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싼 게 아니야!

내가 싼 게 아니야!
책표지 : Daum 책
내가 싼 게 아니야!

글/그림 조미자 | 한솔수북
(발행 : 2017/03/15)


흠뻑 젖은 채 간신히 노란 기구(?)에 올라탄 아이의 표정에서 여러 가지 마음이 보입니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구요. 눈에 띄는 빨간색으로 쓴 “내가 싼 게 아니야!”라는 그림책 제목이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데요. 들키고 싶지 않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이의 마음이 그림책 제목을 통해 절박한 외침으로 들려옵니다.

내가 싼 게 아니야!

엄마가 불장난하지 말라고 했지만 지난밤 숲 속이 너무 깜깜하고 추워 모닥불을 피우고 말았어요. 처음엔 엄마가 한 말을 떠올리며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이내 아이와 친구들은 장작을 더 많이 넣으며 모닥불을 점점 더 키웠어요.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을 바라보면서 한참 신나있는데 그만 불씨가 친구 붉은발톱의 목도리에 옮겨붙었죠. 위기일발의 순간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는 아주 이상한 비가 쏴아아아! 시원하게 쏟아졌어요.

그리고……

내가 싼 게 아니야!

아이의 이불과 바지가 그 비에 흠뻑 젖어 버렸어요. 흠뻑 젖은 옷과 이불을 걷어가는 엄마를 향해 아이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엄마!
이건 내가 싼 게 아니야.”

“그래서 바지가 젖었구나.”

그렇죠? 옷과 이불을 적신 것은 분명 하늘에서 갑자기 쏟아진 이상한 비, 친구 목도리에 옮겨붙은 불을 꺼준 고마운 비입니다.^^ 자다 일어나 떡지고 붕 뜬 아이의 머리가 참 귀엽군요. 상황 설명을 하면서 엄마를 향해 짓는 천진난만한 웃음도 얼마나 이쁜지요. 그리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귀 기울여 경청하는 엄마의 ‘그랬구나’ 화법은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줍니다.

내가 싼 게 아니야!

꿈인지 생시일지 모르는 아이의 모험은 계속됩니다. 한 번은 메마른 사막을 걷다 아주 큰 절벽에 도착했어요. 이상한 절벽에 잔뜩 박혀있는 마개를 뽑으니 구멍마다 시원한 물이 쏟아졌어요. 목이 엄청 마른 붉은발톱이 제일 큰 마개를 뽑자 커다란 구멍에서 ‘쏴아아아!’ 하는 커다란 소리를 내며 엄청난 물줄기가 쏟아졌어요.

그리고…

역시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옷과 이불이 또 흠뻑 젖고 말았어요. 빨래를 널면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이렇게 말했어요.

“덕분에 나무들이 좋았겠네.”

내가 싼 게 아니라는 아이의 말을 완벽하게 믿어주고 인정해 주는 초긍정 마인드의 엄마입니다.^^

내가 싼 게 아니야!

아이의 실수는 반복되지만 엄마는 다그치거나 혼내지 않고 차분히 기다려주었어요.

어느 날 다시 놀러 간 숲은 그때와 달리 무섭지도 춥지도 않았어요. 푸른 초록빛으로 가득한 숲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의 표정도 편안해 보입니다. 혼자 무사히 숲을 빠져나온 아이가 그전에 다이빙을 했던 수영장을 지나갈 무렵 갑자기 오줌이 마렵기 시작했어요. 놀이에만 몰두하느라 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몰랐던 아이가 처음으로 꿈속에서 자신의 신체적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한 순간입니다.

내가 싼 게 아니야!

하지만 급하게 찾은 화장실은 만원이었고 어디선가 슬그머니 다시 등장한 친구들은 아이의 다급함을 외면하고 있어요. 이리저리 화장실을 찾아 절박하게 뛰어다니는 아이, 그 표정이 너무나 생생합니다. 화장실을 찾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아이 근처에서 친구들이 천연덕스럽게 수돗물을 틀어놓고 한쪽 끝을 막으며 신나게 장난치며 놀고 있어요. 물로 가득 찬 고무호스가 팽팽하게 부풀어 금방이라도 펑!하고 터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순간 엄마가 나타나 물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

“엄마, 걱정하지 마!
설마 이불에 오줌이라도 쌌을까 봐?”

이제껏 젖은 옷과 이불을 내밀며 내가 싼 게 아니라 주장했던 아이가 오늘은 ‘설마 이불에 오줌이라도 쌌을까 봐?’하고 엄마에게 자신만만하게 큰소리쳤는데 글쎄요, 정말 아이는 오늘 밤을 무사히 잘 넘길 수 있을까요? ^^

불놀이, 물놀이, 다이빙 놀이……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읽다 보면 어쩐지 어린 시절 꿈속에서 본 것 같은 정경들이 펼쳐집니다. 스스로  변기에 앉은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따뜻하게 격려해 주시고 가르쳐 주셨던 어른들이 그 시절 우리에게도 있었겠죠. 아이들이 하나하나 배우며 자라는 것을 볼 때면 언제 크나 싶기도 하지만 눈 몇 번 깜빡하고 나면 훌쩍 자라있는 것을 어느 날 문득 알게 됩니다. 우리가 그랬듯이요.^^

반복되면서 이어지는 간결하고 재미난 이야기 속에 조미자 작가의 슥슥 그려낸듯한 그림이 시원시원하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장 자크 상뻬의 편안하면서도 익살스럽고 따뜻한 화풍과 닮아있어요.

상상과 현실을 오가며 조금씩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과 그 곁에서 아이를 지켜주고 기다려주는 엄마의 모습을 따뜻하게 그려낸 그림책 “내가 싼 게 아니야!”, 시대가 아무리 많이 변해도 아이를 키우는 데 사랑보다 더 큰 가치가 있을까요? 사랑 가득한 ‘그래, 그랬구나~’ 그 두 마디면 충분합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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