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와 보름달

부엉이와 보름달

(원제 : Owl Moon)
제인 욜런 | 그림 존 쉰헤르 | 옮김 박향주 | 시공주니어

※ 1988년 칼데콧 메달 수상작


부엉이와 보름달1988년 칼데콧 메달을 받은 “부엉이와 보름달”은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감성 깊은 글을 선보여 온 제인 욜런의 글에 서정미 가득한 존 쇤헤르의 그림이 어우러져 깊은 울림을 남기는 그림책입니다.

모자에 목도리, 장갑까지 온몸을 꽁꽁 싸맨 어린아이가 문 밖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따뜻하고 아늑해 보이는 이쪽과는 달리 검푸른 빛의 어둡고 추워 보이는 문 밖 세상, 오늘 밤은 아빠와 부엉이를 보러 숲에 가기로 한 날입니다.

한 겨울 숲 속으로 부엉이 구경을 가는 것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할 수 있는 아이 가족만의 통과의례입니다. 추운 겨울 밤, 추위와 무서움을 극복하고 숲에서 부엉이를 보는 것으로 자신이 그만큼 성장했음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의식이죠. 아빠의 안내로 시작되는 한밤의 부엉이 구경은 이미 오빠들이 그 나이 때 거치고 간 의식이기도 합니다.

부엉이와 보름달

추운 겨울, 잠 잘 시간이 한참 지난 한밤중에 아이는 아빠와 부엉이 구경을 나갔어요. 주위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 집중하며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으며 아빠 뒤를 바쁘게 쫓아가면서도 아이는 한 번도 아빠를 소리쳐 부르지 않았어요. ‘부엉이 구경을 나가면 조용히 해야 한다’고 아빠가 늘 말씀하셨거든요. 아이는 아주 오랫동안 아빠와 부엉이 구경을 나가기를 기다려왔습니다.

부엉이와 보름달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소나무 숲에서 별자리를 찾던 아빠는 나즈막히 부엉이 소리를 흉내내 부엉이를 불렀어요. 오랜시간 부르고 기다리기를 반복했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실망하지 않았어요. 오빠들에게 이미 들었거든요. 부엉이를 본 날도 있었고, 못 본 날도 있었다구요.

부엉이와 보름달

누군가 얼음 손으로 등을 쓸어 내리는 것 같은 추위 속에 얼어서 코와 볼이 화끈해지도록 걸었지만 아이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숲 속 나무 그림자는 이제껏 본 어떤 것보다 시커맸고 입김에 젖은 털목도리가 축축해졌지만 아이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어요.

부엉이 구경을 나가면
조용히 해야 되거든요.
자기 몸은 자기가 알아서 따뜻하게 해야 되거든요.

부엉이와 보름달

눈으로 가득한 숲 속 빈터에 도착하자 아빠는 다시 소리내어 부엉이를 불렀어요. 너무 추워 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고 앞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는 귀 기울여 소리를 듣고 열심히 살펴 보았어요. 아빠가 ‘부우우우우우웅-부우우우우우엉’하고 부엉이를 부르는 소리가 아이에게는 부엉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저녁은 먹었는지, 오늘 숲에 별일 없었는지……

부엉이와 보름달

부엉이 그림자 하나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이내 나뭇가지 위에 내려 앉았어요. 아빠는 커다란 손전등으로 부엉이를 비추었어요. 한참동안 서로를 바라봅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일 분, 삼 분, 어쩌면 백 분이 흘렀을지도 모를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부엉이와 보름달

부엉이가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다시 숲으로 날아가자 아빠와 아이도 이제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말을 해도 되고 크게 웃어도 되지만 아이는 내내 소리 없는 그림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엉이 구경을 가서는
말할 필요도,
따뜻할 필요도 없단다.
소망 말고는 어떤 것도 필요가 없단다.
아빠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렇게 눈부신 보름달 아래를,
침묵하는 날개에 실려,
날아가는
소망 말이에요.

삶을 살다보면 때론 지루함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실망스러운 일 앞에서 의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실패를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고 묻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할 때도 있으며 두려움 앞에서도 용기를 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죠. 눈 내린 한겨울 밤의 숲 속에서 부엉이를 만나기 위해 숲속을 헤매는 시간 동안 아이는 성장을 하면서 겪어야 할 것들을 어렴풋하게나마 가슴으로 터득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하는 동안 아이 곁에서 묵묵히 바라봐 주고 응원해 주신 부모님의 묵직하고도 따뜻한 사랑 속에서 아이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소망을 가슴속에 아로새겼을 거예요.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는 밤 혹독한 추위와 두려움을 이겨내고 부엉이를 만나 소망을 가슴에 심었던 어린 날의 추억을 회상하듯 잔잔하게 써내려간 “부엉이와 보름달”은 제인 욜런의 시적이고 감성 가득한 아름다운 문장에 눈 내린 겨울 숲 속에 부엉이를 찾아 소리 없이 걷는 정적인 풍경을 다양한 각도에서 원근법을 살려 그려낸 존 쇤헤르의 그림이 한 편의 성장 영화처럼 아련하게 펼쳐지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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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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