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은 너무해

펭귄은 너무해

(원제 : Penguin Problems)
조리 존 | 그림 레인 스미스 | 옮김 김경연 | 미디어창비
(발행 : 2017/02/15)


커다랗게 뜬 동그란 눈, 동글동글한 까만 머리, 조그맣고 앙증맞은 부리… 판화로 찍어낸 듯 똑같이 생긴 펭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마리 펭귄만이 색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펭귄들 사이에서 살짝 고개를 돌려 옆모습을 보이고 있는 펭귄 한 마리가 바로 오늘 이야기 속 주인공이에요. 매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의문투성이, 불만투성이인 투덜이 펭귄에게 오늘 또 하루가 밝아왔어요.

펭귄은 너무해

남극의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얀 눈밭 위에 권태로운 표정으로 누워있는 펭귄, 일어나는 순간부터 도통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에요. 벌써 일어날 시간인 것도, 남극의 추위 때문에 부리가 꽁꽁 얼어버린 것도, 동료 펭귄들이 떠드는 소리도, 간밤에 내린 눈도, 눈부신 햇살도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아요. 쉽게 잡히지 않는 물고기(라고 하기엔 너무 건성으로 물고기 사냥에 나섰죠), 짠 내 나는 바닷물(은 당연한 거고요)까지 어쩜 펭귄 마음에 드는 것이라곤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남극의 아침입니다.

펭귄은 너무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새까만 바닷속, 날카로운 이빨과 커다란 덩치로 그려진 펭귄의 천적들까지 먹이를 구하러 간 바다에서 자칫 먹이가 될 수도 있을 만큼 살벌한 생존의 현장이 춥고 두려운 펭귄의 마음을 더욱 부각시켜 보여주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장되게 그려진 상어나 범고래, 바다표범의 모습이 익살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펭귄은 이런 어둡고 무시무시한 바다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펭귄은 너무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는 펭귄 자신도 포함되어 있어요. 뒤뚱뒤뚱 바보처럼 걷는 것도, 다른 새들처럼 날지도 못하는 것도, 다들 똑같이 생긴 것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투덜투덜 투덜대면서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고 의심하는 펭귄의 모습이 철학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 바닷물은 왜 이렇게 짠 거야?
그런데 나는 왜 자꾸 가라앉지?
난 왜 맨날 뒤뚱뒤뚱 걷는 거야?
나도 날 수 있으면 좋겠다.
왜 다들 똑같이 생겼지?

주변의 모든 것에서 시작해 자기 자신의 존재 의미까지 뒤흔드는 질문들을 쏟아내던 펭귄이 너무 힘들다고 절규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멀리서 펭귄을 지켜보던 바다코끼리가 다가와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펭귄은 너무해

오늘 좀 힘들었구나.
하지만 펭귄아, 주위를 둘러봐.
바다에 비친 산이 그림처럼 아름답지 않니?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파란 하늘이 보이지 않니?
네 등을 어루만져 주는 따사로운 햇볕이 느껴지지 않니?
너를 좋아하는 친구 펭귄들이 얼마나 많니?

맞아. 어떨 땐 조금 힘들기도 해.
우리 모두 힘든 순간들이 있단다.
바다코끼리도 북극곰도, 고래도 펭귄도 모두 그래.
하지만 펭귄아, 난 내 삶을 다른 누구와도 바꾸지 않을 거야.
아마 너도 그럴 거야. 너도 어느 누구와도 바꾸도 싶지 않은
너만의 삶이 있다는 걸 깨달을 테니까.

힘들고 우울하고 자꾸만 의기소침해지는 날 펭귄 대신 내 이름을 넣어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어지는 구절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귀여운 투덜이 펭귄도 이렇게 생각하겠죠?

펭귄은 너무해

하지만 바다코끼리의 이야기를 들은 펭귄이 한 말은 ‘바다코끼리는 펭귄을 이해 못해!’였어요. 투덜이 펭귄답게 말이죠. ^^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바다코끼리의 말을 듣고 다시 돌아본 세상은 어쩐지 아까와는 달라 보였거든요. 산도 바다도 하늘도 마음에 들었어요. 어쩌면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에 빠진 펭귄의 표정이 아까와 사뭇 달라 보여요. 마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후반부에 변화된 아이 표정 같지 않나요?

하지만 이대로 끝이 아니에요. 하얗게 눈 덮인 언덕을 올라 펑펑 눈 내리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펭귄이 한 마지막 말이 참 재미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그림책을 통해 확인해 보세요. 음, 역시 펭귄은 너무해! 너~~무해! ^^

세상이 못마땅한 펭귄의 불평을 듣는 것도,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법을 알려주는 바다코끼리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겁게 행복하게 느껴지는 그림책 “펭귄은 너무해”, 매력 넘치는 펭귄을 주인공으로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조리 존의 재미난 이야기에 단순한 선과 최소한의 색상만으로 꽁꽁 얼어붙은 남극의 추위까지 담아낸 레인 스미스의 그림들이 매력적인 그림책입니다.

그나저나 여러 번 곱씹어 보면 볼수록 바다코끼리가 건넨 ‘오늘 좀 힘들었구나!’ 란 말이 참 좋네요. 지치고 힘들어 보이는 이에게 ‘오늘 좀 힘들었구나!’  토닥토닥……  가만히 건네주고 싶은 말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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