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골 작은 집

깊은 산골 작은 집

글/그림 김지연 | 느림보

가온빛 추천 그림책


어린 시절 저에게 봄은 노란 종이에 붉은 글자로 쓰여진 “입춘대길 만사여의형통(立春大吉萬事如意亨通)”이라는 길쭉한 부적과 함께 시작되었어요. 잠 자다 깜짝깜짝 잘 놀라는 저를 위해 어느 날은 할머니가 베개 속에 손바닥만한 부적을 작게 접어 넣어주셨던 기억도 있습니다. 음, 그것이 무엇이었든 액을 막고 복을 부르는 부적이 가끔은 간절해 질때가 있죠. 요즘 같은 시절에는 더욱이……

오늘 소개 하는 “깊은 산골 작은 집”“한글 비가 내려요”, “꽃살문” 등의 그림책에서 한국적 정서를 담은 개성 넘치는 판화 그림에 독특한 스토리를 선보여 왔던 김지연 작가의 그림책으로 우리 전통 문화와 함께 해온 부적을 소재로 만든 그림책입니다.

깊은 산골 작은 집

꽃구름이 보름달을 싣고 열두 고개 넘어 깊은 산골 작은 집에 놀러온 캄캄한 밤,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보름달 때문에 쿵! 하고 작은 집이 흔들렸어요. 그 바람에 벽에 붙여 놓은 부적에서 귀신 쫓는 삽사리, 해를 부르는 수탉, 하늘 땅 두루 살피는 머리 셋 달린 새가 튀어나왔고 삼신 할머니와 심술통 망태 할아버지도 깨어났어요.

깊은 산골 작은 집

이상한 소리에 눈을 뜬 울보 연이는 오빠를 흔들어 깨웠죠. 잠에서 깬 오빠는 맨발로 달려나가 삼신 할머니에게 같이 놀자고 조릅니다.

삼신 할머니는 오빠에게 부적 두 장을 쥐어 주시며 달에 가서 토끼한테 맛난 떡 좀 얻어 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삼신 할머니가 건네 주신 부적 두 장을 가지고 모험을 떠나게 된 연이와 오빠, 오누이는 무사히 달에 가서 토끼에게 맛난 떡을 얻어 올 수 있을까요?

깊은 산골 작은 집

심술통 망태 할아버지가 밤중에 잠 안자고 돌아다니는 연이와 오빠를 혼구멍을 내준다면서 뒤쫓아갔어요. 발아래는 시퍼런 바닷물이 철썩철썩, 망태 할아버지가 오누이를 막 덮치려는 순간, 어디선가 휘이익 날아온 머리 셋 살린 새 삼두조가 연이와 오빠를 태우고 날아갑니다. 연이와 오빠가 삼두조를 타고 가까스로 도망치려했지만 망태 할아버지가 어느새 오누이를 따라잡았네요. 놀란 울보 연이 울음보가 터질락말락 하는데 오빠가 소리쳤어요.

연이야, 어서 부적을 던져!

깊은 산골 작은 집

삼신 할머니가 주신 부적을 바다에 던지자 파도가 출렁출렁 꿈틀꿈틀, 바다에서 푸른 용이 솟구쳤어요. 용비늘에 눈이 부셔 바다에 빠질 뻔한 망태 할아버지는 간신히 용꼬리에 매달렸습니다.

푸른 용이 오누이를 태우고 달이 코 끝에 닿을 때까지 날아오르자 눈 앞에 방아 찧는 토끼가 보였어요.

깊은 산골 작은 집

붉은 빛을 몰아갔던 오누이가 목적지인 노란 달과 만나는 순간, 노란 빛과 붉은 색이 만나 절정을 이루며 멋진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연이가 토끼에게 떡 좀 나눠 달라 부탁하자 토끼가 대답했어요.

무슨 말씀? 달떡을 그냥 달라고?
보름이 지나면 달이 어두워져 방아 찧기 힘들어.
그러니까 이 떡은 우리가 다 먹어야 돼

이렇게 어렵사리 달까지 왔는데, 연이와 오빠는 잔치에 쓸 달떡을 구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걸까요?

깊은 산골 작은 집

그 때 하늘에 사는 게 소원이었다는 푸르른 용이 밤하늘로 풍덩 빠지자 반짝이던 용 비늘이 찰랑찰랑 은하수가 되어 어두운 하늘을 환하게 비추어 줍니다. 이제 달토끼는 달이 어두워져도 방아를 찧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러자 토끼들은 연이에게 달떡을 나눠주었지요. 이제 달떡을 들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네요.

깊은 산골 작은 집

신통방통 남은 부적 하나를 펼치자 커다란 호랑이가 튀어 나왔어요. 호랑이가 무서워서 눈물바람이 된 울보 망태 할아버지를 이제 연이가 달래줍니다.

울지 마요, 울지 마.
잠 안자고 울면 무서운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대요.
자, 이제 집으로! 당장당장 집으로!

모험은 두렵고 무서웠지만 모험을 통해 한층 성장한 연이는 애지중지 들고다니던 꽃이불을 망태 할아버지에게 덮어주며 달랠 줄도 알게 됩니다. 연이의 곱고 순수한 마음이 참 이쁘네요.^^

깊은 산골 작은 집

밝은 보름 밤, 깊은 산골 작은 집에서는 흥겨운 잔치가 벌어졌어요. 푸른 용이 은하수로 흐르고 호랑이가 앞산뒷산 노니는 밤…… 보기만 해도 어깨춤이 들썩 들썩 신나는 달밤입니다.

용감한 오빠와 울보 연이의 달 밤 신나는 모험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주는 것은 무엇보다 그림입니다. 한지를 바탕으로 흑색과 적색, 황색의 대비로 보여주는 강렬한 색감의 판화 기법으로 그려진 그림이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깊은 산골 작은 집”.

복을 부르고 재앙을 쫓는다는 부적을 소재로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는 그림의 색상들, 금방이라도 그림 밖으로 튀어 나올 듯 꿈틀꿈틀 생생한 움직임으로 표현한 부적 속 동물들,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오누이와 삼신 할머니, 망태 할아버지… 그리고 이야기의 느낌을 잘 살린 다양한 의성어와 의태어, 정겨운 입말체로 쓰인 글들이 함께 어우러져 정겹고 흥겨운 분위기로 이끄는 그림책 “깊은 산골 작은 집”은 그림 한 장 한 장에 온 정성을 쏟아부은 김지연 작가의 장인 정신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림책입니다.

※ 오누이와 모험을 시작했던 수탉이 울자 아침이 밝아오며 그림책 속 모든 장면들이 부적으로 변하는 뒷 면지 그림도 잊지말고 살펴 보세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0 0 votes
Article Rating
알림
알림 설정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모든 댓글 보기
0
이 글 어땠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