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산책
책표지 : Daum 책
아빠와 함께 산책

(원제 : Nachts)
글/그림 볼프 에를브루흐 | 옮김 김완균 | 길벗어린이
(발행 : 2017/09/10)


소시지처럼 길쭉하게 생긴 닥스훈트가 노란 옷을 입고 그믐달이 되어 밤하늘에 떠있어요. 그 표정이 영 어리둥절해 보여 보는 이에게 웃음을 선사합니다. 왜 하필이면 달을 닥스훈트에 빗대어 그렸을까요? 작가 볼프 에를브루흐가 독일 작가이기에 독일의 대표 견종인 닥스훈트를 상징적으로 그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빠와 함께 산책”은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의 작가 볼프 에를브루흐가 직접 쓰고 그린 그림책입니다.

아빠와 함께 산책

한밤중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은 아이 폰스, 한쪽 발을 까딱까딱하면서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잠은 이미 멀찌감치 달아난 모양입니다. 그 표정이 어찌나 생생한지 엄마 아빠라면 보아도 못 본 척, 혹시나 눈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워 슬그머니 돌아 누워버릴 것 같아요.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오늘 밤 아빠의 포근하고 아늑한 잠자리는 이미 물 건너 가버렸습니다.

“밖에 나가서 산책하고 싶어.”

노란 달님이 이 밤 폰스를 불러내기라도 한 걸까요? 아빠는 졸리고 너무너무 피곤했지만 어쩔 수 없이 폰스와 산책을 나가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한밤중에 무얼 하려고?
밤에는 잠을 자야지!

아빠와 함께 산책

폰스 손을 잡고 한밤의 산책을 하고 있는 아빠 어깨가 축 처졌습니다. 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내려앉은 눈꺼풀, 아빠 몸을 감싸고 있는 커다란 외투가 아빠 온몸에 감긴 피곤함처럼 치렁치렁해 보이네요. 그러면서도 폰스 손을 꼭 잡고 있는 아빠.

아빠는 잠꼬대처럼 폰스를 향해 중얼중얼 이야기합니다. 토끼도 자고, 채소가게 아저씨도 자고, 개구리도 자고, 황소도 자고, 네 친구들도 모두 자는 이 밤, 아빠도 얼른 다시 잤으면 좋겠다고요. 왠지 종알종알 수다스러울 것 같은 폰스는 오히려 입을 꾹 다물고 조용합니다. 그저 말똥말똥한 눈을 요리조리 굴리며 다양하게 펼쳐지는 밤의 세계를 열심히 즐기고 있을 뿐이죠.

토끼도, 채소가게 아저씨도 모두 잠든 이 밤, 폰스 눈에는 아빠가 말한 잠든 이들은 보이지 않아도 현란한 색깔 옷을 입고 날개까지 달고 검은 밤하늘을 날아가는 미키마우스가 보입니다. 폰스의 다른 손을 잡고 걷는 커다란 고릴라는 폰스처럼 이 밤 시간이 너무나 즐거운가 봐요.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어요. 고릴라는 아마도 폰스가 생각하는 아빠의 모습이겠죠? 자신처럼 아빠도 지금 그렇지 않을까 하는…. ^^ 그런데 고릴라가 손목에 찬 시계를 보니 시간이 2시를 향해가고 있습니다.

아빠와 함께 산책

아빠에게는 주위가 온통 깜깜해서 눈앞에 있는 손조차 보이지 않는 밤이지만 폰스 눈에는 토끼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달을 구경하는 신기한 밤이고 아빠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깊은 밤이지만 폰스에게는 두 사람이 안전하게 강을 건널 수 있게 닥스훈트가 자신의 기다란 몸을 내어준 밤입니다.

아빠의 이야기는 산책길 내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아빠 이야기의 핵심은 ‘밤에는 세상 모든 만물이 코~ 잔다’는 말(그렇기에 너도 나도 어서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하지만 아빠 말은 맞지 않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두 사람이 지나치는 곳마다 온갖 신기하고 재미난 볼거리들이 넘쳐납니다. 그것을 말없이 바라보면서 폰스는 오직 표정으로 이야기해요. 한 마디라도 하면 이 모든 게 혹시라도 달아날까 사라질까 싶은 아이처럼요.

아빠와 함께 산책

산책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꿈결처럼 펼쳐지는 이 순간들이 결코 꿈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려는 듯 이상한 나라에서 건너온 앨리스가 폰스에게 빨간 공 하나를 건넵니다. 앨리스가 이상한 세계로 빠졌던 장소가 토끼 굴 구멍이었다면 이번에 앨리스는 토끼가 연결해준 동그란 훌라후프를 토끼 굴 구멍처럼 이용해 이쪽 세계로 건너왔어요. 골목 맞은편에서 배를 타고 시간의 강을 건너는 생쥐 아줌마의 회중시계가 새벽 3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깊고 깊은 밤입니다.

아빠와 함께 산책

한밤중에는 온 세상이 깜깜하고 고요하기만 하지.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말이다. 잘 자, 폰스.

외투를 벗고 침대로 향하는 아빠는 폰스에게 잘 자라는 인사도 잊지 않습니다. 잠옷으로 갈아입은 폰스의 시선은 앨리스가 건네준 빨간 공에 꽂혀있어요. ‘자, 이제 산책 끝, 공놀이의 시작!’이라고 말할 것만 같은 그런 표정으로 말이죠.

아빠와 산책하는 동안 그믐달이었던 달이 반달이 되기도 하고 초승달이 되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오늘 밤 폰스가 본 풍경은 환상의 세계처럼 보이지만 앨리스가 건네준 빨간 공을 여전히 쥐고 있는 폰스를 보면 이 모든 것이 환상의 세계라고 딱 잘라 단정 지을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환상과 현실 세계를 마음대로 들락거리며 자라나는 아이들의 세계를 작가 볼프 에를브루흐는 초현실적 이미지로 재현해 한밤의 산책길을 더욱 환상적이고 몽환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한밤중 아빠와의 산책길에 펼쳐지는 놀라운 밤의 세상을 멋지게 그려낸 그림책 “아빠와 함께 산책”, 네가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든 아빠는 꼭 잡은 네 손을 절대 놓지 않을 거야, 그런 아빠의 모습에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새삼 뭉클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