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원제 : One Morning In Maine)
글/그림 로버트 맥클로스키 | 옮김 장미란 | 논장

※ 1953년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


아기가 태어나서 6개월 가량 되면 아래쪽 앞니가 제일 먼저 나옵니다. 첫니가 나온 것을 시작으로 쪼로록 새싹처럼 나온 젖니는 예닐곱 살쯤 되면 나온 순서대로 다시 빠지기 시작하죠. 딸 아이 첫니가 쏘옥 올라왔을 때 놀라워했던 기억도 선명하지만, 첫니 뺐던 날의 기억 역시 잊을 수가 없네요. 뭔지 모를 뭉클함에 기념 사진도 찍어두고 첫니 빠진 날 기념 행사도 했는데 정작 아이는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로버트 맥클로스키에게 “아기 오리들한테 길을 비켜 주세요” 이후 두 번째 칼데콧 상을 안겨준 “어느 날 아침”은 샐의 첫니가 빠진 날에 대한 에피소드를 그린 그림책으로 로버트 맥클로스키의 단색 그림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뭔가 아련한 듯 느껴지는 이 이야기를 읽다보면 왠지 고향에 와 있는 듯 편안하면서도 기분 좋은 향수가 느껴집니다.

어느 날 아침

햇살이 눈부신 아침, 좀 더 자려고 이불을 뒤집어쓰던 샐은 벌떡 일어나 옷을 입고 씻으러 갑니다. 오늘은 아빠와 벅스항에 가기로 약속한 날이거든요. 마침 제 방에서 나오던 동생과 마주친 샐은 동생 옷을 입혀주고 치약도 짜준 후 자신도 이를 닦으려다 이가 흔들리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샐은 겁이나서 엄마에게 달려갔어요.

“엄마아아! 이가 흔들려요!
이제 전 아프니까 누워 있어야겠죠?
아침도 못 먹고 아빠랑 벅스 항에도 못 갈 거예요!”

어느 날 아침

엄마는 누구나 자라면 젖니가 빠진다고 이야기 해주셨어요. 젖니가 빠진 자리에는 튼튼한 이가 자란다면서 빠진 이를 베개 밑에 두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도 해주셨죠.  엄마의 말에 안심이 된 모양이네요. 샐이 이렇게 말했거든요.

“저는 다 컸으니까 아빠를 도와서 대합조개를 빨리, 많이 캐올게요. 그래야 빨리 벅스 항에 갔다 오죠.”

어느 날 아침

대합조개를 캐고 있는 아빠를 도와드리러 가는 길에 샐은 물수리도 만나고, 되강오리도 만나고 바다표범, 갈매기도 만납니다. 그 때마다 샐은 이가 흔들린다면서 자랑을 했어요. 샐의 관심은 온통 흔들리는 이에 있었어요. 새끼 물수리도 이가 있어서 먹이를 씹어먹을지, 되강오리는 이가 없어서 먹이를 꿀꺽 삼키는 것인지 온통 궁금한 것 투성이입니다.

어느 날 아침

“아빠! 나, 이가 흔들려요! 이가 빠지면 베개 밑에 넣고 소원을 빌 거예요. 이가 흔들리는 게 눈으로 보여요!”

흔들리는 이를 자랑하는 샐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아빠의 다정한 미소…^^ 이가 빠지면 무슨 소원을 빌건지 아빠가 묻자 샐은 비밀이랍니다. 엄마가 말씀하셨거든요. 소원을 미리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구요.

어느 날 아침

조개를 캐면서도 샐의 관심은 온통 이에 쏠려있어요. 재잘재잘 아빠에게 이런저런 것을 묻느라 정신 없던 샐, 그러다  어느 순간 이가 빠져버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이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가 없어졌으니 이제 소원을 빌 수도 없게 생겼네요. 혹시나 하고 개흙을 뒤져봤지만 소용 없었어요. 그만 돌아가자는 아빠 말씀에 샐은 울상이 되어 말합니다.

“틀림없이 다른 조개가 제 이를 주웠을 거예요. 내일 다시 와보면 제가 소원을 빈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대합조개가 대신 먹고 있겠죠. 그 아이스크림이랑 이는 제 거니까, 도로 내놓으라고 할래요.”

아하~ 샐의 소원은 초콜릿 아이스크림이었군요.

어느 날 아침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던 샐은 돌아가는 길에 갈매기 깃털을 하나 주웠어요. 잃어버린 자신의 이 대신 깃털에 대고 비밀 소원을 빈 샐은 동생 제인을 데리고 아빠와 함께 사야 할 물건이 적힌 쪽지와 가게에 갖다 줄 빈 우유병 상자를 싣고 벅스항으로 향합니다. 동생 손을 꼭 잡고 의젓하게 엄마에게 약속도 하죠.

“제인을 잘 데리고 갔다 올게요. 전 다 컸으니까 제인이 물에 빠지지 않도록 잘 돌보아 줄 거예요.”

어느 날 아침

벅스항으로 향하는 길, 아빠 배가 고장이 났어요. 노를 저어 벅스항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고장난 발동기를 고치기 위해 정비소에 들릅니다. 그곳에서도 샐은 잊지 않고 자신의 빠진 이를 자랑했어요. 샐은 아저씨가 빼낸 낡은 점화전을 동생에게 주면서 점화전에도 소원을  빌었어요. 샐에게는 빠진 이, 갈매기가 떨어뜨린 깃털, 발동기에서 꺼낸 낡은 점화전이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제몫을 다한  낡은 물건이면서 동시에 소원을 빌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죠.

어느 날 아침

식료품가게에서 만난 아저씨들에게도 이가 빠진 것을 자랑한 샐. 가게 아저씨는 샐에게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주셨어요. 갈매기 깃털 덕분이었을까요, 낡은 점화전 덕분이었을까요? 샐의 비밀 소원이 이루어졌네요.

필요한 물건을 모두 구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더 달라 조르는 동생에게 샐은 의젓하게 말합니다.

“아이스크림을 두 개나 먹으면 입맛이 없을 거야.
집에 가면 맛있는 대합조개탕이 기다리고 있잖아!”

한 손에는 갈매기 깃털을, 다른 한 손으로는 동생을 꼭 붙들고 있는 샐이 다 큰 언니같습니다. 엄마가 끓인 대합조개탕이 기다리고 있는 집, 행복과 사랑 가득한 샐의 집에서 보글보글 대합탕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어린 시절엔 왜그리 얼른 자라고 싶었는지……. ‘의젓해졌다’, ‘다 컸다’라는 말이 왜그리도 좋았었는 모르겠어요. 이가 빠진 오늘 하루, 마음이 성큼 자란 샐처럼 우리도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자라온 거겠죠?

어느 날 아침

로버트 맥클로스키는 메인 주를 배경으로 1948년 “딸기 따는 샐(Blueberry for Sal)”을, 1952년 “어느 날 아침”을 출간했습니다. 두 그림책의 주인공 이름은 모두 ‘샐(Sal)’입니다. 엄마랑 블루베리를 따러 갔다 곰을 만나는 이야기를 담은 “딸기 따는 샐”에서의 샐은 아직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어리답니다.(위 사진 왼쪽) “어느 날 아침“에서 훌쩍 자란 샐을 보면 마치 영화 후속편에서 훌쩍 자란 영화속 주인공과 만나는 기분이 들어요.(해리포터의 주인공 해리가 영화 한 편 한 편마다 훌쩍 자랐듯이 말이죠.) 블루베리를 먹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엄마 곰을 쫓아가던 철부지 샐이 어느 덧 훌쩍 자라 동생을 따뜻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니 내 아이 자란 것처럼 대견스러워집니다.

섬세하고 따뜻한 흑백 그림을 즐겨 그린 로버트 맥클로스키, 그가 그려낸 담백한 일상의 이야기는 오래된 흑백 영화를 마주하는 것처럼 평온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내 오래된 일기장과 마주하는 듯 편안하고 마음에 오래 오래 남아 있어요. 1952년에 출간 된 책이니 할머니가 읽었던 책을 엄마가 읽고, 그 책을 다시 아이가 읽으며 자란 셈이네요. 명작은 세대를 뛰어넘는 힘이 있습니다. 마음을 두드리는 힘이 있습니다. ^^

※ “딸기 따는 샐(Blueberry for Sal)”의 한글판은 전집에 묶인 채 출간되었습니다. 가까운 도서관에서 빌려 보시거나 원서로 찾아 보세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0 0 votes
Article Rating
알림
알림 설정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모든 댓글 보기
0
이 글 어땠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