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터의 서커스

빈터의 서커스

(원제 : Wasteground Circus)
글/그림 찰스 키핑 | 옮김 서애경 | 사계절

가온빛 추천 그림책

※ 1975년 초판 출간


그림책 “빈터의 서커스”의 표지의 세로로 물든 무지개빛을 보니 어린 시절 전자오락실이 떠오릅니다. 제가 어릴적 전자오락실은 ‘인베이더’라는 게임이 가장 인기였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등장한 ‘스크램블’이 ‘인베이더’의 독주를 막았더랬습니다. 두 게임은 플레이 방식도 전혀 다릅니다. ‘인베이더’는 위에서 아래로 퍼붓는 외계인의 공격을 피해가며 지구를 지키는 방어적 게임이었다면, ‘스크램블’은 좌에서 우로 우주의 한 공간을 누비며 외계인들을 공략하는 공격적 게임이었습니다. 무기도 ‘인베이더’는 아래에서 위로 쏴대는 직사포 한 가지 뿐이었지만 ‘스크램블’은 직사포와 곡사포 두 가지였죠. 재미난 건 당시 흑백 모니터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전자오락실 아저씨들이 서너가지 색깔의 셀로판 테이프를 모니터에 붙여서 컬러로 변신시켰었단 겁니다. 종으로 플레이하는 ‘인베이더’는 가로로, 횡으로 플레이하는 ‘스크램블’은 세로로 셀로판 테이프를 붙여놓는 것만으로도 컬러라면서 아이들이 개미 떼처럼 들러붙곤 했었죠.

그림책 표지 속 두 꼬마의 이름은 스콧과 웨인입니다. 무지개빛 아래 서 있는 친구가 스콧, 잿빛 속에 서 있는 친구가 웨인입니다. 스콧과 웨인은 개발이 한창인 도시 한 켠의 한 마을에서 늘 함께 붙어다니는 단짝 친구입니다. 셀로판 테이프로 흑백 게임기를 컬러 게임기로 변신시킨 전자오락실 아저씨처럼 찰스 키핑은 생기 잃은 잿빛 도시에 알록달록한 희망을 선물합니다. 그런데 왜 절친 스콧과 웨인은 서로 다른 색을 배경으로 선 채 마주 보고 서 있는 걸까요?

찰스 키핑의 그림책 연재 세 번째 이야기 “빈터의 서커스”입니다.

빈터의 서커스

낡은 주택과 공장, 그리고 창고들이 헐리자 그 자리에 커다란 빈터가 생겼습니다. 스콧과 웨인은 언제나 이 빈터에서 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빈터에 낯선 짐차들이 잔뜩 와서는 진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두 아이는 자신들의 놀이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단박에 알아차렸습니다.

바로 서커스!

부리나케 각자 집으로 달려가 용돈을 받아들고는 다시 빈터로 돌아온 스콧과 웨인은 표를 사서 맨 앞에 있는 천막으로 달려갑니다.

빈터의 서커스

잔뜩 들뜬 마음으로 첫 번째 천막에 뛰어들었던 스콧과 웨인은 권태로운 표정의 사람들을 보고는 어리둥절합니다. 지금껏 상상해왔던 서커스단 사람들과는 아주 달랐으니까요. 다음 천막엔 동물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멍한 표정의 돈점박이 말, 잠들어 있는 사자…… 뭔가 화려하고 시끌벅적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축제의 현장 같아야 할 서커스 천막 안이 너무 지루하기만 한 스콧과 웨인. 하는 수 없이 놀이기구를 타며 시간을 보냅니다.

빈터의 서커스

이것저것 놀이기구들을 타며 시간을 보내던 스콧과 웨인은 드높은 음악 소리에 이끌려 다시 서커스 천막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지금껏 잿빛 일색이던 그림은 스콧과 웨인이 서커스 천막으로 다시 들어서는 순간부터 조금씩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푸른 빛을 내뿜으며 두 아이를 끌어 당기는 듯한 서커스 천막의 입구, 화려한 연주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관중들의 설레임과 흥분이 묻어난 발그스레한 색깔…… 그림책을 보는 이 역시 서서히 닳아오르는 듯 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되는 서커스 공연!

빈터의 서커스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어쩐지 슬퍼 보이는 어릿광대들.

빈터의 서커스

우아하게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돈점박이 말.

빈터의 서커스

존경하는 마음이 생길만큼 대담하고 현란한 곡예사들의 묘기.

빈터의 서커스

쩌렁쩌렁하게 포효하며 타오르는 불길을 향해 몸을 날리는 사자.

빈터의 서커스

화려한 무희들의 춤에 질세라 잔뜩 뽐내는 듯한 코끼리의 공연…

빈터의 서커스

기다리던 시간과는 달리 화려한 서커스 공연은 순식간에 끝나버리고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천막이 걷히고 짐차들은 사라졌습니다. 빈터는 텅빈 채 스콧과 웨인 둘만의 놀이터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빈터의 서커스

스콧에게 이 빈터는 옛날의 빈터가 아니었습니다.
스콧은 서커스가 마을에 들어왔던 이 날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스콧의 마음 속에서 이 빈터는
늘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곳이 된 것이지요.

우리 삶에 공존하는 빈터와 서커스

찰스 키핑은 그림책 “빈터의 서커스”를 통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삶의 진실 한 가지를 보여줍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빈터와 서커스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늘 공존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이상과 현실…… 늘 좋은 일만 생기면야 좋겠지만 우리 인생이 그렇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 삶의 기쁨이 더욱 더 커질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가르쳐 줍니다. 기쁜 날이 오길 바라며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삶, 절망의 늪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삶,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꿈과 이상을 내려 놓지 않는 삶을 살아가라고 말입니다. 빈터에 다시 서커스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스콧처럼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과 가능성을 좇는 삶

서커스 공연을 보고 난 후 단짝 친구 스콧과 웨인에게는 작은 차이가 생겼습니다. 웨인에게 서커스단이 떠난 빈터는 다시 예전의 쓸쓸한 놀이터일 뿐입니다. 하지만 스콧에게는 이 빈터는 더 이상 예전의 빈터가 아닙니다. 서커스의 화려함과 황홀함을 마음 속에 간직한 스콧에게 이 빈터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넘쳐나는 곳이 되었습니다.

스콧은 눈앞의 현실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만의 꿈을 꾸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가능성의 씨앗이 스콧의 마음 속에 싹트게 된 것입니다.

찰스 키핑의 화두

여전히 잿빛 도시에 서 있는 웨인과 무지개빛 아래 서게 된 스콧이 마주 보는 마지막 장면. 얼핏 보면 찰스 키핑은 서커스가 끝난 후 두 아이의 차이를 설명함으로써 ‘똑같은 상황에서 꿈을 갖게 된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라는 결론으로 그림책을 끝맺는 듯 합니다.

하지만 마주 보고 있는 두 아이를 바라보고 있자면 그게 전부는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마지막 장면은 보는 이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이야기로의 가능성을 살짝 열어둔 열린 결말 아닐까요? 40년 전인 1975년에 초판이 나왔으니 스콧과 웨인은 지금쯤 40대 후반이나 50대 초중반이 되어 있겠군요. 어릴 적 빈터의 서커스를 함께 보았던 두 친구는 40년이 지난 지금 과연 어떤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을까요?

차분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웨인의 표정과 조금은 들떠 있는 듯 몽롱한 스콧의 눈빛을 보며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웨인은 철저한 현실주의자, 스콧은 몽상가. 웨인은 자수성가한 사업가가 되어 어릴적 그 빈터에 지어진 수많은 빌딩들을 보유한 자산가가 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스콧은 아무도 알아주진 않지만 자신만의 음악을 노래하는 거리의 악사나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어 있을 것 같구요.

누가 더 행복할 것 같냐구요? 아마도 바로 그 부분이 찰스 키핑이 우리에게 제시한 화두 아닐까요? 찰스 키핑의 물음에 정답은 없습니다. 현실과 이상의 균형을 이룬 삶일 수도 있고,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란 뜻일 수도 있고, 꿈을 잃지 않는 삶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행복한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찰스 키핑의 그림책들


내 오랜 그림책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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