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보이지 않아
책표지 : Daum 책
바람은 보이지 않아

(원제 : De Quelle Couleur Est Le Vent?)
글/그림 안 에르보 | 옮김 김벼리 | 한울림어린이

2015 가온빛 BEST 101 선정작


바람 속에 가만히 몸을 맡긴채 평온한 표정의 소년이 바람과 하나가 된 표지 그림이 인상적입니다. 저는 이 그림책의 저자 안 에르보를 오래 전 “달님은 밤에 무얼 할까요?”를 통해 처음 만났어요. 시처럼 아름다운 문장에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사용해 밤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그려낸 안 에르보는 추상적 개념을 표현하는데 빼어난 능력을 지닌 작가입니다. “달님은 밤에 무얼 할까요?”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밤 중 달님이 하는 일을 아름답게 그려냈다면, “바람은 보이지 않아”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마치 보이고 만져지는 존재인 것처럼 감성적으로 묘사했어요.

바람은 보이지 않아.
바람이 실어오는 소리만 들을 수 있어.
바람은 들리지 않아.
바람은 실어오는 것만 볼 수 있어.

바람은 보이지 않아

“바람은 무슨 색일까?”
소년은 생각했어.

바람의 색이 궁금해진 소년은 이른 아침 바람의 색을 찾으러 집을 나섰어요.날마다 눈 앞에 닥친 것들, 눈에 보이는 것들만 따르며 살아가기에 급급했던 우리들은 ‘바람의 색’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그저 이따금 바람이 많이 부네~, 바람 좀 시원하게 불어줬으면~, 아니면 이놈의 바람 그만 좀 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할 뿐이었는데…… 소년 덕분에 문득 바람의 색이 궁금해집니다. 그러게… 바람은 무슨 색일까?

바람은 보이지 않아

소년이 만난 늙은 개는 바람의 색을 ‘들판에 가득 핀 꽃의 향기로 물든 색이면서 빛바랜 자신의 털색’이라 말했고 그 말을 엿듣던 늑대는 바람은 ‘숲 속에 깔린 젖은 흙이 품고 있는 어둠의 색’이라 말했어요. 코끼리는 ‘조각돌처럼 둥글고 시원하고 매끌매끌한 회색’이라고, 산은 ‘파란 구름색’이라고, 마을은 ‘옷들이 나부끼는 골목의 색이며 이야기를 간직한 지붕의 색’이라 대답합니다. 그리고, 창문은 나지막히 바람은 ‘꽃과 풀이 자라고 계절이 지나는 시간의 색’이라 말했어요.

바람은 보이지 않아

갑자기 내린 비는 소년의 질문에 바람이 무슨 색인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개울은 바람을 ‘물속에 빠진 하늘 색’이라고 말하고 사과나무는 ‘사과처럼 달콤한 색’이라 말했죠.

저마다 바람에 대한 색상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이제껏 생각해보지도 못한 바람의 색이 이렇게나 다양하고 다채롭다는 사실에 문득 놀라게 됩니다. 경험과 연륜에 따라 모두 다른 빛깔을 가진 바람, 세상 모든 곳에 머물기도 하지만 또한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바람에게는 세상 모든 색상과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바람은 보이지 않아

하지만 소년은 여전히 바람이 무슨 색인지 알 수 없었어요. 모두들 바람에 대해 하는 이야기가 달랐으니까요. 그래서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죠. 그리고 아주 큰 거인을 만났을때에도 소년은 바람의 색을 물어보았어요. 거인은 소년을 향해 몸을 숙이며 말합니다.

“바람은 이 색이기도 하고 동시에 저 색이기도 하지.
바람은 모든 색이란다.
네가 이 책 속에서 만난 모든 색처럼.”

이 색이기도 하고 동시에 저 색이기도 한 바람, 바람은 그 순간 느끼는 그대로의 색상입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아

소년이 꼭 쥐고 있었던 책에서 엄지손가락을 가볍게 떼자 책장이 한 장 한 장 스르륵 넘어가며 부드러운 바람을 일으켰어요. 소년은 책에서 부는 부드러운 바람을 손끝으로 느껴봅니다.

소년은
부드러운 바람을 느꼈어.
책에서 이는 바람을.

바람의 색을 찾아 다니는 소년에게 지금 느끼는 바람이 네가 찾아다니는 바람의 색상이라는 결말, 참 멋지죠?

“바람은 보이지 않아”는 오톨도톨하거나 매끄러운 느낌을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구석구석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질감을 강조해 표현했어요. 소년이 하나하나 만지고 느껴가며 바람을 찾아 다닌 것처럼 그림책을 읽는 우리도 그림책을 손으로 느끼며 읽을 수 있도록 치밀하게 구성을 한 것이죠. 그리고, 책 표지의 제목 아래엔 프랑스어로 ‘바람’을 뜻하는 ‘vent’라는 단어가 점자로 찍혀 있어요(구멍을 송송 뚫어서 점자를 표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책표지와 그림책 속 모든 장면에서 항상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소년. 아침 일찍 바람의 색깔을 찾아 나설만큼 적극적인 소년이지만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그의 모습은 늘 정적으로 느껴집니다.

이런 점들을 통해 우리는 소년이 시각장애인임을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년을 따라가며 바람의 색을 보고 만지며 함께 느껴온 우리는 소년에게서 그 어떤 이질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바람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 소년 역시 마찬가지겠죠. 소년과 우리는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이미 하나가 되었으니까요. 책표지 그림 속 바람과 하나가 된 소년처럼 말입니다.

무언가를 느끼는 데는 눈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큰 차이가 없어요. 느끼는 것은 마음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우리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삶이란 눈과 머리로만 살아지지 않죠. 몸으로 부딪히고 가슴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니까요.

소년이 찾아 나선 바람의 색은 결국 우리네 삶의 의미와 가치가 아닐까요. 소년을 따라 바람의 색을 찾아 보세요. 들판에 가득 핀 꽃의 향기를 맡고, 숲 속에 깔린 젖은 흙을 밟으며, 옷들이 나부끼는 골목과 이야기를 간직한 지붕의 색을 바라보며 자신의 꿈, 삶, 인생의 의미와 진정한 가치를 느끼고 찾아 보세요.


바람은 보이지 않아
(왼쪽) 속표지 / (오른쪽) 뒤표지

책의 속표지와 뒤쪽 표지엔 소년의 것으로 보이는 지문이 찍혀있어요. 소년이 바람을 일으키려고 손으로 책을 잡은 자국입니다. 다 읽고나면 소년의 지문 자국 위에 내 지문을 맞춰놓고 살살 책바람을 일으켜 보세요. 엄지 손가락은 속표지의 지문 위에, 나머지 네 손가락은 뒤표지의 지문 자국 위에 올려놓고 엄지 손가락을 가만히 튕겨 보세요. 그리고 느껴 보세요. 바람은 무슨 색인지…… 바람이 실어오는 소리, 실어오는 것을 가만히 눈 감고 마음으로 느껴 보세요.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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