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댕이!

나부댕이!

(원제 : Sparky!)
제니 오필 | 그림 크리스 아펠란스 | 옮김 이혜선 | 봄나무

가온빛 추천 그림책
2015 가온빛 BEST 101 선정작


그림책 제목 “나부댕이”는 나무늘보의 이름이랍니다. 얌전히 있지 못하고 철없이 촐랑거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나부대다’에서 온 ‘나부댕이’란 이름이 재미있네요. 이 그림책의 영문 제목인 ‘Sparky’ 역시 ‘생기발랄한, 재기 넘치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나뭇가지에 축 늘어져 있는 나무늘보의 모습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요. 털에 이끼가 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인다는 나무늘보가 어쩌다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나부댕이!

어떤 동물들이든 괜찮으니 반려동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이에게 엄마는 ‘산책시키지 않아도 되고, 목욕시키지 않아도 되고, 먹이를 주지 않아도 되는 동물’ 로 찾아보라고 하셨어요. 음…… 이 세 가지 조건에 꼭 들어맞는 반려동물이 과연 있을까요? 이건 반려동물은 절대 키울 수 없다는 말과 똑같은 말로 들리는데요.^^

하지만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그 조건에 딱 맞는 친구를 찾아 보기로 했죠. 아이는 모르는 게 없는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추천으로 동물 백과 사전에서 니은(ㄴ)으로 시작하는 동물을 찾다 거기서 이걸 찾았답니다.

나무늘보

나무늘보는 하루에 열여섯 시간 이상 잠을 잔다고 알려져 있다.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기도 하고, 오랜 시간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뭇잎을 먹고, 나뭇잎에 고인 이슬을 마시고 산다. 나무늘보는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동물이다.

오호! 엄마가 말씀하신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동물이 세상에 있긴 있었네요.^^

나부댕이!

빠른 우편으로 도착한 나무늘보를 엄마는 좋아하진 않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어쩔 수 없었죠. 아이는 나무늘보 이름을 나부댕이로 지었어요.

하루 열여섯 시간 이상 자는 나무늘보 이름으로는 어쩐지 좀 아이러니 하죠? 엄마가 말한 조건에 맞는 동물을 찾기 위해 나무늘보를 찾아냈지만 실상 아이의 마음 속에는 자신과 신나고 재미있게 놀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겠죠. 반려동물을 만난 기쁨에 들떠 있는 아이의 표정과 달리 나부댕이의 표정은 뭔지 좀 어리둥절해 보이는데요. 그 표정이 참 깜찍하고 귀엽네요.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요런 표정입니다.^^

나부댕이!

재기 발랄한 이름과는 다르게 나무 위에 올려놓은 나부댕이는 처음 그 자세 그대로 꼬박 이틀을 자고나서야 잠에서 깨어났어요. 아이는 깨어난 나부댕이랑 재미있게 놀았어요. 산꼭대기 올라가기 놀이, 숨바꼭질, 무술 시합은 모두 아이가 이겼지만 조각상처럼 가만히 있기 놀이만큼은 나부댕이가 정말 잘 했어요.

사실 나부댕이는 언제나 그자리에 멍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는데 반려동물을 처음 가진 아이는 나부댕이가 곁에 있는 것 만으로도 신이 난 모양이에요. 멍한 표정에 심드렁하고 피곤해 보이는 나부댕이의 모습에서 늘 일에 쫓겨 바쁘고 지친 아빠들 모습을 보는 것 같네요.

나부댕이!

주말에는 나부댕이를 보러 놀러온 친구 메리는 나부댕이의 잠든 모습만 보고 돌아가면서 말했어요.

“넌 참 안됐다. 우리 고양이는 뒷다리로 서서 춤도 추고 우리 앵무새는 ‘하느님’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단어를 스무 가지나 알아.”

흠… 메리네 사는 주친묘(주인 친구 고양이 ^^), 주친조(주인 친구 새) 때문에 나부댕이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나부댕이가 메리네 고양이나 앵무새보다 못하단 걸 순순히 인정기 싫었던 아이는 나부댕이도 묘기를 부릴 줄 안다면서 훈련받은 나무늘보의 특별 공연을 7일 후 보여준다는 전단지를 만들어  메리 집 앞에 턱~하니 붙였거든요.

나부댕이!

특별 공연을 위해 일주일 내내 나부댕이에게 비밀 훈련을 시켰지만 나부댕이는 연습하다 잠들거나 하던 것을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문득 아이는 전단지를 붙인 게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어요.

비밀 훈련 중인 나부댕이 표정은 이전보다 더 생기를 잃었습니다. 무엇을 해야할지, 무얼 요구하는지 전혀 이해못하겠다는 표정이에요.

나부댕이!

드디어 나부댕이의 특별 공연 날이 되었어요. 엄마와 메리, 에드윈 아주머니가 나부댕이의 공연을 보러왔어요.

아이는 서커스 단장처럼 꾸미고 나부댕이에게 반짝이를 뿌린 후 공연을 시작했어요. 전단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묘기’라 썼지만 나부댕이는 죽은 척 하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줄 몰랐어요. 구를 줄도 몰랐고, 말할 줄도 몰랐죠. 메리는 돌아가면서 말했어요.

“그런 방법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나무늘보를 만들어 낼 수 없어. 아무도 가져 본 적 없는 반려동물을 갖겠다니!”

나부댕이!

모두가 돌아가고 나부댕이와 아이만 남았어요. 나부댕이와 마주 바라보던 아이는 손을 뻗어 나부댕이 손을 잡았어요.

“넌 그냥 나부댕이야. 나무늘보 나부댕이.

넌 앞으로도 오래오래 너일 거야.”

나무늘보 나부댕이, 앞으로도 오래오래 너일 거라는 아이의 말에 나부댕이가 처음으로 편안한 표정이 되어 잠이 들었네요. 나부댕이는 뒷다리로 서서 춤을 출 줄 아는 고양이도 아니고, 스무 가지나 되는 단어를 말할 줄 아는 앵무새도 아닌 본성 그대로 느리고 잠 많이 자는 나무늘보라는 사실, 이미 나부댕이 자체만으로도 아무도 가져 본 적 없는 나만의 반려동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의 뒷모습 역시 편안해 보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 쉽지 않은 일입니다. 주인공 소녀가 나부댕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나간 이야기에 서정적 그림이 아주 잘 어우러지는 그림책 “나부댕이”는 어른들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남기는 그림책이에요. 상대를 이해하면 내가 행복해 집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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