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 이야기

어느 개 이야기

(원제 : Un Jour, Un Chien)
글/그림 가브리엘 벵상 | 별천지

가온빛 추천 그림책
※ 2000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 선정작

※ 2000년 보스턴 글로브 혼북 명예상 수상작


뒤돌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개의 눈에 짙은 슬픔이 배여있습니다. 축 처진 뒷모습이 무척이나 지쳐 보이네요. 오늘 이야기는 길 위에 멍하니 서 있는 이름 모를 어느 개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개 이야기

개 한 마리가 차 밖으로 던져집니다. 자신을 버리고 쏜살같이 사라지는 차를 쫓아 개가 달려갑니다. 이 순간 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아마도 처음에는 ‘설마 나를?’이라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잠시 동안은 ‘혹시 내가 타지 않은 것을 것을 잊었나?’ 생각했을 수도 있구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차를 쫓아 긴박하게 달려가는 동안에도 개는 분명 ‘버림 받았음’을 인지하지 못 했을 거예요. 개는 미친듯이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갑니다. 혹시나 나를 잃어버리고 슬픔에 젖어있을지도 모를 가족을 위해…

어느 개 이야기

갈림길에 이를 때까지 개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가족을 쫓아 열심히 달려갔지만 가족들이 탄 차는 이미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멀리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길 끝에는 지평선만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을 뿐이죠.

어느 개 이야기

개는 그 길을 쉽사리 버리고 떠나지 못합니다. 혹시나 가족들이 자신을 찾으러 되돌아 오지는 않을까, 늘 그랬듯이 그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이제나 저제나 저 길 위에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는 가족을 기다리고 있던 개는 겅중 뛰어 자신이 버려졌던 도로로 나섰어요.

어느 개 이야기

그 바람에 사고가 났습니다. 도로로 뛰어든 개를 피해 차량끼리 부딪치면서 연속으로 충돌 사고가 일어나 생각지도 못하게 대형사고로 번져버렸어요. 사고 때문에 도로가 막혔고,  순식간에 도로가 아수라장이 되면서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져 갑니다. 물론 뜻하지 않게 거리의 개가 된 개 역시 놀랐어요. 그 무섭고 당황스러운 순간에도 개는 잊지 않고 혹시라도 자신을 찾으러 올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체취를 남기면서 가족이 떠난 그 길을 따라 정처없이 달려갑니다.

어느 개 이야기

먼발치에 사람의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혹시나 싶어 기웃거려 보지만 쉽사리 그들을 향해 다가가지 못해요. 자기가 찾던 가족이 아니면 다시 받게될지도 모를 실망감과 상처가 두려웠기 때문일까요. 먼발치에서 사람 그림자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던 개는 목놓아 울부짖고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느 개 이야기

드넓은 하늘 아래 홀로 남겨진 개의 슬픔과 외로움이 진하게 전해옵니다. 하지만 개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가족의 흔적을 찾아 달리고 또 달려봅니다.

어느 개 이야기

쉬지 않고 먼 길을 달려 사람들이 있는 도시로 들어왔지만 주인 없는 개를 반기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무관심하거나 차갑거나…… 처음부터 길거리 개가 아니었기에 개는 두렵고 무섭기만 해요. 갑자기 변한 상황을 여전히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렵습니다.

어느 개 이야기

그렇게 가족을 찾아 정처없이 달리던 길 위에 한 아이가 서 있습니다. 개는 왠지 그 아이가 자꾸만 궁금해집니다. 길 위에 머물게 된 후, 자기에게 처음으로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었으니까요. 개는 선뜻 그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그 아이가 하는 것을 가만히 바라만 봅니다.

어느 개 이야기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아이가 먼저 다가옵니다. 코 앞까지 다가온 아이는 개의 눈을 한참동안 바라봅니다. 그 눈빛에는 다정함과 걱정스러움이 함께 담겨있어요. 눈빛을 통해 마음이 전달 된 것일까요? 그제야 개도 아이를 향해 한 발자국 다가섭니다.

“어느 개 이야기”은 버려진 채 떠돌이가 된 개가 새 가족을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맺습니다.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장면은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졌다는 것으로 끝맺기는 하지만 글 없는 그림책이니만큼 여러가지로 해석 할 수도 있어요.(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장면에 다가온 아이가 개를 버릴 때 차에 타고 있던 아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짐과 함께 길 위에 서있던 아이가 빙긋 웃기도 하고 미안한 듯 금방 울것 같은 표정으로 개에게 다가오는 모습, 도망치지 않고 물끄러미 아이를 바라보고 있던 개의 모습을 보면 왠지 새 주인을 만났다기보다 옛주인과 다시 만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하얀 여백 위에 아득한 길과 함께 무수하게 그려낸 단색의 선으로 낯선 장소에 버려진 개의 막막함을 차분하면서도 강렬하게 쏟아내고 있는 “어느 개 이야기”는 가브리엘 뱅상에게 ‘뉴욕 타임스 올해의 그림책’ 선정과 ‘보스턴 글로브 혼북상’을 동시에 안겨준 작품입니다. 하얀 도화지를 배경으로 버려진 개의 모습에 촛점을 맞추어 그린 62컷의 단색의 데생 그림은 버려진다는 것의 아픔을 더욱 가슴 찡하게 보여줍니다.

나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장난감처럼 키우는 동물이 아닌 죽을 때까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로 요즘은 애완 동물이라는 말보다는 반려 동물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죠. ‘삶’과 ‘행복’에 대한 진지한 메세지를 담은 가브리엘 뱅상의 섬세한 감수성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 그림책 “어느 개 이야기”는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생각해 보게 만드는 그림책입니다.

“어느 개 이야기”는 2003년 출간된 “떠돌이 개”를 2009년 별천지에서 “어느 개 이야기”라는 새 제목으로 출간한 그림책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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