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의 소원

두더지의 소원

글/그림 김상근 | 사계절
(발행 : 2017/01/26)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 2017 한국출판문화상 후보작


“두더지의 소원”은 “두더지의 고민”, “가방 안에 든 게 뭐야?” 단 두 권의 그림책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김상근 작가의 신작입니다. 2년 만에 다시 만난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두더지에 대한 반가움과 작품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그림책을 펼쳐봅니다.

면지 가득 새하얀 눈이 소복이 내렸습니다. 그 하얀 눈밭을 누군가 홀로 걸어간 모양이에요. 함께 하는 이 없이 길게 한 줄로 찍힌 작은 발자국이 왠지 조금 쓸쓸해 보이네요. 작은 발자국의 주인공은 두더지입니다.

두더지의 소원

첫눈이 내린 날 혼자 집에 가던 두더지는 작고 하얀 눈덩이를 만났어요. 아무도 없는 눈길 위에 완성되지 못한 채 놓여있는 작고 하얀 눈덩이가 꼭 눈길 위를 홀로 걸어가던 두더지 자신처럼 쓸쓸해 보였던 모양입니다. 두더지는 눈덩이를 굴리면서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어요.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도 없고 동네도 낯설다고요. 눈덩이는 조용히 두더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어요.

두더지의 소원

눈덩이와 함께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지만 버스 운전기사인 곰아저씨는 눈덩이를 버스에 태워 줄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친구? 눈은 눈일 뿐이란다. 결국엔 사라져 버리지.”

친구를 두고 갈 수 없는 두더지는 눈덩이를 깎아 곰처럼 만들어 버스를 기다렸어요. 하지만 다음번에 도착한 여우 아저씨 역시 커다란 눈덩이를 버스에 태울 수 없다면서 그냥 가버립니다.

두더지의 소원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두더지는 눈덩이를 곰으로, 곰을 좀 더 작고 정교한 모습으로 바꾸어 갑니다. 어른들에게 퇴짜 맞은 눈사람 친구를 세심하게 다듬어 가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숲 속에는 어느덧 밤이 찾아왔어요.

두더지의 소원

“할머니가 그랬는데, 별똥별은 소원을 들어주는 별이래.
별똥별이 내 소원도 꼭 들어줄 거야.”

친구와 무사히 버스에 타는 것, 눈사람 친구가 진짜 친구가 되는 것, 두더지가 별똥별에게 빈 소원은 무엇이었을까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떨어지는 별똥별을 눈사람 친구도 조용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신의 모자까지 내어주며 눈사람 친구의 마음을 따뜻하게 다독여 주는 두더지, 아마도 두더지는 낯선 이곳에서 누군가에게 이런 따뜻한 관심을 받고 싶었을 거예요.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알기에 두더지는 눈사람 친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아낌없이 베풀어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두더지의 소원

얼마 뒤 사슴 아저씨의 버스가 왔어요.

“이런, 너희들 꽁꽁 얼었구나. 감기 들라, 어서 타렴.”

드디어 눈사람 친구와 두더지를 ‘너희들’로 불러주는 어른이 나타났습니다. 두더지와 눈사람 친구는 사슴 아저씨의 배려 속에 아늑하고 따뜻한 버스에 올라탔어요. 하얀 눈이 끝없이 내리는 겨울 밤, 두더지와 눈사람 친구, 그리고 승객들을 실은 버스가 노란 불빛을 켜고 하얀 눈밭을 가르며 달려갑니다.

두더지의 소원

따뜻한 버스 안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두더지가 눈을 떴을 때 버스에는 두더지 뿐이었어요. 눈사람 친구가 있던 자리에는 빨간 두더지의 모자만 남아있었어요. 두더지는 버스에서 내리고도 한참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합니다. 혹시나 친구가 저기 멀리서 오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에 자꾸만 뒤를 돌아 보았어요.

누군가와 함께 맞는 눈은 겨울 추위 속에서도 포근하고 따뜻해 보이지만 혼자 맞는 눈은 참 쓸쓸해 보입니다. 눈 속에 혼자 남은 작은 두더지의 뒷모습이 더욱 처량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죠.

두더지의 소원

꽁꽁 언 두더지를 따뜻하게 안아주신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두더지의 이야기를 들어주셨어요. 얼어붙은 마음을 가만가만 조심스럽게 어루만져 주시는 할머니의 깊고 따스한 마음. 다음날 아침 두더지는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깨어났어요.

“얘야, 밖에 좀 나가 보렴.
멋진 손님이 널 찾아온 것 같구나.”

두더지는 해맑은 얼굴로 길고 좁은 땅속 길을 힘차게 거슬러 올라가갑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두더지를 찾아온 멋진 손님이 누구인지 짐작하셨나요? ^^

밖에는 여전히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어요.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향해 신나게 달려가는 두더지 옆으로 나란히 희미한 눈 발자국이 나있습니다. 이 발자국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별똥별 소원이 이루어 진 것일까요?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처럼 순백의 첫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어린 두더지의 이야기 “두더지의 소원”,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해주고 지켜주고 가만 어루만져 주는 어른들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스러운 두더지의 마음이 잇닿아 있어 마음이 더욱 따뜻해지는 그림책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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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주
엄윤주
2017/06/03 17:00

김상근작가님은 책처럼 너무나 순수하시고, 일일이 그림으로 사인해주시는 친절하셨어요. 작가초청을 너무 기다리고 갔었는데 기대를 훌륭히 채워주셔서 행복한 시간들였어요. 두더지의 고민,소원도 제게는 마음한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책이네요.

가온빛지기
Admin
2017/06/04 20:53
답글 to  엄윤주

엄윤주 님 말씀처럼 김상근 작가님도, 작품들도 모두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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