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닌 날

혼자가 아닌 날

(원제 : The Only Child)
글/그림 구오징 | 미디어창비
(발행일 : 2016/07/20)

※ 2015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 선정작
2016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길을 잃은 한 아이가 숲속에서 거대한 수사슴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신비한 판타지 여행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혼자가 아닌 날”은 2015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으로 선정된 작품으로 중국 작가 구오징이 만든 첫 번째 그림책입니다.

혼자가 아닌 날

가족 모두 출근한 집에는 아이 혼자 남습니다. 상큼하게 맞이한 이른 아침의 즐거운 기분은 어느새 외로움으로 변했어요. 혹시나 엄마가 다시 문을 열고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일까요? 아니면 홀로 보내게 될 긴 하루에 대한 긴장감 때문일까요? 엄마가 나가고 난 후 굳게 닫힌 문을 홀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자그마한 뒷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혼자가 아닌 날

혼자 놀면서 시간을 보내던 아이가 본 것은 가족 앨범 속 할머니의 모습이었어요. 아이는 편지 한 장을 남겨 놓고 밖으로 나갔어요.

혼자 나선 길이지만 아이는 제법 씩씩합니다. 하얗게 내린 눈 위에 다양한 모양의 발자국을 남기면서 눈길을 걷는 아이, 작은 것 하나도 신기하고 즐겁고 호기심 많은 순수한 아이의 동심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어른들 틈에 끼어 버스를 타고 무작정 길을 나선 아이는 가족 앨범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할머니 댁을 찾아나선 길이었어요.

혼자가 아닌 날

회색빛 창밖 풍경들을 바라보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버스에는 아이 혼자뿐입니다. 놀란 마음에 서둘러 내리고 나니 여기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죠. 버스가 떠난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있는 아이, 아침 출근하는 엄마를 바라 보고 있을 때도 아마 이런 표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혼자가 아닌 날

하염없이 내리는 눈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며 울먹거릴 때 거대한 수사슴을 만났어요. 사슴은 아이를 태우고 구름 계단을 밟고 구름 위로 올라갑니다.

현실의 공간을 이야기 할 때 프레임 색상은 회색입니다. 사슴을 만나 함께 구름 위로 올라가며 판타지의 세상으로 공간이 변하는 순간 프레임의 색상이 하얀색으로 변합니다. 작가는 프레임의 색상을 변화 시키는 것으로 현실과 환상 세계를 구분하고 있어요.

혼자가 아닌 날

하얀 눈이 내리는 현실 세상과 달리 사슴과 함께 올라 온 구름 위의 세상에는 눈이 내리지 않습니다. 묘한 정적 속에서 서서히 사슴과 아이가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갈 무렵 새롭게 한 친구가 등장합니다. 동글동글 폭신폭신 귀엽게 생긴 이 친구는 어딘지 모르게 아이를 닮았네요. 아이의 분신처럼 보이기도 하고 폭신폭신한 구름을 닮아 보이기도 합니다. 뒷모습만 보면 첫 장면에서 아이 집에 놓여있던 동그란 꼬리를 가진 토끼 인형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혼자가 아닌 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세 친구는 구름을 타고 나타난 거대한 고래에게 꿀꺽 삼켜지면서 어두컴컴한 고래뱃속 여행도 함께 합니다. 구름 고래는 구름을 삼켰으니 등줄기에서 거대한 물줄기 대신 구름을 쏟아내는군요. 거대한 덩치와는 다르게 예쁘장한 구름이 퐁~하고 솟구칩니다. 그 바람에 뱃속에 갇혔던 세 친구도 구름과 함께 솟아 올랐죠.

혼자가 아닌 날

달이 떠오르고 저녁 시간이 찾아오자 구름 요정의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찾으러 왔어요. 엄마 품에 꼭 안긴 채 떠나는 구름 요정의 모습을 보니 아이 역시 엄마 생각, 집 생각이 난 모양입니다. 쓸쓸해 하던 아이는 엄마 품을 대신해 사슴에게 기대어 잠이 들었어요. 폭신해 보이는 구름을 이부자리 삼아 커다란 사슴 품에 안겨 잠든 아이의 모습…… 포근한 듯 하지만 왠지 쓸쓸해 보입니다. 이 세상에 엄마 품을 대신 할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겠죠.

혼자가 아닌 날

아이가 잠든 사이 사슴은 아이를 엄마 품으로 돌려 보내기로 합니다. 황홀한 달빛 아래 아이를 등에 태우고 성큼 뛰어 올라 아이의 집을 향해 달리는 사슴. 모두 잠들어 깜깜해진 마을엔 딱 한 곳의 불빛만 꺼지지 않았어요. 아이의 집이었죠.  사슴의 등에서 내린 순간 프레임 색상은 다시 현실 세계를 상징하는 회색으로 돌아옵니다.

혼자가 아닌 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이제 각자 돌아가야 할 곳이 다름을 깨달은 아이와 사슴은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서로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울면서 돌아서는 아이의 모습을 사슴은 오래도록 바라봅니다. 마음 깊이 담아두려는 듯 그 자리에 꼭 붙어 서서 아이를 바라보고 있어요. 그 눈이 참 깊고 그윽합니다.

혼자가 아닌 날

집에 돌아와 엄마 품에 안긴 아이의 밤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습니다. 잠옷으로 갈아입은 아이는 엄마가 책 읽어주는 소리에 스르륵 잠이 들었어요. 길고 고된 하루를 보낸 탓일까요? 아이는 곤히 잠 들었습니다. 그렇게 깊은 잠에 빠진 아이의 자그마한 손에는 작은 사슴 인형이 들려있어요. 집을 나서는 순간에도 작은 지갑 속에 넣어 가지고 갔던 바로 그 인형입니다.

깊은 밤 어느덧 눈은 그쳤습니다. 달빛이 환하게 비쳐드는 아이 방 창가에 가지만 남아 쓸쓸해 보이는 겨울 나무가 보입니다. 메마른 겨울 나뭇가지 사이, 오늘 하루 아이를 무사하게 지켜준 사슴의 크고 견고해 보이는 뿔 한 쌍…… 혹시 찾으셨나요?

오늘 아이가 겪은 것은 그저 한낱 환상이었을까요? 환상의 세계는 믿는자에게만 보이고 열린답니다.^^

몽환적 느낌을 살려 그린 이 그림책은 여러모로 레이먼드 브릭스 “눈사람 아저씨”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마도 아이와 사슴이 헤어지는 장면에서 하룻밤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눈사람 아저씨와 아이의 애틋한 이별 장면이 떠오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린 날 누구와도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어쩐지 내게도 있었던 것만 같이 느껴지는 그림책 “혼자가 아닌 날”, 가슴 찡한 마무리가 오래도록 마음 속 깊이 여운을 남겨줍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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