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듣지 않는 바이올린

아무도 듣지 않는 바이올린

아무도 듣지 않는 바이올린(원제 : The Man with the Violin)

글 캐시 스틴슨, 그림 듀산 페트릭, 옮긴이  천미나, 책과콩나무

엄마 손을 잡고 지하철역에 들어선 꼬마 딜런,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발걸음을 재촉하는 엄마와는 달리 딜런의 마음을 이끄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옵니다. 아름다운 선율이 이끄는 곳으로 딜런이 시선을 돌리자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로 뒤범벅인 지하철역 한켠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누군가가 보입니다. 서두르는 엄마에게 연주를 듣고 싶다고 졸라 보지만 엄마에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엄마뿐만 아니라 그 순간 지하철역에 가득찬 사람들 모두 각자의 길을 가기에 바쁠 뿐 어느 누구도 딜란의 귀를 울린 그 선율을 알아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거리의 악사의 사뭇 진지한 연주는 그렇게 일상의 소음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딜런은 지하철역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두드리던 그 선율을 하루종일 잊지 못합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아름다운 연주 생각만 하던 딜런의 귀에 지하철역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은 연주가 라디오 속에서 흘러나옵니다. 엄마도 그제서야 딜런에게만 들리던 바이올린 연주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딜런과 엄마는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연주에 맞춰 함께 춤을 추며 행복에 빠져듭니다.

딜런은 가상의 아이지만 지하철역에서 아무도 들어 주지 않는 가운데 외로이 바이올린을 켜던 연주자는 현실 속에 실존하는 인물입니다. 그것도 이름 없는 거리의 악사가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조슈아 벨”입니다. 그 날 지하철역에서 그가 연주에 사용한 바이올린은 1700년대에 제작된 스트라디바리우스, 무려 30억원에 가까운 가격의 바이올린이었습니다.

그날 그가 연주하던 그 순간에 그의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과연 그냥 지나쳤을까요?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도 30억원짜리 바이올린에는 관심들을 보이지 않았을까요? ^^

아무도 듣지 않는 바이올린
일상에 갇힌 발걸음들 속에서 아이만이 바이올린 소리에 귀기울인다

아마도 작가는 아이의 순수함만이 편견과 고정관념, 차별 따위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바이올린과 그 것을 연주한 사람은 똑같고 다만 연주한 장소만 다를뿐인데도 불구하고 그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연주에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은 채 그 앞을 지나쳐갔습니다. 오직 딜런만이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아름다운 연주에 귀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그 아이만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지 않고 좋은 음악과 연주 그 자체를 받아들일수 있었기때문이 아닐까요? 세계적인 명성도, 고가의 바이올린도 딜런을 자극하지는 못했을겁니다. 그게 어떤건지 감이 오지 않을테니까요. 하지만 아름다운 음악, 순수한 음악 그 자체만큼은 딜런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었던거죠.

선과 색으로 대비시킨 아이들의 순수함

그림책 “아무도 듣지 않는 바이올린”에서 캐릭터는 크게 셋으로 나뉩니다. 첫번째는 순수함을 상징하는 딜런과 바이올린 연주자, 두번째는 일상에 쫓기듯 살아가는 이 시대 우리의 자화상인 듯 한 군중들, 마지막은 그 사이의 경계에 존재하는 딜런의 엄마.

일러스트를 맡은 듀산 페트릭은 선의 형태와 컬러를 이용해서 딜런/바이올린연주자와 군중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바이올린 연주 선율은 부드러운 곡선에 예쁘게 채색이 되어 있고 이와 대조되어 군중들을 감싸고 있는 소음은 흑백 모노톤의 날카로운 직선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딜런과 바이올린 연주자는 알록달록 생기가 넘치는 컬러로 표현된 반면,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은 소리를 표현한것과 마찬가지로 흑백 모노톤을 띄고 있습니다.

재미난 것은 위 그림에서 보듯이 딜런을 중심으로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가까와질수록 색깔은 더욱 생동감이 느껴지고, 반대편 군중들에게 가까와질수록 흑백톤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경계에 있는 엄마는 부분적으로만 컬러로 표현함으로써 아이를 통해 아직은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지만 아이와 같은 시각, 같은 감성으로 사물을 보지 못한 채 아름다운 선율을 듣지 못하는 엄마를 표현한게 아닌가 싶습니다.(참고로 딜런이 지나치거나 만지거나 바라 보는 대상들은 모노톤이었다가 딜런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순간 잠깐 동안 색깔을 되찾는 장면들이 그림책 여기저기에 담겨져 있습니다.)

꼬맹이들 키우는 집과 자녀가 모두 성장한 집의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한살 두살 나이를 더 먹으면서 삶의 무게가 한겹 두겹 켜켜이 늘어가면서 어린시절의 순수함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쯤 되돌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소중한 것들에 무심해져가게 됩니다. 내 아이와의 즐거운 한때, 하루의 시작을 함께 하는 그윽한 커피향기, 언제나 한결같은 지지를 아끼지 않는 우리 부모님, 오늘도 변함 없이 나의 옆자리를 지키는 동료들… 이들이 없이 나의 하루가 온전할 수 있을까요? 굳이 30억원짜리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엔 고마워해야 할 대상들이,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이들이 우리가 깨닫건 깨닫지 못하건 상관 없이 우리 삶을 하루하루 채워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아무런 편견 없이, 어떠한 계산도 없이 활짝 웃어주는 아이의 순수함을 늘 간직하고 살아가야겠습니다.

아이의 감성으로 아이와 소통합시다!

무엇보다도 언제나 변함 없이 한결같은 순수함으로 가득한 눈망울로 엄마 아빠를 바라봐주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에 더욱 귀기울이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와 두눈을 마주하고, 아이의 감성으로 아이와 함께 해야겠습니다.


또 다른 음악 그림책 보기


조슈아 벨(Joshua Bell, 1967년생)

5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그는  10대 초반에 카네기 홀에 설 정도로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피플지가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도 이름을 올렸던 조슈아 벨은 우리나이로 올해 48세로 가장 미국적인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우며 현재 바이올린 연주의 거장 반열에 올라 있다고 하는군요. 우리나라에서도 두차례나 독주회를 가졌었습니다(궁금해서 찾아 보니 2007년 예술의 전당에서 했던 독주회의 R석 티켓값은 8만원이었습니다 ^^)

조슈아 벨에 대한 상세 프로필(위키피디아 영문)

워싱턴포스트와 조슈아 벨이 함께 한 거리의 악사 실험

2007년 1월 워싱턴포스트와 조슈아 벨이 함께 진행했던 실험이 오늘 소개한 그림책 “아무도 듣지 않는 바이올린”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가 실험 결과를 보도한 기사의 헤드라인이 인상적입니다.

위대한 국민연주자는 과연 워싱턴D.C.의 러시아워의 안개를 가를 수 있을까?

2007년 1월 12일 금요일 아침 7시 51분, 조슈아 벨은 출근시간으로 한창 인파가 몰리는 시간에 워싱턴의 랑팡 플라자역에서 43분간 6곡의 레퍼토리를 연주했습니다. 그 앞을 지나쳐간 사람들은 모두 1097명, 잠깐이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그의 연주를 감상한 사람은 겨우 7명, 그리고 그가 번 돈은 고작 32달러였다고 하는군요. 이 날 그가 연주했던 바이올린은 1713년에 제작된 것으로 우연히 연주를 할 기회가 생겼던 조슈아 벨이 그 음색에 반해 무려 39억원이나 주고 경매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날 조슈아 벨은 과연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요? 이 실험이 그를 겸손하게 만들어서 더욱 더 훌륭한 연주자로, 거장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은 아닐까요?(물론 이 실험 당시에 이미 그는 거장이었다고 합니다 ^^)


Mr. 고릴라

Mr.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덕분에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앤서니 브라운은 아닙니다. ^^ 이제 곧 여섯 살이 될 딸아이와 막 한 돌 지난 아들놈을 둔 만으로 30대 아빠입니다 ^^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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