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책표지 : Daum 책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글/그림 권정민 | 보림
(발행일 : 2016/08/31)

2016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는 이야기가 면지에서 시작해서 면지로 끝나는 그림책입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앞쪽 면지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뒤쪽 면지의 이런저런 생각 거리와 여운을 남기는 그림으로 끝을 맺습니다. 야생 멧돼지들이 이 시대를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한 필독서, 아기 멧돼지들을 위한 자기계발서, 작가의 말처럼 행복해지고 싶은 모두를 위한 지침서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함께 보시죠.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앞쪽 면지 그림입니다. 풀 몇포기만 겨우 남은 헐벗은 산, 그 끝자락에 내몰린 멧돼지 가족. 이 산에서 나고 자랐고 이 숲에서 짝을 짓고 가족을 이루며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벼랑 끝으로 내처진 멧돼지의 표정, 어미 품 속으로 고개를 처박고는 어쩔 줄 몰라하는 아기 멧돼지들. 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숲은 이미 없어졌습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멧돼지 가족은 갈 곳도 정하지 못한 채 떠밀리듯 아스팔트 위로 뛰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삶의 터전을 잃고 무작정 뛰어든 사람들의 세상에서 멧돼지는 골칫덩어리일 뿐입니다.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먹이를 찾아 도심의 퀘퀘한 골목 안의 쓰레기통을 뒤져야만 하는 신세로 전락해버린 멧돼지 가족.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때도 있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왜 이 멧돼지 가족이 지금 이 곳에서 떠돌고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 하거나 이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고 걱정해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시내 한복판에 나타난 멧돼지가 신기할 뿐이고, 자신들의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다른 이들에게 자랑하듯 보여주는 것이 그들이 갖는 관심의 전부입니다.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인간들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봐주는 것도 아주 잠시뿐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뛰어든 인간 세상에서 그들은 인간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순식간에 바뀌고 맙니다.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이리저리 쫓겨다니며 지칠대로 지친 멧돼지 가족의 마지막 선택은? 그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은 인간들에게 자신들이 살아갈 작은 공간을 보상받는 것이었나봅니다. 이 두 장의 그림은 우리로 하여금 숲을 빼앗긴 멧돼지들의 입장에서 현실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숲에서 쫓겨나 황량한 아스팔트 위로 쫓겨나던 멧돼지들을 보면서 미처 그들의 절망을 공감하지 못했던 우리는 옷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채 황급히 계단을 뛰쳐내려가는 아파트 주민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멧돼지 가족에게서 빼앗은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도시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은 멧돼지 가족은 아직 숲 속에 남아 있는 다른 멧돼지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비둘기가 전해 준 편지 속에 담긴 내용은 어떤 이야기들일까요? 제 생각엔 바로 이 그림책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의 초고가 아닐까요?

어느 날 저녁, 텔레비전 뉴스 속의 멧돼지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앵커의 목소리 대신 멧돼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의 고민을 듣다보니 그를 응원하고 싶어졌습니다. 되도록이면 살아남아 이왕이면 행복해지고 싶은 이 땅의 모든 종족들에게 유용한 지침서가 되기를!

– 권 정민

멧돼지가 뉴스에 등장하는 것은 요즘은 전혀 낯선 일이 아닙니다. 한두 번이야 신기함, 처량함, 그리고 ‘나도 맞닥뜨리면 어떻게 하지?’하는 약간의 걱정 등이 뒤섞인 채 들여다보지만 뉴스가 거듭될수록 둔감해져버린 도시 속 멧돼지 이야기. 하지만 작가의 통찰력은 뉴스 속 멧돼지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었고, 이렇게 좋은 그림책으로 우리도 다시금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행복해지고 싶은 이 땅의 모든 종족들에게 유용한 지침서가 되기를!’…… 작가의 이 바램처럼 비단 멧돼지들만의 이야기는 결코 아님을 깨닫고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게 되네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작가의 위로와 격려

사실 위에서 보여드린 그림들은 그림책 내용 중에서 그림들만 잘라낸 겁니다.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는 그림 한 장 한 장마다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 한 가지씩이 들어 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ththawks)’을 패러디한 위 그림처럼 말이죠. 작가가 들려주는 각각의 지침들은 모두가 힘들어하는 요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주기에 충분합니다.

하루아침에 집이 없어져도 당황하지 말고 새 집을 찾아 나설 것.
힘들면 쉬어 갈 것.
이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아닌 것에 감사할 것.
먹을 수 있을 때 충분히 먹어 둘 것.
너무 무리하지는 말 것.
새로운 동네에 왔으면 분위기를 파악할 것.
그렇다고 분위기에 취하지는 말 것.
수상한 녀석들이 나타나면 일단 피할 것.
녀석들의 지능을 시험해 볼 것.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한 가지만 기억할 것.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 반드시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조용하고 살기 좋은 곳을 찾아낼 것.
느낌이 왔다면 머뭇거리지 말 것.
너무 서두르지도 말 것.
드디어 자리를 잡았다면, 이제 뭘 하면 좋을까요?
친구들을 초대해도 좋음!

오리지날을 궁금하게 만드는 재치 있는 패러디

권정민 작가가 이 그림책 속에 담아낸 열일곱 장의 그림들은 한 장 한 장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듭니다. 제가 찾아낸 건 두 가지입니다.

한 장은 위에서 잠깐 언급한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입니다. 원작에도 이 그림책 속 그림에도 식당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보이지 않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지칠대로 지친 멧돼지들은 인간들의 푸짐한 저녁 식사를 들여다보며 입맛을 다시지만 그 곳에 그들을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조차 보이질 않구요. 작가 역시 말합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라고……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또 한 장은 동물병원 안을 들여다보는 바로 이 장면입니다.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나요? 네, 바로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티파니의 쇼윈도우를 바라보는 홀리의 모습입니다. 상류사회를 꿈꾸며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몸부림치는 홀리의 애처로운 삶과 새로운 곳에 뛰어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는 멧돼지 가족의 모습은 왠지 많이 닮아 보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작가가 의도적으로 패러디 했다고 확언하긴 힘듭니다.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시각과 생각으로 감상하고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그림책을 재미있게 즐기는 즐거움 아닐까요?


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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