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 안 들으면... 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
책표지 : Daum 책
엄마 말 안 들으면… 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

(원제 : Billy Twitters and His Blue Whale Problem)
맥 바네트 | 그림 애덤 렉스 | 옮김 장미란 | 다산기획
(발행일 : 2010/07/22)


엄마 말 안 들으면… ‘망태 할아버지한테 잡아가라고 한다!’ 해야 하는데, ‘흰긴수염고래를 데려온다!’는 경고조의 제목에 문득 망태 할아버지가 더 무서울지 흰긴수염고래가 더 무서울지 이런 저런 상상을 해봅니다. 서양에서는 엄마 말 안 들으면… 흰긴수염고래를 데려오는 걸까요? 엄마 말 안 듣는 아이는 세상 어디든 널리고 널렸기에 엄마를 도와줄 망태 할아버지도 필요하고 흰긴수염고래도 필요한 것이겠죠?

독특한 느낌의 긴 제목을 가진 이 그림책은 칼데콧상,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 케이트그린어웨이상, 보스턴 글로브 혼북상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하며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요즘 가장 핫한 작가 맥 바넷의 2009년 작품으로 그가 쓴 첫 번째 그림책입니다.

엄마 말 안 들으면... 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

벗어서 팽개쳐 둔 옷가지들이며 나뒹굴고 있는 포스터, 던져놓은 가방, 그 와중에도 엉망진창이 된 방 한켠에서 모형 로켓 발사를 앞둔 빌리에게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빌리야,
방 좀 치워라.

안 그러면 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

이 좀 닦아라, 콩 남기지 말아라…… 빌리가 마음에 안 들 때마다 엄마는 안 그려면 흰긴수염고래를 데려오겠다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빌리는 엄마 말은 귓등으로도 안들었어요. 왜냐, 흰긴수염고래가 어떤 동물인지 대~충 알고 있었으니까요.(’30m까지 자라는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흰긴수염고래를 하룻밤 사이에 집으로 데려온다고? 에이, 말도 안돼!’ 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죠.)

재미난 건 빌리를 따라다니며 잔소리 하는 엄마에게는 표정이 나와있지 않다는 사실. 얼굴 가득 잔소리 말풍선에 가려져 있거든요.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말이든 그저 흘려듣는 빌리 입장에서 볼 때 엄마 아빠의 머리 속을 꽉 채운 것은 오직 자신을 향한 잔소리 뿐입니다.

엄마 말 안 들으면... 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

하지만 엄마가 해내지 못 할 일은 세상에 없죠.^^ 다음날 FEDUP이라는 배송회사에서 집 앞까지 안전하게 흰긴수염고래를 배달했거든요. (FedEx와 그 경쟁사 Ups를 교묘하게 합친 느낌의 ‘Fed Up’에는 ‘지긋지긋한’이라는 뜻이 담겨 있으니 현재의 상황과 참 잘 맞아 떨어지는 재미난 이름이네요.)

그렇게 상상은 현실이 되고, 엄마 말 절대 듣지 않은 빌리는 이제부터 어디든 고래를 데리고 다녀야 한다는 엄마 말에 고래와 함께 학교에 갔습니다. 어떻게요? 고래를 스케이트 보드에 태우고 빌리가 자전거로 끌고서요. 흰긴수염고래와 함께하는 등굣길 풍경이 참으로 엄청납니다.

엄마 말 안 들으면... 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

고래를 숨기려 했지만 흰긴수염고래를 좋아하는 선생님은 고래를 교실로 데리고 오라 하셨어요. 원래 보기로 했던 카우보이 영화 대신 선생님이 흰긴수염고래 이야기만 하는 바람에 빌리는 친구들의 원망을 들어야 했어요. 게다가 너무 큰 고래가 있을만한 곳이 없어 친구의 생일 파티에도 못가게 되었고 쉬는 시간에는 고래 때문에 쓸데 없는 아이들의 논쟁에 휘말려야만 했죠.

엄마 말 안 들으면 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

끔찍한 학교에서의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니 이번엔 아빠가 ‘흰긴수염고래 키우기 안내서’를 전해 주셨어요. 흰긴수염고래랑 놀아줘야 하고 몸을 씻겨줘야 하고 구운 콩을 먹지 않는 고래를 위해 바닷물 38톤까지 가져와야 합니다. 엄마가 빌리 때문에 속 끓였던 일을 빌리가 흰긴수염고래에게 그대로 해줘야하는 상황이죠. 빌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털끝하나 신경 쓰지 않는 고래의 무심한 눈동자는 엄마의 잔소리에 무신경했던 빌리의 눈빛을 연상시킵니다.

엄마 말 안 들으면...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

춥고 눅눅한 바다에서 빌리가 바닷물을 퍼나르고 있을 때 작은 배에 탄 할아버지가 빌리를 보고 소리쳤어요.

“야아, 너 같은 꼬맹이가 무슨 물을 그렇게 많이 퍼 가냐?
모르는 사람이 보면 흰긴수염고래라도 키우는 줄 알겠다!”

거센 파도가 휘몰아치는 검푸른 바다가 꼭 빌리의 마음 같아 보입니다.

엄마 말 안 들으면... 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퍼온 바닷물을 고래 입속에 퍼넣어주는 일이었어요. 고래 입에서는 정말 지독한 냄새가 났거든요. 땀에 쩐 고린내 나는 생선이 운동하고 몇 주동안 빨지 않은 양말을 신은 그런 냄새가 났어요. (상상만으로도 낯이 확 찌푸려지는 엄청난 표현력! 정말 엄마 말 잘 들어야 겠네요.^^)

고린내가 너무 지독해서 산골로 도망을 칠까 생각하던 빌리 머리 속에 파파팍 스친 생각은 ‘진짜로 도망쳐야 겠다’ 였어요. 그리고 도망칠 아주 완벽한 장소까지 생각해 냈죠.

엄마 말 안 들으면... 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

빌리가 흰긴수염고래 때문에 생긴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친 곳이랍니다. 이 곳은 어디일까요? 빌리 말을 빌자면, 이곳에 있으면 아무도 빌리를 귀찮게 하지 않는대요. 게다가 정리 따위 하지 않아도 잠잘 곳이 충분할만큼 아주 넓고 말이죠~

이곳은 바로 고래 뱃속이랍니다.

흰긴수염고래 때문에 생긴 문제에서 벗어나려면
흰긴수염고래 안에 들어가는 게 최고다.
하루에 몇 번씩 고래수염을 빗질해주고
치실로 닦아주기만 하면 아주 쾌적하게 지낼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워낙 넓어서 아무리 어질러도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그림책을 읽을 때는 엄마 말 안 듣다가 아주 혼쭐나는 아이 이야기구나 했지만 끝까지 읽고나면 마지막 반전에 아주 싸~한 느낌이 들어요. 이 익숙한 결말은 박연철 작가의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의 반전 결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림책을 덮기 직전 마지막 장면에 나온 말 안 듣는 아이의 대명사  피노키오는 이야기를 더욱 싸~하게 마무리합니다. 이건 모두 빌리의 거짓말이란 뜻일까요? 아님 엄마 말 안 듣다가 결국 피노키오가 된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사람이 되고 싶었던 피노키오처럼 빌리가 개과천선하게 된다는 암시일까요? 진짜 아이가 되고 싶었던 피노키오, 엄마 아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겠다는 자신의 의지와 달리 재미를 쫓으며 온갖 말썽으로 하루를 보냈을 모든 아이들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 그러고 보니 빌리가 바닷가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제패토 할아버지와 아주 많이 닮아보이네요.

어른들의 잣대에서 보면 아이들은 언제나 부족한 존재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렇다 보니 끊임 없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엄마 아빠의 머릿 속이 아이들 눈에는 온통 잔소리로 꽉 차 있는 것으로 보일 거구요. “엄마 말 안 들으면…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는 ‘방 정리, 이 닦기, 콩 남김없이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즐겁고 유쾌하고 중요한 일들이 세상에 널렸는데 왜?’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는 그림책입니다 . 자아가 형성되고 부모와 다른 개별적인 존재라 인식하기 시작한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재미난 상상을 통한 건전한 방법으로 부모에 대한 불만을 풀어냈으면 좋겠습니다. 주인공 빌리와 함께 고래 뱃속으로 도망을 쳐보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겠죠.

재미난 이야기와 멋진 그림 속에 흰긴수염고래에 대한 깨알 같은 생태 정보까지 담은 이 그림책을 읽다 보면 글을 쓴 맥 바넷과 그림을 그린 애덤 렉스가 그림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고민했는지가 한 눈에 느껴집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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