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할머니
책표지 : Daum 책
잠자는 할머니

(원제 : A Avó Adormecida)
로베르토 파르메지아니 | 그림 주앙 바즈 드 카르발류 | 옮김 이순영 | 북극곰
(발행일 : 2016/03/21)

‘할머니’… 하면 따뜻하고 온화한 모습의 할머니, 지치고 힘들어하시는 할머니, 맥 없이 누워계시는 할머니 등 다양한 모습의 할머니가 떠오릅니다. 안쓰럽기도 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존재가 저에게는 할머니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의 할머니는 ‘잠자는’ 할머니입니다. 침대에 누워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두 눈을 감고 미소를 띠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평안해 보입니다. 뺨이 발갛게 물든 것이 재미난 꿈이라도 꾸고 계신 걸까요. 하얗고 곱실거리는 머리카락이 폭신폭신한 할머니의 마음 속 같습니다.

잠자는 할머니

“우리 할머니는 잠만 자요.
우리 할머니는 온종일 잠만 자요.
우리 할머니는 한 달째 온종일 잠만 자요.”

옆으로 누워 입까지 벌리고 잠들어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표지에서 만난 평온한 할머니와는 사뭇 달라 보입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면을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에 걱정이 묻어납니다.

잠자는 할머니

그런 아이를 위로하려고 했던 걸까요. 엄마는 아이에게 말합니다. 할머니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라고요. 입맞춤으로 깨워 줄 왕자님을 기다리고 있다고요.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꿈을 꾸고 계실까? 꿈속에서 맛있는 빵을 듬뿍 만들고 시원한 레모네이드도 맘껏 마실까? 깊은 바다 속을 헤엄치고 높은 하늘도 연을 타고 날고 있을까? 라고요.

잠자는 할머니

잠자는 할머니

잠에 빠지기 전에 할머니는 조금 이상했습니다. 혼자서 곱게 화장을 하고 예쁜 꽃 모자를 쓰고 왈츠를 추기도 하도, 마당에서 꽃잎을 뜯고 있기도 했습니다. 아빠가 왜 꽃잎을 따느냐고 묻자 꽃으로 수프를 만드신다고 했습니다. 언젠가는 아이를 부르더니 같이 달나라로 가자고도 하셨습니다.

잠자는 할머니

하지만 긴 잠에 빠지기 전에는 아이와 많이 놀아 주었습니다. 책도 읽어주고 이야기도 들려주고 맛있는 피자도 만들어주고 인형도 사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항상 꼭 안아 주셨어요. 그러던 할머니가 이제는 온종일 잠만 주무십니다.

잠자는 할머니

아이는 할머니가 외로울까봐 매일 오후 할머니 곁에 앉아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책을 읽어드립니다. 혹시 잠에서 깨지 않을까 간지러움도 태우고 비밀 이야기도 하고요. 하지만 할머니는 한 달째 온종일 잠만 주무십니다.

잠자는 할머니

그러던 어느 날 왕자님이 나타나 할머니에게 입맞춤을 했어요.
할머니는 잠에서 깨어나 왕자님과 함께 떠났어요.

잠자는 할머니

잠에서 깨어난 할머니는 더 이상 집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제 꿈을 꾸지도 않으십니다. 아이는 믿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분명히 맛있는 빵을 듬뿍 만들고, 시원한 레모네이드도 맘껏 마시고, 깊은 바다 속을 헤엄치고, 높은 하늘에서 연을 타고 날고 계실 거라고요.

“잠자는 할머니”는 침대에 종일 누워 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어린 손자의 눈을 통해 담담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임종을 맞이하기 전 할머니는 한 달 동안 일어나지도 않고 온종일 잠만 주무십니다. 아이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안타깝고 할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 그립기만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의 곁에서 책도 읽어 드리고 비밀 이야기도 해 드립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주무시기만 하십니다. 엄마는 할머니가 입맞춤으로 깨워줄 왕자님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정말 잠에서 깨어나 멀고 먼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아이는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분명히 멋진 곳에서 신나고 행복하게 지내실 거라고 말입니다.

이 책은 “아빠 아빠, 재미있는 이야기 해 주세요”의 작가 주앙 바즈 드 카르발류가 그린 작품입니다. 몸통처럼 기다란 얼굴, 가느다란 팔과 다리, 동그란 눈동자가 재미있습니다. 단순한 연필 선으로 자유롭게 그린 일러스트레이션이 귀엽고 친근한 느낌을 주면서도 불투명한 저채도의 회색과 적색이 이야기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할머니가 잠자고 있는 시간 동안 아이가 느끼는 세계가 아크릴 물감의 거친 붓터치로 생생히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잠자는 할머니”는 반으로 접으면 모서리가 만나는 방패연처럼 시작과 마지막이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입맞춤을 기다리던 할머니가 입맞춤을 받고, 잠을 자는 할머니가 잠에서 깨어나고, 꿈속 높은 하늘에서 연을 타고 날고 있는 할머니가 꿈에서 깨어나 그대로 하고 있다고 아이가 믿고 있으니까요. 비록 할머니가 아이의 곁으로 다시 돌아오진 않으셨지만 아이가 슬프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가 할머니를 위해 꿈꾼 것들이 모두 일어난 셈이니까요. 할머니는 그런 아이의 고운 마음 덕분에 정말로 행복한 마지막을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할머니와의 추억을 소중히 여기고 할머니의 곁을 마지막 까지 지켜주는 아이의 정성과 바람 덕분에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 주는 책 “잠자는 할머니”였습니다.


도원

도원

객원 필자 | 아프리카에 있는 산 속 공방에서 도자기를 배웠습니다. 현재는 그림책을 쓰고 만들고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2016년 4월 | Facebook | dowon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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