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손을 빌려드립니다
고양이 손을 빌려 드립니다

김채완 | 그림 조원희 | 웅진주니어
(발행 : 2017/05/20)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일본 속담 중에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아주 바쁜 상황에서 쓰곤 한다는데요. 동그랗고 통통한 고양이 손을 빌려 무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얼마나 바쁘고 급하면 그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림책 속 엄마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속표지 그림 속 엄마는 가득 찬 장바구니를 두 개나 들고 헐레벌떡 달려가고 있어요. 식사 준비가 급한 것인지, 밀린 집안일이 생각나서인지 빨간 단풍잎이 흩날리는 길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달려가고 있어요.

고양이 손을 빌려 드립니다

집안일에 치여 늘 바쁜 엄마는 한가하게 시간을 때우고 있는 고양이 노랭이를 볼 때면 자신도 고양이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하곤 했어요.

바닥에 이리저리 널브러진 빨래거리며 돌리다 만 청소기, 밀려 쌓인 설거지 거리들, 빨간 고무장갑을 낀 우울한 엄마의 표정과 달리 노랑 고양이는 자신의 자리에서 평온하게 낮잠 삼매경에 빠져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이 자신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인 듯 말이죠.

어느 날, 집안일을 바쁘게 하던 엄마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고 무심코 한탄하듯이 말했을 때 노랭이가 다가와 엄마 어깨에 앞발을 척 올려놓으며 이렇게 말했어요.

“제 손이라도 빌려 드릴까요?”

고양이 손을 빌려 드립니다

그날부터 엄마를 대신해 노랭이가 집안일을 시작했어요. 노랭이가 도와준 덕분에 엄마는 오랜만에 산책을 나갈 수 있었어요. 엄마는 고마운 마음에 노랭이에게 싱싱한 고등어를 선물로 주었고, 싱싱한 고등어 맛에 반한 노랭이는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도와주는 댓가로 고등어를 받기로 했어요. 노랭이가 제시한 합리적인 서비스 이용료(고등어로 계산한)도 재미있지만 주의사항에 ‘저녁 8시 이후에는 쉽니다’라고 못 박은 점도 눈에 띕니다.

처음엔 노랭이는 집안일에 서툴렀지만 점차 능숙해졌고 그 덕분에 엄마는 점점 여유롭게 살 수 있었어요. 낮잠을 자고 책을 읽고 산책도 할 수 있었죠. 구석구석 척척 집안일을 하는 고양이, 정말 사랑스럽죠? 노랭이 덕분에 엄마의 손에는 빨간 고무장갑 대신 빨간 단풍잎이 들려있습니다.

고양이 손을 빌려 드립니다

그런데 얼마 뒤부터 점점 알 수 없는 일이 시작되었어요. 엄마 몸에서 털이 조금씩 나기 시작하더니 온몸이 털로 뒤덮였고 시간이 지나자 꼬리까지 생겨났어요. 하지만 아빠는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죠. 아빠는 너무 바빠서 아내를 제대로 바라볼 시간조차 없었으니까요.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지만 아빠와 엄마는 문제점을 바로 보지 못한 채 서로 다른 방향만 바라보고 있어요. 오직 노랭이만 이 상황을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엄마의 정성으로 온기 가득했던 집은 이제 점점 어둡고 푸르스름하고 냉랭한 빛깔로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고양이 손을 빌려 드립니다

어느 날 아빠가 집에 돌아와보니 아내는 온데간데 없고 뚱뚱한 고양이 한 마리만 보였어요.

“여보, 어디 있어요?”

그러자 뚱뚱한 고양이가 대답했어요.

“나, 여기 있잖아요.”

엄마와 아빠가 드디어 서로를 마주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 후였어요. 짙푸른 어둠 속에서 거대한 고양이가 내는 아내의 목소리에 아빠는 얼마나 놀랐을까요? 다음 날, 일을 하러 가는 대신 하루 종일 무언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던 아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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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부터 일찍 집에 돌아와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좋아하는 술도 조금만 마시고 지극정성으로 엄마를 돌보아주었어요. 아빠의 정성으로 집안에 다시 따스한 온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의 모습도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구요. 털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고 곧 엄마 손이 돌아왔어요. 엉덩이 꼬리가 사라졌고 그리고…

고양이 손을 빌려드립니다

아빠가 사랑하던 엄마의 모습으로 돌아왔어요. 돌아온 엄마를 마주 보고 꼭 안아주고 있는 아빠, 그들 주변이 찬란한 노랑색으로 환하게 물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꼭 안고 있는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엄마는 무슨 생각에 빠져 있을까요? 늘 곁에 있기에 소중한 줄 모르고 무심하기만 했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고 있지 않을까요? 이제라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너무 늦지않아 얼마나 다행인지요.

엄마가 돌아오자 노랭이는 예의 평범한 고양이로 돌아갔어요. 하루 종일 잠만 자고, 나른하게 방석에 누워있는 그런 고양이로요. 엄마와 아빠 역시 예전의 그 부부로 돌아갔어요. 나란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예전의 부부 사이로요. 사랑이 넘치는 두 사람 마음처럼 집안이 알록달록 어여쁜 색깔로 가득 차 있습니다.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 사랑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만드는 “고양이 손을 빌려 드립니다”는 무언가 마음이 뭉클해지는 느낌을 가진 그림책입니다. 바쁜 엄마, 바쁜 아빠와 사는 한가한 고양이 노랭이가 보여준 세계는 어쩌면 환상의 세계가 아닌 진실의 세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랑은 참 많은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또 많은 것을 불가능하게도 만드는 요상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늘 달콤하고 영원할 줄만 알았던 사랑에는 참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 함께 읽어 보세요  돼지책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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