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똥 쌀래!

내가 먼저 똥 쌀래!

(원제 : Hé, Wie Zit Er Op De Wc?)
글/그림 하르먼 환 스트라아턴 | 옮김 지명숙 | 북스토리아이
(2016/03/10)


표지 그림만 보고도 아이들의 환한 미소가 떠오르네요. 제목을 가리고 ‘이게 무슨 상황일까?’하고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이렇게 소리치겠죠. ‘화장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에요’하구요. 똥과 동물을 소재로한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언제나 무한 사랑입니다. ^^

동물들이 빨간 문 앞에 줄지어 서있습니다. 몸을 잔뜩 움츠린 채로 말이에요. 똥은 마려운데 누군가 화장실 안에 있는 모양인가 봐요. 이들의 이야기 한 번 들어 볼까요?

내가 먼저 똥 쌀래!

허둥지둥 몹시 급하게 곰이 화장실로 뛰어 왔는데 문이 잠겨있어요. 엉덩이를 한껏 오므리며 곰이 물었습니다.

“거기 혹시 누구 있어?”

그런데 아무런 대답이 없어요. 대답 대신 곰의 뒤를 이어 돼지가 다가왔어요. 똥이 마렵다고 먼저 좀 쓰면 안되겠냐는 돼지의 말에 곰은 딱 잘라 거절했죠. 뒤로 와서 줄이나 서라구요. 에고, 큰일 났지만 할 수 있나요? 줄을 설 수 밖에……

내가 먼저 똥 쌀래!

급한 동물들이 하나하나 화장실 앞으로 모여듭니다. 코끼리는 도대체 누가 화장실에 있냐며 트럼펫 소리를 냈지만 소용없었어요. 아주 급해서 못 참을 것 같다는 호랑이도 펭귄도 원숭이도 줄을 설 수 밖에 없었죠.

동물들이 급한 볼일을 참느라 몸을 비틀고 다리를 배배 꼬는 장면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제아무리 위엄 있는 동물이라도 화장실 앞에서는 모두 같은 처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힘이 세건 덩치가 크건 화장실 앞에선 모두가 똑같죠.

내가 먼저 똥 쌀래!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화장실을 쓰고 있는 누군가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아요. ‘제발!’하고 부탁도 해보고 ‘당장 안 나오면 이대로 끝장’이라 소리도 쳐보고 다들 낑낑 끙끙 앓는 소리까지 냈지만 화장실 이쪽 사정일랑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부답일 뿐입니다.

이렇게 다급한 순간에도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있는 동물들의 모습이 참 사랑스럽습니다.

내가 먼저 똥 쌀래!

더 이상은 못 참을 것 같은 순간 쏴아아~ 듣기만 해도 시원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동물들이 다 함께 소리칩니다.

“만세!
드디어 우리 차례다!”

볼일이 급해 발을 동동 구르다 쏴아아 물 내리는 소리에 절로 만세!가 나오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파하하 웃음을 터뜨렸어요. 서너 명의 식구가 보통 화장실 두 개씩 딸린 아파트에 사는 요즘 아이들이 화장실 앞에서 다급한 순간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얼마나 반가운지를 공감할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내 차례가 아닌 우리 차례라고 소리 치는 동물 친구들, 함께 기다리는 동안 모두 같은 처지라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 질 수가 있네요.^^

내가 먼저 똥 쌀래!

화장실에서 작은 소년이 커다란 책을 들고 나왔어요. 책을 끝까지 읽느라 이렇게 오래 걸렸다는 소년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이제껏 순서를 지키고 서있던 동물들이 모두 한꺼번에 화장실로 몰려들어 갑니다. 그리곤 소리쳤죠.

“내가 먼저 똥 쌀래!”

음, 책은 역시 화장실에서 읽을 때가 제 맛이죠.^^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화장실 안에서 소년이 느긋하게 독서를 즐기는 사이 화장실 밖에서 자신들의 순서를 기다리며 일어난 한바탕 소동을 재미있게 묘사한 “내가 먼저 똥 쌀래!”, 동물들의 표정과 몸짓을 아주 실감나게 그려내 읽으면서 더욱 즐겁고 유쾌해지는 그림책입니다. 네덜란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하르먼 환 스트라아턴은 할아버지의 빨간 손수건”이란 그림책으로 이미 오래 전에 국내에 소개된 작가입니다. 할아버지와 손주 간의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이 그림책은 내용도 가슴 찡하지만 그림이 참 인상적인 그림책이죠.

앞으론 화장실에서 느긋하게 볼일을 볼 때마다 화장실 문 밖 풍경이 눈앞에 그려질 것 같아요. 내가 늦게 나왔다고 붉으락푸르락 화내는 가족 표정을 보고 호랑이 같은지, 곰 같은지, 아니면 기린 같은지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림책을 읽으면서 동물들이 어떤 모습으로 똥을 참고 있는지 그 모습을 흉내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읽어 보세요 – 줄 서세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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