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엄마

할머니 엄마

글/그림 이지은 | 웅진주니어
(발행일 : 2016/08/25)

2016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엄마 대신 유치원 차에서 내리는 손주를 데리러 나오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흔하게 봅니다. ‘아이고 내새끼!’하시며 한달음에 달려가 안아주시는 걸 보면 손주가 눈에 밟혀 그 시간을 어찌 기다리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짠해지곤 해요. 눈물 콧물 바람이 되어 출근하는 저에게 매달리는 어린 손녀를 업고 저를 배웅 나오시던 어머님 생각도 나구요.

김밥을 말고 있는 할머니 머리를 김밥 만지듯 만지며 장난치고 있는 귀여운 손녀 모습에 웃음이 나옵니다. 엄마가 일하러 간 사이 엄마의 자리를 대신 해주시는 지은이의 또 다른 엄마인 할머니 엄마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세요.

할머니 엄마

회사 가는 엄마 때문에 울고 있는 지은이를 달래느라 할머니는 진땀을 뻘뻘 흘리고 계시네요. 내동댕이 쳐진 조그만 숟가락 옆에 장난감 기차가 지은이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장난감 기차라도 타고 엄마를 따라가고픈 마음…… 갈색 곰인형도 고양이도 안쓰러운 눈빛으로 지은이를 바라보고 있어요. 방바닥에 이지은 작가가 쓴 “종이 아빠” 그림책이 눈에 띕니다. 지은이 솜씨 일까요? 벽에 걸린 종이 아빠 그림도 눈에 띄네요.^^

‘지은이 눈물에 엄마는 배 타고 회사 가겠다’는 할머니 말씀처럼 창밖에는 눈물바다를 헤치며 나아가는 초록 버스가 보입니다. 엄마와 떨어져야 하는 세상 모든 아이들의 아침 눈물이 모여서 이룬 눈물바다입니다.

할머니는 칼국수를 만들자면서 지은이를 달래주셨어요. 할머니가 뚝 떼어준 밀가루 반죽으로 지은이는 고양이랑 엄마, 아빠, 할머니랑 지은이까지 만들어 냈죠. 호박 송송, 바지락 탁탁 넣고 끓여낸 할머니와 지은이표 맛난 칼국수 국물 속에는 지은이네 온 가족이 함께 하고 있어요.

칼국수를 드시고 난 뒤 할머니 배에서 쪼르륵 쫄쫄 쪼르륵 쫄쫄 물소리가 나자 지은이가 물었어요.

“할머니, 물소리 나. 할머니 배에서.”
“당연하지. 할머니 배 속에 개울도 있고 숲도 있으니까.”
“진짜? 진짜? 또 뭐?”
“볕 잘 드는 쪼매난 오두막에 지은이 엄마도 살았지.”
“엄마는 할머니 보다 큰데?”
“그때는 지은이보다도 한참 작았어.”

지은이보다 한참 작았던 엄마가 살았던 할머니 배 속에 쪼매난 오두막, 지은이는 할머니를 꼭 껴안고 할머니에게서 엄마를 느껴봅니다.

할머니 엄마

지은이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가족 운동회 날입니다. 이번에도 엄마가 오지 못해 잔뜩 심통이 났지만 젊었을 때 운동이란 운동은 다 잘했었다는 할머니 말씀에 지은이도 기분이 좋아졌어요. 공연장 무대 위에서 할머니와 고양이 마리와 즐겁게 체조하고 있는 장면으로 지은이의 기대감과 행복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할머니의 유연성, 지은이의 민첩함이 합쳐지면 이번 운동회는 지은이와 할머니의 완벽한 독무대가 될 것 같은데요.

할머니 손을 잡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지은이는 학교로 향했어요.

할머니 엄마

줄다리기는 아깝게 졌지만 달리기가 남았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며 지은이는 비장한 각오로 할머니와 출발선에 섰어요. 그런데 출발 신호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자꾸만 다른 친구네 가족들이 지은이네를 앞서갑니다. 다급해진 지은이가 할머니 빨리, 더 빨리를 외치며 달리는데 그만 할머니가 꽈당 넘어지고 말았어요. 우앙! 지은이 눈물이 또 터졌습니다.

할머니 엄마

돌아오는 길, 화도 나고 풀도 죽은 지은이에게 할머니는 고로케를 사주셨어요.

“이제 늙어서 그런가… 잘 못 뛰네.”
“할머니, 다시 젊어지면 안 돼?”
“그래, 그래 볼까?”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얼굴만한 고로케를 오물오물 먹고있는 꼬질꼬질해진 지은이와 기 죽은 할머니 모습에 자꾸만 웃음이 나옵니다. 고로케를 먹은 지은이는 이내 마음이 풀어졌어요.

할머니 엄마

지은이와 할머니가 함께 저녁 장을 봅니다. 아빠 구워 줄 커다란 고등어도 사고, 엄마 좋아하는 콩나물도 사고, 지은이가 좋아하는 달걀 프라이 할 달걀도 샀어요. 아빠만큼  커다란 고등어가 바다처럼 푸른 하늘을 날고, 엄마 무쳐줄 기다란 콩나물이 노란 숲이 됩니다. 가족 생각 뿐인 지은이와 할머니 마음 속 상상의 나라가 참 정겹고 따뜻합니다.

“할머니, 엄마는 언제 와?”
“고등어 노릇하게 구워 놓고
콩나물 참기름에 조물조물 무쳐 놓고
달걀 맛있게 지져 놓으면 금방 올 거다.”

할머니의 뚝딱 요술 밥상이 따끈하게 한상 다 차려질 무렵 초인종이 울립니다. 지은이가 쌩하니 바람처럼 달려나갑니다. 그 뒤에서 할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오늘 다들 고생했어.
어여들 와서 밥 먹자.”

할머니 말씀에 고단했던 하루의 피로가 다 녹아내리는 것 같습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할머니표 칼국수, 아무리 화가 나도 하나만 먹으면 마음 풀어지는 마법의 고로케, 고생한 온 가족의 피로를 풀어줄 할머니의 정성 가득 담긴 저녁 밥상… 할머니의 손 끝에서 마음 가득 사랑이 피어납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가 낳은 새끼를 온 정성과 사랑으로 키워주시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려낸 그림책 “할머니 엄마”, 아이가 그려낸 그림일기처럼 정감가는 그림 속에 할머니와 지은이 사이에 오가는 대화로 가족 사랑을 뭉클하면서도 예쁘게 담아낸 그림책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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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김지혜
2016/10/28 07:18

이곳에서 소개받은 책은 항상 좋네요. 지금 제 상황을 보여주는 그림책이에요. 얼른 서점에서 사서 엄마께 읽어드려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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