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통로

생태 통로 : 인간이 만든 동물의 길

김황 | 그림 안은진 | 논장

2015 가온빛 BEST 101 선정작


생태 통로

해 질 녘 숲 속 나무 구멍에서 하늘다람쥐 암컷이 빠꼼 얼굴을 내밀고 두리번 거립니다.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 걸까요? 잠시 후 숲 속 높은 나무 위에서 누군가 파닥 날개를 활짝 펼칩니다. 날쌘 하늘다람쥐 수컷이 비막을 활짝 펼치고 활공을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바람을 타고 나무와 나무사이를 미끄러지듯 날아다니던 하늘다람쥐 수컷은 드디어 사랑하는 짝을 찾았습니다. 아마도 아까 나무 구멍 밖으로 두리번 거리던 바로 그 암컷이겠죠?

생태 통로

며칠 후 짝을 만나러 가던 하늘다람쥐 수컷이 갑작스레 멈춰 섰습니다. 사랑하는 짝을 향해 날아오르기 위해 늘 오르던 나무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활공을 위한 발판이 되어줄만한 나무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하늘다람쥐한테는 높은 나무가 ‘길’이에요.
하늘에 난 ‘공중 길’이오.
그 길이 없으면 멀리 날 수도,
짝을 만나러 갈 수도 없지요.
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널찍한 도로가 생겼어요.

생태 통로

길을 잃은 건 하늘다람쥐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노루도, 고라니도, 멧돼지도, 너구리도, 살쾡이도, 족제비도, 산토끼도, 오소리도 모두 자기들만의 ‘길’을 잃었습니다. 새로 난 도로 위로 쌩쌩, 부아앙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자동차들이 달리는 통에 동물들은 길을 건널 수 없게 되었습니다. 먹이를 찾으러 갈 수도 없고,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도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자동차 바퀴 사이로 동물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요? 길 건너편에 있는 가족일까요? 아니면 자신들의 길을 빼앗아간 우리 인간들일까요?

생태 통로

우리가 보고싶은 가족을 만나러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기 위해서 만든 길입니다. 이 길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서 정성스레 담가 보내주시는 김치를 내 집 현관 바로 앞에서 받게 해 주는 편안한 길이고, 군대며 기숙사에 가 있는 자식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주는 설레이는 길입니다.

하지만 그 길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에게 편안함과 설레임을 주는 그 길이 다른 누군가의 길 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 말입니다. 바로 동물들의 길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의 부모의 부모 때부터 다니던 길,
하루에도 수십 번 왔다 갔다 한 그 길이
가장 무서운 적이 되어 버렸어요.

생태 통로

자신의 공중 길 위로 사람들의 도로가 생기고 난 후 하늘다람쥐 수컷은 사랑하는 짝을 찾아 가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봤지만 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자동차들이 무섭게 달리는 도로 위를 달리는 방법 말고는 말이죠. 그리고 마침내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해!’라며 결심을 합니다.

바로 그 때 도로에서 사람들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하늘다람쥐 수컷은 몸을 숨기고는 도로 가에서 무언가 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봤습니다. 잠시 후 사람들이 떠난 자리엔 기다란 막대기가 서 있었습니다. 도로 양쪽에 하나씩 말이죠.

하늘다람쥐 수컷의 얼굴에 웃음이 활짝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저 기다란 막대기가 있으면 위험한 도로 위를 달려갈 필요가 없으니까요. 예전처럼 나무와 나무사이를 미끄러지듯 날아오를 수 있을 테니까요.

생태 통로

해 질 녘, 하늘다람쥐 수컷은 도로 가에 세워진 막대기를 열심히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힘차게 날아 올랐습니다.

야!
비막을 활짝 펼쳐 사르르 활공!
바람을 타고 날고 또 날았어!
자동차 위를 유유히 날았어!
그리운 아내와 처음 보는 아이들이 기다리는 숲을 향해!

오늘 함께 본 그림책 “생태 통로 : 인간이 만든 동물의 길”을 보기 전까지는 우리 아이들은 ‘로드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늘 궁금했을 겁니다. ‘왜 동물들은 위험하게 자동차 도로 위로 지나가려는 걸까?’ 하고 말이죠. 하지만 이젠 알게 되었겠죠? 동물들이 위험한 자동차 도로 위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동차가 동물들의 길 위로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림책 “생태 통로 : 인간이 만든 동물의 길”을 통해 아이들은 두 가지를 더 배우게 됩니다. 하나는 이제는 우리도 동물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생태 통로를 통해서 말이죠. 그리고 또 한 가지의 교훈은 생태 통로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는 점입니다.

생태 통로
생태 환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설계된 생태 통로

생태 통로

산행길에서나 자동차를 몰고 가다 종종 만나게 되는 생태 통로. 저 역시 늘 궁금해 했었던 것은 과연 저 길을 동물들이 자신들을 위해 만들어진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건지, 그 길로 다니긴 하는 건지 하는 점이었습니다. “생태 통로 : 인간이 만든 동물의 길”의 후반부에 나오는 ‘추천의 말’에 그 해답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생태 통로만 만들어서는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합니다. 생태 통로를 만들고 도로 가장자리에 울타리를 설치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울타리 때문에 길이 막힌 동물들은 울타리를 따라 걷다가 생태 통로를 만나게 되고 무사히 길을 건널 수 있게 된다고 하는군요. 실제로 고속도로 일부 구간에 생태 통로와 울타리를 함께 설치한 결과 로드킬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국을 가로지르는 10만 Km가 넘는 도로 전체에 울타리를 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결국 생태 통로는 임시방편조차 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저 우리가 동물들에게 느끼는 미안함과 마음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예 없는 것일까요? 작가는 그림책의 앞뒤 면지를 통해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생태 통로
앞쪽 면지(위) / 뒷쪽 면지(아래)

이렇게 많은 도로와 자동차가 있는 한, 그리고 사람들이 빨리빨리 살기를 원하는 한 로드킬을 막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의 불필요한 도로 건설을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조금 천천히 달리고, 조금 천천히 사는 것입니다.

– 추천의 말 :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황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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