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고약한 치즈맨과 멍청한 이야기들

냄새 고약한 치즈맨과 멍청한 이야기들

(원제 : The Stinky Cheese Man and Other Fairly Stupid Tales)
존 셰스카 | 그림 레인 스미스 | 옮김 이상희 | 담푸스

※ 1993년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
※ 1992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 선정작


존 셰스카가 “개구리 왕자 그 뒷 이야기”(존 셰스카, 스티브 존슨 / 보림 / 1996),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에 이어 내놓은 “냄새 고약한 치즈맨과 멍청한 이야기들”은 아이들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들을 요리조리 비틀고 꼬아서 새로 만들어내는 그의 패러디 욕심이 가득 담긴 그림책입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패러디한 전작들에 비해서 “냄새 고약한 치즈맨과 멍청한 이야기들”에는 무려 10 가지나 되는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집니다.

냄새 고약한 치즈맨과 멍청한 이야기들

“냄새 고약한 치즈맨과 멍청한 이야기”의 책표지입니다. 무난한 앞표지에 비해 뒷쪽 표지는 심상치 않습니다. “누가 이런 책을 사?” 어쩌구 저쩌구 떠들어대는 빨간 암탉은 “꼬꼬닭 빨강이를 누가 도와줄래?”(제리 핑크니 / 열린어린이 / 2008)의 주인공 빨강이입니다. 이 그림책의 이야기를 진행하는 보조 MC죠.

그럼 메인 MC는 누구냐구요? ‘잭과 콩나무’의 잭입니다.

냄새 고약한 치즈맨과 멍청한 이야기들

어떤 이야기들을 패러디했는지 차례부터 먼저 볼까요?

  1. 병아리 리켄 : ‘치킨 리틀’ 이야기
  2. 공주와 볼링공 : “공주님과 완두콩”
  3. 아주 못생긴 아기 오리 : “미운 오리 새끼”
  4. 또 다른 개구리 왕자 : 개구리 왕자
  5. 아주 빨리 달리는 빨간 반바지 꼬마 : 빨간 모자
  6. 잭의 콩 문제 / 거인의 이야기 / 잭의 이야기 : 잭과 콩나무
  7. 신데럼펠스틸트스킨 : ‘신데렐라’와 “룸펠슈틸츠헨”
  8. 거북과 머리카락 : 토끼와 거북이
  9. 냄새 고약한 치즈맨 : 생강빵 아이(진저브레드 맨)

그림책 속 차례와 좀 다르다구요? 맞습니다. 위 그림에 나온 차례와 실제 그림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차례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잭의 콩 문제’ 다음에 ‘거인의 이야기’와 ‘잭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있는 ‘암소 패티’라고 외친 소년은 차례에만 있고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병아리 리켄’이 끝날 때쯤에서야 차례가 나오고, 이야기 도중 등장 인물들이 잭에게 화가 나서 그림책 밖으로 나가 버리는 등 메인 MC 잭의 이야기 재주가 영 서툰 걸 봐서는 차례도 분명 잭의 실수일 겁니다.

그나저나 차례 그림을 가만 보면 밑에 누군가 깔려 있습니다. ‘병아리 리켄’ 이야기에 등장하는 병아리, 오리, 거위, 수탉과 이들을 잡아먹으려던 여우랍니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던 병아리 리켄의 쓸데 없는 걱정이 결코 쓸데 없는 건 아니었나봅니다. 하늘이 무너지진 않았지만 차례가 무너져 내렸으니 말입니다.

“냄새 고약한 치즈맨과 멍청한 이야기들”에 나오는 다른 멍청한 이야기들 몇 가지 더 들어볼까요.

아주 못생긴 아기 오리

냄새 고약한 치즈맨과 멍청한 이야기들

옛날 옛적에 엄마 아빠 오리와 일곱 마리 아기 오리가 살았는데 아기 오리 한 마리가 아주 못생겼대요. 하지만 다른 오리들이 못생겼다고 놀려도 아주 못생긴 아기 오리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자라면 아주 늘씬한 고니가 되어서 연못에서 가장 잘 생기게 될 거라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다 자라서도 정말 아주 못생긴 오리가 되었습니다. 😳

또 다른 개구리 왕자

냄새 고약한 치즈맨과 멍청한 이야기들

물에 뜬 백합 이파리 위에 앉아 있던 개구리가 연못가에 찾아온 아름다운 공주에게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며 부탁을 했습니다. 자기에게 뽀뽀를 해 주면 못된 마녀의 마법이 풀려 잘 생긴 왕자로 변할 거라고. 공주는 개구리를 번쩍 들어 올린 후 뽀뽀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개구리가 말합니다.

“그냥 장난친 건데.”

공주는 끈적끈적해진 입술을 얼른 닦았대요. 😀

신데럼펠스틸트스킨

냄새 고약한 치즈맨과 멍청한 이야기들

새엄마와 언니들이 무도회에 가고 난 뒤 홀로 남아 있는 신데렐라에게 작은 사내 하나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맞추면 밀짚으로 황금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말합니다. 신데렐라의 대답이 재미납니다.

그건 소용없을 것 같아요.
난 멋진 드레스와 유리 구두와 마차가 필요하거든요.

이렇게 말하고는 시큰둥한 신데렐라가 집 밖으로 쫓아내자 작은 사내는 답답한 나머지 자기 이름을 외쳐댑니다.

럼펠스틸트스킨! 럼펠스틸트스킨! 럼펠스틸트스킨!

새엄마와 언니들이 돌아오자 신데렐라는 작은 사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엄마와 언니들은 신데렐라에게 잔뜩 집안 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신데렐라를 신데럼펠스틸트스킨이라고 불렀다는군요.

얼렁뚱땅 엉망진창이지만 기발하고 재미난 이야기들

그저 못생긴 오리였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미운 오리 새끼, 예쁜 공주와 결혼하고 싶어서 요 백 장 밑에 완두콩 대신 볼링공을 집어넣은 왕자, 냄새가 하도 고약해서 먹어볼 생각은 커녕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치즈맨,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들을 뒤죽박죽 뒤섞어 버무려 놓은 그림책.

존 셰스카의 더미북을 본 출판사들은 대부분 이 그림책의 출간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겹게 출간된 책은 순식간에 품절, 많은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나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칼데콧 명예상 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으로 선정되는 등 많은 그림책상을 휩쓸었습니다.

얼렁뚱땅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있지만 “냄새 고약한 치즈맨과 멍청한 이야기들”은 일단 책을 펼치면 내려 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또 얼마나 엉뚱할까? ‘빨간 모자’ 이야기는 또 어떻게 비비 꼬아 놓았을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막상 읽고 나면 싱거운 듯 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배울 게 없다? 발상의 전환 그 자체가 교훈!

‘이런 싱거운 이야기들로 어떻게 칼데콧상을 받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냄새 고약한 치즈맨과 멍청한 이야기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동전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좀더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미운 오리 새끼’를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기존의 이야기에서 미운 오리 새끼의 행복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들의 시선에 좌우됩니다. 남들이 못생겼다고 놀려댈 때는 불행하기만 하다 어느 날부턴가 아름답다고 칭찬하자 갑자기 행복을 느낍니다. 자신의 삶의 행복을 스스로가 아닌 주변의 판단에 맡긴 미운 오리는 자신이 백조임을 깨닫고 행복을 찾긴 했지만 주변의 시선이 또 다시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순간 불행해지고 말 겁니다.

하지만 이 그림책 속에 나오는 ‘아주 못생긴 아기 오리’는 아름다운 백조로 변신하지 못했고, 여전히 주위에서 너무 못생겼다고 놀려대지만 불행하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자신의 외모와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며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못생겼지만 아주 멋진 오리기 때문입니다. 이 오리야말로 결국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될 겁니다. 자기가 꿈꾸는 삶을 살며 스스로 정한 행복의 조건을 채워가며 살아갈 테니까요.

나머지 이야기들엔 또 어떤 발상의 전환과 멋진 인생이 숨겨져 있을까요? 아이들과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 나눠 보세요.

오늘의 그림책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왜 갑자기 끝이냐구요? “냄새 고약한 치즈맨과 멍청한 이야기들” 작가도 얼렁뚱땅 썼는데 저라고 얼렁뚱땅 못할 이유 있나요? 😎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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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room
kooroom
2017/08/18 09:53

원서로 이 책이 집에 있는데 어릴때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갔었던 기억이 ㅎㅎㅎ 나요 ㅎㅎ 동화책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어서인지 저는 웃음 포인트도 이해 못했었네요. 오랫만에 다시 꺼내봐야겠어요! ^^

이 선주
Editor
2017/08/25 12:38
답글 to  kooroom

쿠룸님, 그림책의 역사가 굉장히 깊으셨군요.^^
발상의 전환이 아주 신선한 책인데 꽤 풍자적인 스토리를 담은 패러디 그림책이라 그랬을지도 몰라요.
1992년에 나온 책이니 그때 읽은 사람들은 어떻게 느꼈을까요?
같은 그림책에 대한 여러 생각이나 추억들 다다른 것이 그림책이 가진 커다란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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