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이 먹고 싶으면

수박이 먹고 싶으면

글 김장성 | 그림 유리 | 이야기꽃
(발행 : 2017/08/01)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어린 강아지가 초록 열매를 보고 있습니다. 강아지처럼 조그만 열매는 그림책 제목으로 추측컨대 분명 이제 막 알이 맺히기 시작한 수박이겠죠? 이제껏 시장에서 까만 줄무늬가 선명한 커다란 수박만 봤지 자그마하게 열리기 시작한 수박 열매는 처음 봅니다. 수박 꽃이 호박꽃처럼 노랗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수박이 좋아서 여름이 좋다고 말할 줄만 알았지 수박에 관해서는 어린 강아지만큼이나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네요.

수박이 먹고 싶으면

수박이 먹고 싶으면
수박씨를 심어야 한다.

쟁기질을 시작하는 농부의 흙 묻은 거친 발에 다음 계절을 미리 준비하는 농부의 책임감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계절을 가르는 힘찬 쟁기질, 쟁기를 끄는 누렁소의 우직한 뒷모습, 모두가 묵묵히 다가올 계절을 준비합니다.

봄바람에 꽃잎이 흩날리는 벚꽃나무 아래에서 종일 수고한 소가 잠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사이에도 농부는 쉴 틈이 없어요. 평생 흙과 함께 한 주름진 농부의 손에서 까만 수박씨가 구덩이 속으로 서너 개씩 떨어집니다. 지난 계절 수박이 남긴 꿈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흙 이불 살살 덮어주고 잘 자라라, 잘 자라라 응원가를 불러준 수박씨는 날마다 정성껏 돌보아준 부지런한 농부의 손길 덕분에 어느새 떡잎을 쑥 내밀어냈어요. 씨를 뿌리는 순간 농부의 꿈도 작은 수박씨의 꿈도 모두 같은 것,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이 약속처럼 다시 만났습니다. 막 솟아난 수박의 어린 떡잎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찬 생명의 기운, 주인 곁을 맴돌며 재롱을 떨던 강아지도 새싹이 신기한가 봐요. 솟아난 떡잎이 대견하고 기특해 활짝 웃으며 아이처럼 농부는 기뻐합니다. 그것이 생명을 키우는 마음입니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대견한 마음도 잠시, 아까워서 망설여지더라도 수박 싹을 거침없이 솎아내야 할 때도 있어요. 솎아 낸 수박 싹이 슬프지 않도록 남은 싹을 더욱 정성껏 돌봐야 하는 것 역시 농부의 몫이에요.

씨앗을 심고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고 어느새 쭉쭉 뻗은 줄기에서 수박꽃이 피어나고 벌과 나비가 모여듭니다. 수박이 열매를 맺기까지 농부의 시간은 빈틈없이 빼곡하게 이어집니다. 농부의 마음과 땀, 그리고 계절이 부지런히 수박을 키워냅니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미숫가루를 들고 온 손주의 부름에 농부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음 짓습니다. 원두막 그늘에서 시원한 미숫가루 한 사발 들이마시고  낮잠 한 숨 달게 자는 동안에도 농부는 둥글고 아름다운 꿈을 꿀 것 같아요. 수박을 기다리는 간절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만든 꿈을 말이죠.

수박이 먹고 싶으면
수박이 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자신의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하며 수박이 익기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은 자식을 기르는 부모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순리대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세상 어디에서나 무슨 일을 하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봄부터 온 힘을 다해 심고 가꾸고 기다리던 수박이 영글대로 영글면……

수박이 먹고 싶으면

“어이! 이리들 오소!”

농부 품에 안긴 커다란 수박은 농부의 꿈이자 수박의 꿈입니다. 봄부터 손 마를 날 없이 밭에서 수박과 살았던 농부가 주름진 손을 흔들어 사람들을 부릅니다. ‘어이! 이리들 오소!’ 얼마나 다정하고 정다운 부름인지요. 그 넉넉한 마음이 불러 모은 자리에 수박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줍니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모인 사람들은 농부와 수박이 내어준 꿈을 함께 나눕니다. 소중한 것을 나누는 아름다운 마음이 꿈결처럼 퍼지는 여름날입니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수박씨를 심어야 한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수박 싹을 틔워야 한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수박 줄기를 키워야 한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수박 열매를 맺혀야 한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수박이 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수박이 먹고 싶은 사람이면 그 누구든 커다란 손짓으로 불러야 한다.

봄날 작은 씨에서 시작한 수박이 자라납니다. 농부의 수박이 먹고 싶은 마음은 수고와 정성과 기다림으로 수박을 키워냅니다. 한여름 무더위를 달래주는 달디 단 수박은 지난 시간 농부의 정성이고 땀방울이고 기다림입니다.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두 작가는 실제로 수박 농사를 두 번이나 지어보았다고 합니다. 2015년 10월에 시작한 그림책 작업이 2년이 꼬박 지난 2017년 8월이 되어서야 완성되었으니 수박 농사 이상의 길고 고된 작업이었네요. 농부의 마음과 같은 정성으로 지어낸 그림책 “수박이 먹고 싶으면”. 

오랜 시간 고민하고 공들인 작품을 수박 가르듯 쩍 갈라 펼쳐 봅니다.

그림책이 손짓하며 부릅니다.

‘어이! 이리들 오소!’

무언가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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