재 중 두 번째 “조지프의 마당” 시작하겠습니다.

조지프의 마당

이 아이가 조지프입니다. 조지프의 마당엔 벽돌 담, 나무 울타리, 돌 바닥, 녹슨 고철들 뿐입니다. 삭막하기만 한 마당에서 조지프는 늘 혼자입니다. 비가 오거나 햇볕이 따사로와도, 바람이 불고 눈이 내려도 조지프의 마당엔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여전히 조지프는 혼자입니다. 조지프의 마당엔 생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조지프의 표정에서조차 어린 아이의 생기를 느끼기 힘듭니다.

조지프의 마당

어느 날 조지프는 마당의 고철들을 고물장수에게 갖다주고 나무 한 그루와 바꿔 옵니다. 그리고 마당의 돌 바닥을 걷어내고 나무를 심습니다. 작은 화분을 들고 오는 조지프의 조심스런 몸짓에서 희망에 대한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나무를 심기 위해 돌바닥을 뜯어내고 땅을 파내는 모습에서는 절박함마저 배어나오는 듯 해서 보는 이 마저 숙연해집니다.

조지프의 마당

비가 내리고 햇볕이 내리쬐고 나무는 자랐습니다. 시간이 가고 계절이 바뀌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던 조지프의 마당에 작은 변화가 생겨난 겁니다. 나무에서 작은 꽃망울이 솟아나고 꽃이 피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조지프의 표정에 드디어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활짝 핀 꽃이 예뻐서 꺾었습니다.
꽃은 시들어 버렸습니다.

조지프는 처음으로 살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자신 앞에 처음으로 나타난 희망을 두 손에 꼭 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손에 쥐는 순간 희망은 저 만치 달아나버립니다.

조지프의 마당

조지프는 다시 혼자입니다. 잠시나마 생명의 기운이 움텄던 마당은 다시 삭막함으로 가득합니다. 바람이 불고 눈이 온 마당을 뒤덮었습니다. 고개 숙인 조지프는 이제 하늘을 바라 볼 용기조차 생기지 않습니다.

조지프의 마당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봄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내리쬐는 따스한 햇볕 아래에서 조지프는 반가운 기운을 느낍니다. 설레임과 기대로 가득찬 눈빛으로 고개를 돌리는 조지프의 표정은 잔뜩 긴장한 듯 보입니다. 조지프의 눈길이 닿은 곳엔 나무가 되살아나 있습니다.

이번에는 꽃이 피어도 꺽지 않았습니다.
나무가 있으니 벌레들이 찾아들었습니다.
벌레가 있으니 새들이 찾아들었습니다.
새가 있으니 고양이들이 찾아들었습니다.

되살아난 나무는 삭막했던 조지프의 마당에 초록의 싱그러움과 함께 다른 친구들까지 데려왔습니다. 하지만 조지프는 아직 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오로지 되살아난 나무와 다시 예쁘게 피어난 꽃만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자신은 혹시나 상할까 싶어 만져 보지도 못하는 꽃과 나무에 찾아든 벌레와 새들과 고양이들이 못마땅합니다.

조지프의 마당

조지프는 꽃과 함께 찾아든 손님들을 내쫓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게 자신의 외투로 꽃과 나무를 가려줍니다. 하지만 조지프의 외투는 햇볕과 비 마저 가려버렸고 결국 꽃은 또다시 죽고 말았습니다.

조지프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힘듭니다. 잘 하려고 했던 건데 결국은 꽃을 죽게 만든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이제 다시는 꽃과 나무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눈 앞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조지프의 마당

다시 햇볕이 내리쬐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하지만 조지프는 나무를 가만 두었습니다.
철이 바뀌어 갈수록
나무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조지프의 마당

나무는 되살아났습니다. 그리고 무럭무럭 자라서 무성한 가지와 흐드러지게 핀 꽃들로 조지프의 마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벌레들도 새들도 고양이들도 모두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젠 조지프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친구임을. 지켜볼 수 있어서,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함을.

조지프는 행복했습니다.

그늘진 마당에서 겪는 아이의 성장통

“찰리, 샬럿, 금빛 카나리아”에서 고층 아파트 꼭대기에 갇힌 채 친구를 그리워하던 샬럿처럼 조지프는 자신의 마당에 갇혀 있습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일상은 아이에겐 척박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 모두 일터로 나간 뒤 홀로 남은 조지프에게 마당은 삶의 공간입니다.

삭막한 마당에서 조지프가 처음 배운 것은 고독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며 세상은 흘러가는데 조지프만 멈춰 서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조지프의 고독은 절망으로 치닫지 않습니다. 고독하면 고독할수록 조지프는 더욱 더 희망을 품으려고 합니다. 비가 오고 햇볕이 내리쬐고 바람이 부는 가운데 돌 바닥과 고철 더미에서 아주 작은 변화라도 찾아내려는 노력은 자신만의 꿈을 꾸고 싶은 조지프의 작은 몸부림입니다. 자신에게 포기와 절망을 강요하는 고철 덩어리들을 고물장수에게 내던져 주고 받아 온 나무 한 그루는 조지프의 꿈과 희망입니다.

봄비와 따스한 햇볕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나무는 조지프 바로 자신입니다. 세월의 풍상 속에 한 마디 한 마디 늘어가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조지프 역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갑니다. “조지프의 마당”은 때로는 슬픔과 좌절을, 때로는 기쁨과 희망을 맛보며 견뎌내는 삶 속에서 결국엔 자신의 꿈과 희망을 키워가는 조지프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삶의 실체를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나이테가 보여주는 삶의 질감

조지프의 마당

위 그림은 “조지프의 마당”의 면지입니다. 나이테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무 껍질에 새겨진 무늬 같기도 합니다. 이 무늬들은 “조지프의 마당”의 모든 그림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직선으로 때로는 곡선으로, 어떤 때는 가로로 어떤 때는 세로로, 실선인가 하면 점선으로 바뀌며 조지프의 감정과 비, 바람, 눈, 햇살 등을 표현합니다. 조지프의 마당의 벽돌에도, 조지프에게 나무를 팔던 고물장수 아저씨의 몸에도, 세월의 풍상을 견뎌내고 마침내 조지프의 마당에 우뚝 선 나무의 겉옷에도 이 무늬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나이테 건 세월의 풍상이 새겨놓은 나무의 겉옷이 건 그것의 의미는 같습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세월입니다. 짧으면 짧은대로 길면 긴대로 살아온 만큼의 무늬가 새겨집니다.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고 기록입니다.

선으로 그린 시간, 계절, 세월

조지프의 마당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철이 들다’에서 ‘철’은 계절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계절이 바뀌며 변해가는 세월을 견뎌내어야만 삶의 참된 의미를 알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스치며 흘러가는 세월의 한 복판에서 어린 조지프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려낸 찰스 키핑 역시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선으로 계절을 그려냈습니다. 잔잔히 내리는 봄비는 세로로 흘러 내리는 선으로, 따뜻한 햇볕은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선으로, 마른 나뭇잎을 떨궈 내는 가을 바람은 가로 선으로, 온 세상을 뒤덮는 하얀 눈은 점선으로 표현했습니다.

비와 햇볕, 바람과 눈이 나무와 꽃에게 생명을 주었듯이 조지프를 감싼 선들은  그에게 세월의 깊이를 가르쳐줍니다. 삶의 의미를 그의 마음 속 깊이 새겨줍니다. 그리고 절망에서 희망의 씨앗을 싹 틔우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혼자 였던 그에게 함께 하는 삶의 기쁨을 알려줍니다.

“창 너머”와 함께 그의 작품 중 최고로 평가 받을만큼 그림 한 장 한 장마다 작가의 열정이 느껴지는 그림책 “조지프의 마당”이었습니다.


찰스 키핑의 그림책들


내 오랜 그림책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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