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사탕

알사탕

글/그림 백희나 | 책읽는곰
(발행 : 2017/03/25)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 2017 한국출판문화상 후보작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분홍색 알사탕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아이 표정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알사탕에 쏠린 커다란 눈, 동그랗게 확장된 콧구멍, 상기된 두 뺨, 슬쩍 튀어나온 뻐드렁니에 찰랑찰랑 바가지 머리를 한 아이 얼굴에는 처음 본 물건을 만난 양 조심스러워 보이면서도 호기심이 어려있어요. 알사탕을 들여다보는 아이를 바라보는 우리 역시 호기심이 모락모락 솟아납니다. 무슨 이야기일까? 어떤 사연일까? 하고 말이죠.

놀이터에서 혼자 구슬치기를 하고 놀던 아이 동동의 독백이 이어집니다.

나는 혼자 논다.

혼자 노는 것도 나쁘지 않다.
친구들은 구슬치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만날 자기들끼리만 논다.
그래서 그냥 혼자 놀기로 했다.

알사탕

친구들과 동동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축 처진 강아지를 끌고 가는 동동이의 어깨도 축 처져있어요. 분위기 때문인지 놀이터의 가을 햇살이 유독 쓸쓸해 보입니다. 축구 공을 가지고 놀고 있는 세 아이와 동동이는 그리 멀리 있지 않은데도 유독 그 거리가 멀어 보여요. ‘새 구슬이 필요하다’는 동동이의 말은 왠지 ‘새 친구가 필요해!’ 라는 말로 들립니다. 친구도 구슬을 사는 것처럼 쉽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알사탕

새 구슬을 사러 문방구에 갔던 동동이는 구슬 대신 색색깔 크기도 모양도 가지가지인 알사탕 한 봉지를 사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알사탕을 먹는 순간 아주 이상한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박하향이 너무 진해 귀가 뻥 뚫렸던 체크무늬 알사탕을 입에 넣자 동동이의 귀에 동동이네 집 거실 소파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리모컨이 옆구리에 껴서 너무 결리고 아프다는 말, 숨을 쉴 수 없으니 아빠 보고 소파에 앉아 방귀 좀 그만 뀌라는 말(너무나 현실적인 말에 웃음이 풋! 하고 터져 나왔네요.^^)… 동동이 입속의 체크무늬 사탕이 녹아 사라질 때까지 소파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알사탕

얼룩무늬 알사탕 하나를 한참을 들여다보다 입에 넣자 강아지 구슬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8년이나 같이 살았지만 이제야 강아지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된 동동이는 구슬이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기울입니다. 목줄을 풀고 공손하게 마주 앉아 손을 꼭 잡은 구슬이와 동동이, 못마땅한 듯 줄에 매여 동동이에게 끌려다니던 이전의 모습과는 달라 보입니다. 구슬이는 흐뭇하게 눈웃음 짓고 있고 동동이는 왜 이제껏 구슬이 마음을 몰라줬을까 하고 미안해 하는 표정이에요.

알사탕

숙제했냐, 장난감 다 치워라, 이게 치운 거냐? 빨리 정리하고 숙제해라, 구슬이 산책 시켰냐…. 자기 전에 뭐 먹으면 안 된다. 양치 다시 해라, 조끼 입고 자라, 얼른 자라, 잔소리쟁이 아빠가 오셨을 때는 복수하는 마음으로 사탕을 먹으면서 자기로 했어요. 동동이 마음처럼 까칠한 사탕을 하나 골라 입에 넣는 순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

아빠 마음속에서 흘러나오는 수없이 많은 ‘사랑해’란 말이 동동이에게 들려왔어요. 아빠 마음의 소리를 듣는 순간 복수의 의지는 온데 간 데 사라지고 동동이는 슬며시 아빠에게 다가가 백허그를 하며 수줍게 고백했어요.

“나도….”

알사탕이 가져다준 달콤함 때문일까요? 간질간질 야들야들 동동이의 마음이 녹아갑니다.

알사탕

분홍색 사탕 속에는 풍선껌이 들어있었어요. 후후 불었더니 휙 날아간 풍선은 한참 후 되돌아와서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려주었어요.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곳에 계신 할머니, 동동이는 언제든 할머니와 이야기할 수 있도록 풍선껌을 잘 뭉쳐서 식탁 밑에 붙여 두었어요.

이제 알사탕은 딱 두 알 남았습니다. 노란색과 주황색이 섞인 오묘한 빛깔의 사탕 한 알, 투명하고 조그만 사탕 한 알.

알사탕

노란색과 주황색이 섞인 오묘한 빛깔을 가진 사탕의 소리는 밖에서 들려왔어요. 소리를 따라간 동동이가 노랗고 빨간 단풍나무 아래 서있습니다. 가을 햇살 사이로 ‘안녕’하고 인사하는 소리가 나뭇잎처럼 쏟아져 내리네요. 알사탕의 달콤한 속삭임을 가만히 듣고 있던 동동이, 잠시 후 소리가 그치자 저만치 한 아이가 서있었어요. 동동이는 눈길을 돌려 그 아이를 바라봅니다.

동동이 손에는 마지막 투명 사탕이 남아있었어요. 아무리 빨아도 조용한 투명 사탕, 동동이는 먼저 말해 버리기로 결심했어요.

“나랑 같이 놀래?”

마지막 알사탕을 물고 동동이가 먼저 꺼낸 말입니다.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도, 자신이 먼저 소리내 누군가에게 다가갈 줄도 몰랐던 동동이가 성큼 앞으로 나섰습니다. 동동이 앞에 펼쳐진 무대가 너무나도 환하게 빛이납니다.

비비고 눕고 깔고 앉고 함께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소파, 8년이나 같이 살았지만 한 번도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던 늙은 개 구슬이, 잔소리만 한다고 생각했던 유일한 가족 아빠, 이제는 곁에 없는 그리운 할머니까지 그들을 닮은 무늬를 가진 알사탕을 먹는 동안 동동이는 자기 주변의 소리에 귀기울이게 되고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 고립을 깨고 세상 밖으로 용기 있게 성큼 나섭니다. 그런 동동이를 보면서 그림책을 읽는 모두가 공감과 위안을 얻습니다.

외톨이, 친구 문제, 소통이라는 다소 묵직한 주제를 품고 있지만 알사탕이라는 달콤한 소재로 풀어가는 이야기가 유쾌하고 따뜻하고 깊고 아름답게 다가오는 그림책 “알사탕”,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워 시작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은 그림책입니다.


※ 함께 읽어 보세요 : “알사탕”의 프리퀄 “나는 개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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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2017/08/01 12:05

늘 좋은 글..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오늘은 그 글을 제 블로그에 살포시 데려갑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
제가 그림책 강의할 때마다 가온빛 열심히 소개합니다.. ^^

가온빛지기
Admin
2017/08/01 14:56
답글 to  김혜경

반갑습니다~ 김혜경님!
그림책 강의하시나보네요. 좋은 그림책 많이많이 퍼뜨려 주세요! ^^
덥지만 파이팅하세요!!! 🙂

chrombook
chrombook
2022/04/13 08:51

마침 학교에서 자료 조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것 덕분에 자료조사를 빠르게 할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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