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쑥갓 꽃을 그렸어

쑥갓 꽃을 그렸어
책표지 : Daum 책
쑥갓 꽃을 그렸어

유현미 그림 유춘하유현미 | 낮은산
(발행일 : 2016/10/20)

2016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담백한 그림책 제목에 웅크리고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그림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옵니다. 보고 있자니 마루에서 이것저것 소일거리를 하시며 시간을 보내시는 친정 아버지 모습이 떠오릅니다.

쑥갓 꽃을 그렸어

내가 구십이라니, 어마어마하다.
그렇지?
이제는 잘 걷지도 못해.
누워서 쉬는 것이 제일 편해.

구십이란 나이를 헤아릴 수 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겨봅니다. 잘 걷지도 못하고 누워서 쉬는 것이 제일 편하다는 아흔 살 할아버지는 세째의 성화에 못이겨 그림을 시작하셨어요. 삐뚤빼뚤 그리다 만 듯한 그림이 그림을 그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는 할아버지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쑥갓 꽃을 그렸어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크레파스로 색칠한 그림입니다. 자신의 첫 번째 그림을 보며 할아버지는 ‘이런 것도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지 원’하고 넋두리처럼 말씀하셨어요. 알록달록 색색깔 크레파스로 칠한 할아버지의 그림에 둘째는 ‘엄마 마음’이라는 제목을 붙여주었어요.

그런 할아버지가 어느 사이 그림 그리기에 마음을 붙이기 시작합니다. 주말농장에서 주워온 자두를 가지고 처음으로 수채화를 그려보고 베란다에 있던 군자란도 그리셨어요. 할아버지는 푸른색이었던 자두가 발그레해 진것이 참 예쁘다 생각했고 자신이 그린 군자란 그림이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셨어요.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그려보면서 새삼 사물이 가진 소소한 의미들이 눈에 들어오신 모양입니다.

쑥갓 꽃을 그렸어

텃밭에서 자란 쑥갓에서 핀 꽃을 차분히 그리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입니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이의 진지하고도 성실한 모습은 나이나 성별을 초월해 누구나 닮아있습니다. 텃밭에서 자란 노오란 쑥갓 꽃을 그리고 있는 할아버지도, 그 곁에서 그림 그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가의 모습도 꼭 닮아 있겠죠?

쑥갓 꽃을 그렸어

쑥갓 꽃을 보며 복잡해 보여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정말 보통 문제가 아니야’라고 말씀하셨던 할아버지가 그린 쑥갓 꽃입니다. 쑥갓에서 이렇게 예쁜 꽃이 피어난다는 사실을 그림책을 보고 처음 알았어요. 올망졸망 노오랗게 피어난 쑥갓 꽃 그림에서 은은한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네요.

이 책에 나온 그림들 중 그림 옆에 서명과 날짜와 제목이 달린 그림들은 실제 유춘하 할아버지가 그린 그림들이랍니다. 아흔의 나이에 ‘처음 시작한 그림’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림 솜씨가 보통이 아니십니다.

보통 문제가 아니었던 쑥갓 꽃을 그리고 난 후부터 할아버지는 그림 그리는 일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대요. 다 그리고 나면 마음이 뿌듯한 것도 알게 되셨구요.

쑥갓 꽃을 그렸어

파주 반구정으로 소풍을 가셨을 때는 평생을 그리움으로 품었을 북쪽 고향을 떠올리면서 임진강과 개성공단으로 전기를 실어 나르는 송전탑도 직접 그려 보셨어요.

포근한 담요 두장을 포개어 한기 가득한 마루를 덮고 그 위에서 그림을 그리기에 열중하고 계신 할아버지. 미술도구를 담아왔을 가방 고리에 달린 노란 리본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숙제처럼 주어진 미션을 하나 하나 완성해 가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림 그리는 재미에 흠뻑 빠진 아버지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딸의 그림 역시 뭉클함을 자아냅니다.

쑥갓 꽃을 그렸어

그림은 할아버지의 멀고 아득했던 과거와 현재를 이어줍니다. 지척에 두고도 갈 수 없는 고향땅, 전쟁 때 헤어진 어머니, 돌쟁이었던 딸내미를 마음 속에 새겨봅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모두 한 편의 소설이고 아련하게 남아있는 먼 기억들 역시 마음속에 아로 새겨진 한 장의 그림 아닐까요?

쑥갓 꽃을 그렸어

그림이라곤 전혀 모른다던 할아버지에게 그림은 할아버지 마음 속에서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금껏 무심코 지나쳐왔었던 작은 사물들이, 생명들이 조금씩 의미를 지니게 되는 과정을 새삼 느끼십니다. 손바닥에 올려놓은 과일을 쪼아 먹은 공작새가 선물처럼 남기고 간 깃털을 그리면서 할아버지는 생각하십니다.

들여다볼수록 오묘하다.

구십의 나이에 딸의 성화에 못이겨 시작한 그림 작업은 ‘성가심’에서 시작해 ‘오묘함’의 이치를 이야기 합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자꾸만 그리게 되는 그림들은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돌아보게 만드는 재미가 됩니다. 할아버지가 남겨놓은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우리의 인생도 때론 성가시고 엄두가 나지 않고 복잡해 보이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오묘한 무엇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버지가 그린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한 사람의 인생과 우리의 삶을 진솔하면서도 따뜻하게 담아낸 그림책 “쑥갓 꽃을 그렸어”입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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