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기 걸린 물고기

감기 걸린 물고기
책표지 : 사계절
감기 걸린 물고기

글/그림 박정섭 | 사계절
(발행일 : 2016/9/5)

2016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알록달록 조그만 물고기로 가득찬 표지 그림만 봐도 기분이 유쾌해집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물고기들 하나하나에 재미난 표정이 있어요. 놀라는 물고기, 입 꼭 다문 물고기, 졸린 물고기, 기분 좋은 물고기, 무표정한 물고기……

이 중에 감기 걸린 물고기는 누구일까요? 그런데 물고기도 감기에 걸릴 수 있을까요? (음, 좀 쌩뚱 맞은 얘기지만 물고기도 병에 걸릴 때가 있어요. 그래서 병에 걸린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에게 옮지 않도록 격리 치료를 시킨답니다.^^)

감기 걸린 물고기

늘 떼로 몰려 다니며 똘똘 뭉쳐 있는 작은 물고기들, 그 때문에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아먹지 못해서 늘 배가 고팠던 아귀는 고민 끝에 이상한 소문을 내기로 했어요. 이마에 달린 노란 불빛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아귀가 조심스럽게 소리 쳤죠.

얘들아~
빨간 물고기가~
감기에 걸렸대~

‘흥! 무슨 소리야?’라고 말도 안된다는 식으로 대꾸했지만 어쩐지 물고기들 표정이 흠칫 놀란 것처럼 보이네요. 작은 물고기들은 아귀의 헛소문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대처할까요?

감기 걸린 물고기

작은 물고기들은 처음엔 무슨 소리냐며 무시했지만 어째 영 찜찜합니다. 그러자 아귀는 ‘감기 걸리면 열이 펄펄 나니까 그래서 빨간 것!’이라는 나름 논리적인 이유를 대면서 물고기들 사이를 흔들어 놓았어요. ‘여지껏 나만 모르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결정적인 마지막 말 ‘그런 것도 몰랐어?’ 에 물고기들은 혼란스러워졌어요.

눈길을 사로잡는 원색의 배경 위에 글자를 재미나게 배치한 타이포그래피 기법으로 이야기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마치 아귀 입에서 말들이 툭툭 튀어나오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음성 지원까지 되는 것 같습니다.

감기 걸린 물고기

소문에 당황하던 물고기들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어요. 결국 이들은 빨간 물고기들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옮지않으려면 같은 색끼리 뭉쳐야겠다 생각했죠.

감기 걸린 물고기

급기야 이제껏 친구였던 빨간 물고기들에게 ‘당장 나가’라며 이들을 내쫓아 버렸어요. 그 틈에 아귀는 손쉽게 빨간 물고기들을 낼름 삼켜버렸죠.

아귀는 뭉쳐 다니는 물고기들에게 계속해서 소문을 퍼뜨렸어요. 처음엔 열이 나서 빨갛게 되었다는 이유로 빨간 물고기가, 그 다음번에는 콧물 때문에 노랗게 되었다며 노란 물고기가, 감기 때문에 으슬으슬 추워서 파랗게 질린 거라면서 파란 물고기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갔어요.

커다랗게 대형을 유지해 나가던 물고기 무리는 점점 작아지고, 무리에서 떨어져나간 힘없는 작은 물고기들은 아귀에게 꿀꺽 잡아 먹혀 버립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반복이 됩니다. 친구를 의심하는 바람에 자꾸만 작아지는 물고기 무리, 물고기들을 잡아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커지는 아귀의 몸통, 그러자 이제는 물고기들끼리 반목하게 되었어요. 소문의 진상은 어디인지, 어디가 거짓이고 어디가 진실인지 믿을 수 없었던 물고기들끼리 네 편 내편으로  편이 갈리자 가장 행복한 것은 처음 소문을 퍼뜨린 아귀였습니다.

감기 걸린 물고기

거대 아귀만 남은 상황으로 이야기는 이렇게 슬프게 끝이 날까요? 알록달록한 색감에 장난기 가득한 그림을 봐서는 반전 상황이 하나 있을 것 같은데…… 어떨까요? “감기 걸린 물고기”의 재미난 결말은 직접 확인해 보세요. ^^

바이러스만큼이나 무서운 소문, 소문과 바이러스의 공통점은 순식간에 퍼져나간다는 점, 그리고 재빨리 손쓰지 않으면 둘 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점 아닐까요? 그림책 속 아귀의 몸뚱이가 점점 커지듯이 말입니다.

시작은 아귀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 말이었지만 어느새 작은 물고기들의 입과 입을 통해 점점 부풀려 지고 어느 순간 ‘소문=진실’이라는 확신을 낳고 맙니다. 불안감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이성이 마비 된 혼란스러운 자리에는 늘 아귀처럼 비열한 이득을 취하는 자가 존재하기 마련이죠. 대중 사이로 파고드는 소문으로 인해 야기되는 불안과 불신의 모습이 우리와 꼭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아귀와 물고기들 간의 대화로만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 글과 단순하면서도 선명한 그림으로 간단명료하게 이야기의 본질을 보여주는 그림책 “감기 걸린 물고기”,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심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다수의 묵인 속에 ‘꼬리 자르기’로 자신들만 빠져나가는 것은 합리적인 방법일까요? 이런 사회가 합리적인 사회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까요?

그림책이 던지는 묘한 메세지가 마음 속에 수많은 질문을 남깁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2 Replies to “★ 감기 걸린 물고기

  1.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는 감각이 있을거예요 아주 작은 물고기일지라도 아픔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감기가 아닐지라도 …
    아주 짧은 말이 용기가 될 수도 있고,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감기걸린 물고기가 치유 될 수있는 용기의 말… 좋은 소문이 나면 좋을 텐데요 ^^*

    1. 감기 보다 무서운 내부 분열과 의심이라는 커다란 열병을 앓고 지났으니 작은 물고기들 사회도 좀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영화 곡성의 명대사가 생각납니다. ‘뭣이 중헌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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