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글/그림 이세 히데코 | 옮김 김정화 | 청어람미디어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 나무 도감. 그런데 보고 또 보고 어찌나 열심히 봤는지 책이 다 뜯어져 버렸습니다. 뜯어진 책을 바라보며 풀이 죽은 아이. 어쩌면 좋을까요?

망가진 책은 어디로 가져가야 될까?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망가져버린 책을 고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며 아이는 거리를 헤매고 다닙니다. 그러다 책방 앞에 멈춰 선 아이. 새로 나온 도감이 잔뜩 있었지만 아이는 자신의 책을 그냥 잃고 싶지 않습니다.

난, 내 책을 고치고 싶어.

여기저기 묻고 다니던 끝에 아이는 마침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가판대에서 책을 파는 아저씨가 방법을 알려주었거든요.

그렇게 중요한 책이면 를리외르를 찾아가 보려무나

를리외르가 뭐지?
책 의사 선생님 같은 사람인가?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아이는 여기저기 묻고 다닌 끝에 를리외르 아저씨의 공방을 찾아냈습니다. 지금껏 망가진 책을 고칠 방법을 찾아 헤매는 아이의 모습이 담긴 그림 반대편엔 집에서 나와 거리 이곳저곳을 한가로이 거니는 한 아저씨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는데 이 분이 바로 아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를리외르 아저씨였군요.

분주한 아이 모습과는 달리 쓸쓸해 보이기까지 하는 를리외르 아저씨의 모습이 아주 대조적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직업 를리외르, 출근길을 서둘러도 되지 않을만큼 일이 별로 많지 않은 듯 해서 자신의 공방으로 향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를리외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잠깐 찾아 볼까요? 그림책 서두에 를리외르에 대해 간략한 소개가 나와 있습니다.

※ 를리외르(Relieur) : 를리외르는 필사본, 낱장의 그림, 이미 인쇄된 책 등을 분해하여 보수한 후 다시 꿰매고 책 내용에 걸맞게 표지를 아름답게 꾸미는 직업이다. 다시 말해 좋은 책을 아름답게, 오래 보관할 수 있게 하는 총체적인 작업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수도승들이, 16세기 이후에는 왕립도서관 소속인 를리외르들이 제본을 담당하였다. 예술 제본이 발달했던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예술의 한 분야로 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를리외르에 대하여 – 출처 :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예술의 한 분야로 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설명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예술의 한 분야로 보존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될 듯 합니다. 인쇄와 제본 기술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는 를리외르를 찾아야 할만큼 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을테니 말입니다.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오래 묵은 것들로 가득한 를리외르 아저씨의 공방에 어리디 어린 꼬마 손님이 찾아오자 먼지만 풀풀 날리던 공간에 생기가 가득해집니다. 그리고 꼬마 손님의 소중한 나무 도감을 되살리기 위한 늙은 장인의 작업이 시작됩니다.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책을 새로 만드는 일의 시작은 망가진 책을 낱낱이 뜯어내는 일입니다. 다시 꿰매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죠. 를리외르라는 말에는 ‘다시 묶는다’는 뜻도 있다고 해요. 다 뜯어낸 책을 순서대로 잘 정리한 후 낡은 가장자리를 다 잘라내고 실로 땀땀이 꿰매줍니다. 그런 다음 풀칠을 하고 말린 뒤 책등을 망치로 두드려서 책이 잘 넘어가도록 둥글려줍니다. 책이 다 마르기까지 하루를 기다려야 한대요. 책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표지로 쓸 가죽과 종이를 골라야 합니다.

를리외르 아저씨가 꼼꼼히 일을 하는 동안 꼬마 손님은 아저씨 옆에 착 달라붙어서는 쉬지 않고 참견하고 조잘거립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나무들에 대해서 끝없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꼬마 손님. 자신이 좋아하는 아카시아 그림이 있는 페이지를 빠뜨렸다고 잔소리도 잊지 않습니다. ^^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한참을 작업하고 난 후 아저씨는 꼬마 손님과 함께 공원에 있는 아주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아카시아 나무를 좋아하는 꼬마에게 아저씨는 이 나무도 아카시아 나무라고 설명해줍니다. 400살도 더 된 아주 오래된 나무만큼이나 를리외르란 일도 긴 세월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말입니다.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공원에서 점심을 먹고 난 후 를리외르 아저씨는 작업에 몰두하기 위해 꼬마 손님을 집으로 돌려 보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 뜨기가 무섭게 꼬마는 공방으로 달려갑니다.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공방 안에는 자신의 나무 도감이 새로운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를리외르 아저씨가 빠뜨린줄로만 알았던 아카시아 나무 페이지는 새로운 표지를 멋지게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ARBRESS de SOPHIE’라는 새 제목도 금박으로 멋스럽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소피의 나무들’이란 뜻이래요.

새롭게 태어난 자신의 나무 도감을 받아든 꼬마 손님 소피는 이미 책 속에 빨려 들어가 있습니다. 새 도감도 거부할만큼 정이 담뿍 든 자신의 책, 그 책을 버리지 않고 계속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었을텐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아카시아 그림과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오로지 자신만의 책으로 돌아왔으니 아이는 얼마나 감동을 받았을까요? 를리외르가 하는 일을 예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런 감동 때문이겠죠.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속지는 내가 좋아하는 숲 색깔이었다.
뭐든지 가르쳐 주는 내 책.
나만의 책.

소피는 자신에게 멋진 선물을 안겨 준 를리외르 아저씨에게 자신이 정성들여 키운 새싹이 담긴 작은 화분을 선물합니다. 꼬마 손님이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며 밤새도록 책 살리기 작업을 한 아저씨는 화분을 받아든 채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책에는 귀중한 지식과 이야기와 인생과 역사가 빼곡히 들어 있단다. 이것들을 잊지 않도록 미래로 전해 주는 것이 바로 를리외르의 일이다.

고치고 다시 튼튼하게 제본할 때마다 책은 새 생명을 얻는 거란다.

를리외르의 일은 모조리 손으로 하는 거란다. 실의 당김도, 가죽의 부드러움도, 종이 습도도, 재료 선택도 모두 손으로 기억하거라.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좋아. 다만 좋은 손을 갖도록 해라.

를리외르 아저씨와 소피가 함께 점심을 먹었던 공원의 아주 오래된 커다란 나무에는 를리외르였던 아저씨 아버지의 말씀이 배어 있었습니다. 소피를 돌려 보낸 후 를리외르 아저씨는 나무를 바라보며 그 옛날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가르침을 되새깁니다. 책에 담긴 귀중한 지식과 이야기와 인생과 역사를 고스란히 미래에 전해 주는 일, 책에 새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이 바로 를리외르의 일이라는 가르침, 좋은 손을 갖도록 하라는 가르침을 말입니다.

한 장 한 장 그림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가득 깊은 여운을 간직하게 되는 그림책, 정신 없이 바쁘기만 한 우리들의 일상에 잠시나마 여유를 안겨주는 그림책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였습니다.


함께 읽어 보세요 : 책 고치는 할아버지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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