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책표지 : Daum 책
어느 날

방글 | 그림 정림 | 책고래

2015 가온빛 BEST 101 선정작


무채색 겨울 숲 속 핑크색 토끼가 무표정하게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어요. 오도카니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한 토끼가 궁금해 그림책을 펼칩니다.

어느 날

아빠를 찾아다니던 아기 토끼는 길에서 엄마를 찾고 있는 여우를 만나 함께 길을 나섰어요. 그리고 그 길에서 친구를 찾고 있던 사슴, 동생을 찾고 있는 뱀을 만나 모두 함께 길을 가게 됩니다.

어느 날

한참을 걸어가던 토끼, 여우, 사슴, 뱀은 쿵쿵 거리며 바쁘게 길을 가고 있던 곰과 너구리를 만납니다. 아이들이 없어져 찾고 있는 중이라는 곰과 너구리까지 합세해 그들은 모두 다 함께 가족과 친구를 찾아 보기로 했어요.

아빠를 찾아 나선 토끼, 엄마를 찾고 있는 여우, 친구를 찾는 사슴, 동생을 찾고 있는 뱀 그리고 아이들을 찾고 있는 곰과 너구리, 가족과 친구를 잃어버렸기 때문일까요? 이들의 표정이 어딘가 많이 쓸쓸해 보입니다. 그래도 함께 길을 나설 친구가 있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하네요. 별일 없을 거라고, 금방 찾을 수 있을거라고 토닥토닥 위로해 주고 싶어집니다.

어느 날

정처없이 가족을 찾아 가는 길, 길을 따라 걷고 숲을 지나 강을 건너는 동안 겨울은 점점 깊어 갑니다. 긴 여정을 떠나는 사이 숲도 동물 친구들도 모두 색을 잃었어요. 화면가득 침묵이 지배합니다. 그들의 고단함과 근심 걱정이 이 한 장의 그림에 묻어 나오는 듯 합니다. 이 숲이 끝나는 곳에서 이들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요?

어느 날

어느 마을을 지날 때였어요.

아기 토끼가 소리쳤어요.
“저기, 우리 아빠예요!”
너구리도 말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에요!”

동물들이 시선이 일제히 멈춘 곳은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두 아이들이 있는 곳입니다. 흰눈이 소복히 내린 숲 속에서 따스하게 차려입은 두 아이가 한가롭게 눈사람을 만들고 있네요. 그런데 코트에 장화, 장갑까지 잘 차려입은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에게 뭔가 이상한 것이 눈에 띕니다. 여자 아이 머리 위엔 토끼가 올려져 있고 남자 아이 목에는 너구리가 둘려 있어요.

어느 날

이제부터 연속 된 세 장의 그림에는 글자가 전혀 없어요. 그저 아이들 뒤를 쫓아가는 동물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펼쳐질 뿐이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뒤를 동물들이 조심조심 따라갑니다. 그 모습을 여자 아이 머리 위에 얹혀있는 토끼가 돌아보고 남자 아이 목에 둘려있는 너구리가 돌아봅니다. 따라가는 동물들은 색상을 가지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매달려 있는 동물들에겐 색상이 없어요. 그토록 찾던 아빤데, 아기들인데 동물들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합니다. 먼 발치에서 그저 조심스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에요. 너무 갑작스러운 충격에 감정을 잃은 듯 동물들의 말간 눈에서 또르르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아요. 토끼네 아빠는, 너구리네 아이들은 왜 자신들의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는 걸까요?

무표정이었던 아이들이 집으로 들어갔어요.

어느 날

아빠의 허리에, 엄마의 목에, 아이들의 목과 머리에, 바닥에, 그리고 벽난로 위에서 생명의 빛을 잃은 동물들의 가족이었어요. 생명을 잃은 동물들의 공허한 눈빛은 가족을 찾아나섰던 동물들의 텅 빈 눈빛과 꼭 닮아있네요. 그들의 슬픈 눈동자가 마음을 더욱 시리게 합니다.

지금껏 가족을 찾아 나섰던 동물들 외에는 무채색이었던 배경은 사람들이 사는 집안으로 들어서자 다양한 색깔로 가득해졌습니다. 집안을 가득 메운 색깔들은 모두 숲에서 빼앗아 온 것입니다.

어느 날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 날”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멀찌감치 두 아이를 따라가던 동물들은 아이들이 들어간 집안을 창밖에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줄곧 색채를 유지하던 동물들은 어느새 모두 색을 잃었어요. 놀람과 두려움이 가득한 눈……

“어느 날”의 결론은 다소 충격적이지만 아이들에게 애써 동물들이 사라지고 나면…. 따위의 설명은 하지 않아요. 그저 ‘어느 날 사라진 가족을 찾아 나선 동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을 그림책 속으로 끌어들이죠. 그림책을 본 아이들은 저마다 창밖에 서있는 동물들의 입장에 서게됩니다. 그리고 생각하죠.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그들에게 저지른 일이라고……

어느 날

그림책 “어느 날”의 뒷쪽 면지 그림입니다. 숲 속으로 멀어지는 발자국은 과연 누구의 발자국일까요? 우리 인간들을 피해 더 깊은 숲 속으로 도망치는 동물들의 것일까요? 혹시 숲과 동물들에게 그들의 색을 돌려 주러 나선 우리 아이들의 것은 아닐까요?

글을 쓴 방글 작가는 “어느 날”이 첫 그림책이고, 그림을 그린 정림 작가에게는 두 번째 작품입니다. 신인들답지 않게 이것저것 이야기들을 늘어놓지 않고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다듬고 다듬어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잘 담아냈습니다. 마치 잘 갈린 칼 한 자루처럼 함축된 그림과 이야기 덕분에 아이들에게 더 많은 생각거리들을 안겨주는 그림책 “어느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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