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투명인간

진짜 투명인간

(원제 : Invisible Mais Vrai)
글/그림 레미 쿠르종 | 옮김 이정주 | 씨드북

가온빛 추천 그림책
2015 가온빛 BEST 101 선정작


진짜 투명인간

에밀의 엄마는 피아노 선생님입니다. 엄마의 소원은 자신의 아들이 가장 훌륭한 제자가 되어주는 겁니다. 그래서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자라주길 늘 꿈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에밀은 ‘투명인간’이란 소설에 푹 빠져 있습니다. 피아노 연습 시간은 그저 따분하기만 할뿐입니다. 에밀은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자신도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진짜 투명인간

그러던 어느 날 에밀은 시각장애인인 피아노 조율사 블링크 아저씨를 만나게 됩니다. 에밀은 조율사를 처음 봤어요. 물론 시각장애인을 만난 것도 처음이구요. 앞을 볼 수 없음에도 능숙하게 피아노를 조율하고, 길도 잘 찾아 다니는 블링크 아저씨가 에밀은 마냥 신기하기만 합니다. 투명인간에 푹 빠져 있던 에밀의 관심이 비오는 날에도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블링크 아저씨에게로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진짜 투명인간

“조금 전에 어떻게 저란 걸 아셨어요? 앞이 보이지 않으시면서요.”

“난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대신 어릴 적부터 다른 감각들이 아주 발달되어 있단다. 촉각, 후각, 미각, 청각 이런 것들 말이야. 아까 네가 현관문을 열 때 너희 집 냄새와 네 바지가 구겨지는 소리, 그 밖에 설명하기 애매한 것들로 너란 걸 알았어.”

초인종 소리만 듣고도 자신인 줄 금방 알아차린 블링크 아저씨가 신기하기만 한 에밀은 결국 못견디고 아저씨에게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어봅니다. 시각 대신 다른 감각들이 발달해서 자신을 알아볼 수 있다는 말에 요즘 투명인간에 푹 빠져 있던 에밀은 또 하나의 질문을 합니다. 자신이 투명인간이어도 알아볼 수 있냐고 말이죠. 그리고 아저씨의 대답은…

“에밀, 넌 나에게 투명인간이란다.”

블링크 아저씨의 손, 코, 입, 귀가 우리의 눈 역할을 대신해 주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 그리고 투명인간이 된 에밀을 알아내는 블링크 아저씨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인상적입니다. 투명인간이 되고싶은 소년에게 아저씨의 능력은 충격입니다. 자신이 투명인간이 되더라도 블링크 아저씨는 단박에 자신을 알아볼 수 있을테니 말이죠. 이쯤 되면 블링크 아저씨에 대한 에밀의 호감이 점점 더 커지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진짜 투명인간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가득한 꼬마 에밀의 질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투명하다면 도대체 아저씨에게 보이는 건 뭘까요? 아저씨가 볼 수 있는 색깔은 과연 어떤 색일까요? 거기에 대한 아저씨의 대답, 그리고 그게 어떤 느낌일지 한 눈에 보여주는 그림 모두 기발합니다.

“에밀, 넌 네 무릎으로 뭐가 보이니?”

“아무것도 안 보여요.”

“나도 마찬가지야. 내 눈은 네 무릎처럼 본단다.”

무릎처럼 본다…… 시각장애인들이 얼마나 답답하고 막막할지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내 눈은 무릎처럼 본단다.’라고 말하는 블링크 아저씨의 대답에 에밀의 마음 역시 막막해지고 말았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슬펐어요.
색깔들이 참 아름다워서요.

세상을 온통 물들인 아름다운 색깔들. 블링크 아저씨는 볼 수 없는 그 색깔들을 자기 혼자서만 봐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한 우리의 주인공 에밀의 마음이 참 기특하고 대견스럽습니다.

진짜 투명인간

그날 저녁 에밀은 결심합니다. 블링크 아저씨에게 색깔을 가르쳐 주기로 말이죠. 그리고 아저씨에게 색깔을 알려 주기 위해 색깔마다 그 색깔을 떠올리는 것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초록색은 맨발로 걸을 때 발가락을 간질이는 풀잎, 붉은색은 토마토 맛, 가장 푸른색은 수영장에서 헤엄치는 것…. 가지각색의 색깔마다 에밀이 떠올린 느낌들이 아주 재미납니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나고 공감가는 건 바로 흰색입니다.

가장 흰색인 것은 여름에 푹 자고 열 시쯤에 일어났을 때에요.

지금 아이와 함께 이 그림책 “진짜 투명인간”을 읽고 있다면 저마다 색깔별로 떠오르는 느낌을 이야기 나눠 보세요. 그냥 색깔 이름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것을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고, 블링크 아저씨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 머리를 짜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진짜 투명인간

자신이 준비한 색깔들을 블링크 아저씨에게 선물하기 위해 에밀은 아저씨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밭에서 딴 토마토를 아저씨에게 드렸어요. 아저씨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에밀은 그게 바로 붉은색이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그러자 아저씨는 피아노 한 곡을 쳤어요. “나한테는 이게 붉은색이란다!” 이렇게 말하면서요. 에밀은 뭐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아저씨가 들려준 그 곡이 딱 붉은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저씨를 풀밭에 데려가 걸으며 초록색을 선물하자 아저씨는 이번엔 아코디언을 가져다 연주하면서 초록색 음악으로 에밀에게 화답합니다.

이건 우리 사이의 놀이가 되었어요.
나는 아저씨에게 색깔을 알려 주려고 애를 썼고,
아저씨는 내게 색깔을 연주해 주려고 애를 썼어요.

진짜 투명인간

겨우내 블링크 아저씨는 멀리 여행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에밀은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냅니다. 아저씨에게 더 많은 색깔들을 선물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를 해야만 했거든요. 더 많은 책을 읽으면서 색깔을 설명할 수 있는 멋진 표현들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색을 들려주기 위해 그동안 따분해했던 피아노 연습도 부지런히 하게 되었어요.(덕분에 엄마는 에밀의 피아노 실력이 늘었다고 좋아하셨대요.)

진짜 투명인간

그렇게 아저씨를 위한 색깔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오자 반가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블링크 아저씨였어요. 아저씨는 다른 사람의 눈을 기증 받아 이식 수술을 받고 돌아오셨대요. 이제 에밀과 블링크 아저씨의 새로운 우정이 다시 시작되겠죠? ^^

에밀이 세상의 색깔들을 아저씨에게 선물하기 위해 애쓰는 장면, 그리고 에밀과 블링크 아저씨가 서로의 색깔을 주고 받는 장면은 감동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진짜 투명인간”이 매력적인 이유는 에밀과 블링크 아저씨가 서로의 삶에 대한 깊은 교감을 나누고 상대방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점입니다. 에밀은 블링크 아저씨가 들려주는 색깔들의 소리에 자극을 받고 피아노에 대한 열정을 싹틔웁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시각장애라는 현실을 수긍하며 살아왔던 블링크 아저씨는 에밀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색깔들이 직접 보고 싶어집니다. 결국 아름다운 세상과 자신의 소중한 꼬마 친구를 보기 위해 아저씨는 이식 수술을 하게 됩니다.

꼬마 에밀과 시각장애인 블링크 아저씨의 우정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낸 그림책 “진짜 투명인간”, 우리 아이들에게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줌으로써 우리 이웃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게 해주는 그림책입니다.


※ 이 그림책의 원제 ‘Invisible Mais Vrai’를 영어로 옮기면 ‘Invisible but true’ 정도의 뜻입니다. 에밀은 블링크 아저씨가 볼 수 없는 색깔을 다양한 방법으로 느끼게 해 줍니다. 그럴 때마다 블링크 아저씨 역시 지금껏 자신이 느껴왔던 색깔들의 소리를 에밀에게 들려줍니다. 블링크 아저씨는 이식 수술을 받기 전에도 에밀의 노력 덕분에 여지껏 보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운 색깔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에밀은 지금껏 눈으로만 느껴왔던 색깔의 오묘한 소리들을 블링크 아저씨의 음악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원제 ‘Invisible Mais Vrai’는 바로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제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한글판 제목 ‘진짜 투명인간’은 뭔가 좀 아쉽습니다. 작가가 이 그림책을 읽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 푸른 백합

그림책 “진짜 투명인간”의 내용 중 블링크 아저씨는 흰 백합보다 푸른 백합을 더 좋아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파란색 백합이 실제로 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아프리카 백합(African lily) 또는 나일강의 백합(lily of the Nile)으로도 불리는 아가판서스(Agapanthus)란 백합의 한 종류가 파란색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블링크 아저씨가 좋아하는 푸른 백합은 아마도 아가판서스라기보다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흰 백합에 대한 아저씨의 느낌이 푸른색이란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 시각장애인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진짜 투명인간” 초반부에 블링크 아저씨가 피아노 조율을 마치고 돌아갈 때 에밀의 엄마가 아저씨의 소매를 잡고 현관까지 안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과연 에밀의 엄마는 올바른 방법으로 시각장애인인 블링크 아저씨를 도와준 걸까요? 전철이나 버스, 택시 승강장, 건널목 등에서 시각장애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기본적인 사항들을 미리 배워둔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상황별로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올바른 방법 (출처 :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안내에 따르면 에밀의 엄마가 블링크 아저씨의 소매를 잡아 끄는 것은 적절한 방법은 아니었던 같네요. 시각장애인을 안내해 줄 때는 시각장애인이 내 팔꿈치를 붙잡을 수 있도록 해 주고 방향을 안내해 주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합니다.

※ 시각장애인이 세상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의학이 발달하면서 현재도 안구 이식 또는 각막 이식등의 수술을 통해 시각장애인이 세상을 볼 수 있기도 하지만 2019년 이후엔 시각장애인이 아예 없어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호주에서 개발에 성공한 ‘바이오 아이(Bionic Eyes)’가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출처 : 미래의료 파생효과 “감기·비만·시각장애 사라진다” – 메디파나뉴스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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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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