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할머니
책표지 : Daum 책
늑대 할머니

(원제 : Lon Popo)
글/그림 에드 영 | 옮김 여을환 | 길벗어린이
(발행일 : 2016/05/10)

※ 1990년 보스턴 글로브 혼북상 수상작
※ 1990년 칼데콧 메달 수상작

※ “Lon Popo”는 1996년 11월에 보림에서 “론포포”란 제목으로 이미 출간했었고, 2016년 5월 길벗어린이에서 “늑대 할머니”란 제목으로 새로 출간했습니다.


1990년 보스턴 글로브 혼북상과 칼데콧 메달을 동시에 수상한 “늑대 할머니”의 부제목은 ‘중국의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인데요. 영어판 표지를 보면 ‘ A Little Red-Riding Hood Story From China’란 부제목이 붙어있어요. 서양에서는 이 이야기를 중국판 ‘빨간 모자’로 소개하고 있네요.

불그스레한 표지 배경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늑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 눈빛이 어찌나 강렬한지 바로 눈 앞에서 늑대와 마주한 것 마냥 오싹함까지 전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늑대 할머니

엄마가 세 딸만 남겨두고 할머니 댁에 가는 걸 지켜 본 늙은 늑대는 어둠이 찾아오자 아이들만 남은 집을 찾아가 자신이 할머니라면서 문을 열어달라 합니다. 의심스러워하는 세 아이를 교활하게 속인 늑대는 무사히 집 안으로 들어갔어요.

속이려는 자와 의심하는 자의 마음은 모두 같은 것일까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문 밖에 찾아온 이가 궁금하면서도 두렵기도 한 아이들의 표정과 이들을 속이려 드는 늙은 늑대의 표정이 모두 조심스러워 보이면서 또 한편으론 두려움에 가득 차 보입니다.

늑대 할머니

상이 몸을 쭉 펴다가 늑대 꼬리를 건드렸어요.
“할머니, 할머니 발이 북실북실해요.”
“할미가 바구니를 짜 주려고 삼을 가져왔거든.”

“할머니, 할머니 손이 뾰족뾰족해요.”
“할미가 신발을 만들어 주려고 송곳을 가져왔거든.”

하지만 맏이 상은 자신들과 함께 있는 건 할머니가 아닌 늑대라는 것을 알아챘어요. 영리한 상은 늑대에게 은행을 먹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면서 문 밖 은행나무에 열린 은행을 따오겠다고 말하고는 동생들과 밖으로 나갑니다.

늑대 할머니

세 자매는 높다란 은행나무 위로 올라갔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들이 오지 않자 늑대는 밖으로 나옵니다. 그러자 맏이 상이 은행은 나무에서 직접 따먹어야 효과가 있으니까 할머니가 나무 위로 올라와야 한다고 말했어요.

나무 아래서 은행을 기다리고 있는 늑대의 모습이 작고 초라해 보이네요. 교묘한 수를 짜내 아이들이 있는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보이는 모습입니다.

늑대 할머니

아기 살처럼 부드럽고 연한 은행을 먹기만 하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말에 판단력이 흐려진 늑대는 아이들이 끌어 올려주겠다 약속한 바구니를 타고 오르다 몇 번이나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화가 난 늑대는 으르렁거리며 욕을 해댔지만 마음 속에는 오직 은행열매를 맛보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늘 그렇듯 지나친 집착과 욕심은 화를 부르기 마련이죠.

늑대 할머니

막내 바오주까지 힘을 합쳐 줄을 잡아 당기자 어느새 늑대가 탄 바구니가 나무 꼭대기에 닿을락 말락 했어요. 그 때 아이들은 한꺼번에 잡고 있던 줄을 놓았고 높은 나무 아래에서 떨어진 늑대는 온몸이 산산조각 깨어져 죽게 됩니다.

엄마는 문을 꼭 닫고  빗장을 단단히 걸어야 한다고 일렀지만 아이들은 결국 자신들의 손으로 빗장을 풀어줘 위기에 처합니다. 그리고 온전히 자신들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어른들의 불안과 걱정 속에서도 아이들은 이렇게 성장해 나가고 그렇게 어른이 되는 것이겠죠. 삶의 구석구석에서 위기를 마주했을 때 우리의 표정도 이렇게 비장했을까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빨간 모자 이야기가 뒤섞인 듯한 이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로는 크게 새로울 것이 없지만 이야기를 압도하는 작가 에드 영의 독특한 그림이 시선을 끕니다. 빨간색 테두리의 프레임으로 늑대와 아이들의 심리적 거리를 나누고 흐릿하고 음침한 배경 속에서 서로를 속이려는 늑대와 아이들의 강렬한 눈빛은 이야기 속에 긴장감을 더욱 팽팽하게 불어넣어 줍니다.

책의 도입 부분에 늑대와 할머니가 교묘하게 합성된 그림과 함께 남긴 작가 에드 영의 메모가 인상적입니다.

세상 모든 늑대에게 바친다.
그 좋은 이름을 빌려
우리의 어두운 면을 또렷이 그릴 수 있으니.

– 에드 영

악을 상징하는 늑대는 어쩌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욕망이나 탐욕을 상징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집착이 이성을 마비 시킬 때 혹시나 내게 늙은 늑대가 다른 얼굴을 하고 찾아온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봐야겠습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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