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좀 그냥 내버려 둬!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원제 : Leave Me Alone! )
글/그림 베라 브로스골 | 옮김 김서정 | 아이세움
(발행 : 2017/07/25)

※ 2017년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한 손에는 털실, 한 손에는 대바늘을 든 할머니를 가운데 두고 아이와 곰과 양과 외계인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그런데 할머니는 그런 관심이 몹시 못마땅한 모양입니다. “날 좀 내버려 둬!”라고 절규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죠. 보통 그림책에서 소개되는 따뜻하고 인자한 할머니의 모습과는 아주 다른 이미지를 가진 할머니인데요. 할머니가 왜 이렇게 예민해져 있는지 그 사연 한 번 들어 볼까요?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옛날에 어떤 할머니가 살았어요. 사는 마을도 작고 사는 집도 작았지만 식구는 아주 많은, 그래서 혼자만의 공간은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그런 할머니가 살았어요. 쿠당탕탕 우르르 쾅쾅쾅!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그럭저럭 이 작고 복잡한 집에서 즐겁게 보내고 있는데 오직 한 사람 할머니만 굉장히 불행해 보이는군요. 할머니 표정이 할머니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아이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할머니 주변에 모여 웃고 떠들고 장난을 치느라 난리도 아닙니다.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뜨개질 거리가 엄청 많아졌지만 할머니는 도무지 일을 할 수 없었어요. 손주들이 뜨개질 실로 무궁무진한 놀이들을 생각해냈기 때문에요. 실을 공처럼 막대기로 치고, 먹어보고, 실을 풀며 따라다니고… 당장에 의식주 문제가 시급한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매일매일이 즐겁고 행복할 뿐입니다. 근심 걱정 한가득인 할머니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표정들이죠? 겨울이 코앞인데… 뜨개질 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침대를 단정하게 정리하고 마루를 쓸고 차 한 잔을 따라 마시고(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손주들은 할머니 곁에서 장난을 치면서 즐거워하고 있고, 할머니는 잔뜩 화가 난 표정을 하면서도 차분히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마치고 있습니다.)뜨개질 거리를 보따리에 가득 담아 작은 마을을 떠나면서 동네가 떠나갈 듯 소리쳤어요.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하다 말고 뭐래? 뭔 일이래? 하는 표정으로 떠나는 할머니를 그저 멀뚱히 서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할머니가 찾아간 곳은 깊고 어두운 숲속, 불을 피우고 자리를 잡고 앉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막 뜨개질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곰들이 할머니의 뜨개질을 방해합니다. 날 좀 그냥 내버려 두라고 소리쳤지만 곰들이 사람 말귀를 알아들을 리가 있나요? 할머니가 다시 짐을 꾸려 길을 떠날 수밖에……. 뜨개질 실을 보따리에 싸서 걸머지고 할머니는 다른 장소를 찾아 떠나갔어요. 할머니를 그냥 좀 내버려 둘 그런 장소를 찾아…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혼자 차분히 뜨개질을 하고픈 것뿐인데, 할머니는 높고 높은 산 아늑한 동굴 속에서 뜨개질을 할 때는 실뭉치를 먹어치우는 산양들 때문에 떠나야 했고요. 걷고 걸어 달까지 찾아갔을 때는 지구인을 처음 본 초록색 달 사람들 때문에 또 자리를 옮겨야 했죠. 어딜 가나 손주들과 다를 바 없는 호기심쟁이들로 가득한 세상, 할머니는 성가시게 구는 이들에게 똑같은 말을 하면서 자리를 뜹니다.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결국 텅 빈 웜홀 안에 들어가서야 만족스럽게 뜨개질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할머니가 가진 털실로 스웨터 서른 벌을 뜨면서 모처럼 미소 짓는 할머니, 할머니는 서른 벌의 스웨터를 완성하고서야 문득 깨닫습니다.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할머니는 스웨터를 자루에 챙겨 넣고 웜홀 안을 깨끗하게 쓸고 차를 한 잔 따라 마신 후(작은 집을 떠날 때처럼)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할머니가 미련 없이 떠났던 작은 집은 그사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의외로 정적이 감도는 집, 너무나 말끔한 상태인데요. 할머니가 늘 앉아있던 흔들의자만 할머니의 부재를 말해주고 있을 뿐! 할머니가 떠난 사이 손주들이 좀 점잖아진 걸까요? 좀 변했을까요?

그럴리가요… 아이들은 아이들인걸요.^^ 할머니의 컴백홈 소식을 듣고 우다다다 달려온 손주들에게 웜홀까지 찾아가 한올 한올 정성스럽게 뜬 스웨터 서른 벌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할머니 얼굴에 미소가 번져 납니다. 할머니 얼굴에 깃든 미소가 ‘역시 내 집!’, ‘역시 내 새끼들!’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할머니를 바라보는 아이들 표정은 여전히 밝고 명랑하기 그지없습니다.

“날 좀 그냥 내버려 둬!”“아냐의 유령”(베라 브로스골 / 에프 / 2019)이라는 그래픽 노블로 국내에 소개되었던 베라 브로스골의 첫 그림책으로 2017년 칼데콧 명예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작은 집에서 웜홀까지 장소를 옮겨가며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고 싶어 하는 할머니, 그 마음 한가운데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긴 “날 좀 내버려 둬!”, 그림책 제목이 여름 방학 동안 수많은 엄마들의 외침처럼 들려 더욱 웃음이 났습니다.

함께 하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가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덕분에 함께하는 이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면 말이에요.^^


칼데콧 수상작 보기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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