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씨의 직업
책표지 : Daum 책
악어 씨의 직업

(원제 : Professione Coccodrillo)
기획 조반나 조볼리 | 그림 마리아키아라 디 조르지오 | 한솔수북
(발행 : 2017/07/14)


몸의 절반은 수면 위로 드러낸 채 헤엄치는 악어 한 마리. 환한 빛이 감도는 듯한 물 속 세상이나, 까만 밤하늘에 별빛 총총한 물 밖 세상 모두 평화로운 가운데 어디론가 헤엄쳐 가는 악어의 네 발만 분주합니다. 과연 오늘의 주인공 악어 씨가 가는 곳은 어디인지, ‘악어 씨의 직업’은 무엇인지 우리도 한 번 따라가 볼까요?

※ 잠깐! “악어 씨의 직업”은 마지막 장면에 반전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줄거리 소개엔 그 결말이 나와 있으니 짜릿한 반전의 묘미를 만끽하고 싶다면 줄거리 소개는 건너뛰길 권합니다. 그림 속에 담긴 다른 이야기들로 건너뛰고 싶은 분들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

악어 씨의 직업

악어 씨의 직업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뜬 악어 씨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납니다. 화장실에서 용무를 마치고 양치질과 세수를 한 후 말끔하게 옷을 차려 입습니다.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간단한 아침 식사와 향긋한 커피 한 잔. 이제 악어 씨의 출근 준비는 완벽히 끝났습니다.

집을 나선 악어 씨는 사람들의 행렬 속에 끼어듭니다. 마치 모두 같은 곳으로 출근하는 듯한 느낌, 공장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서 있는 듯한 느낌, 북적대는 아침 출근길에 대한 느낌은 서울에 사는 우리나 이탈리아의 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작가나 매한가지인가 봅니다.

지하철 입구에서 신문 한 장 사들고 지하철에 올라 탄 악어 씨. 밤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 장 한 장 넘기며 머리기사들을 훑어보지만 이내 하나둘 늘어나는 사람들로 빽빽해진 객실은 신문 펼쳐들 공간조차 허용하지 않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린 악어 씨는 길가에 늘어선 상점들을 구경하며 한 걸음 한 걸음 회사로 향합니다. 꽃 한 다발과 점심으로 먹을 치킨도 한 조각 사들고 낯익은 상점 주인과 손인사도 나눕니다.

악어 씨의 직업

마침내 회사에 도착한 악어 씨. 아, 꽃다발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어여쁜 아가씨를 위한 거였군요. 창가에 턱을 괴고 무료하게 밖을 바라보던 아가씨는 깜짝 선물에 코를 담근 채 행복한 표정을 짓습니다. 꽃내음에 푹 빠진 아가씨의 미소는 악어 씨의 행복한 하루를 위한 선물 아닐까요?

악어 씨의 직업

그나저나 악어 씨가 도착한 이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궁금해질 무렵 악어 씨는 원숭이들이 모여있는 커다란 우리를 지나갑니다. 그렇다면 여긴 동물원? 그러고 보니 악어 씨가 꽃을 선물한 아가씨가 있던 곳은 바로 매표소였나보군요. 음…… 악어 씨의 직업은 수의사? 사육사?

악어 씨의 직업

악어 씨의 직업이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하는데 락커룸에 들어간 악어 씨는 옷을 갈아 입습니다. 아니…… 옷을 갈아 입는 게 아니라 훌훌 벗어 던지고는 타월 하나만 두른 채 락커룸 저 안 쪽에 난 문으로 들어섭니다.

악어 씨의 직업

일하기 전에 먼저 샤워부터 하려는 걸까… 생각하며 다음 장을 넘기자…… 타월마저 벗어던진 악어 씨가 어색한 웃음과 함께 창 밖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혼란스러운건 저뿐일까요? 악어 씨를 바라보며 신나하는 손자의 표정과는 달리 할머니 표정도 왠지 저처럼 깜짝 놀란 것만 같지 않나요?

할머니가 깜짝 놀란 이유 눈치 채셨나요? 악어 씨의 출근길을 다시 한 번 되짚어 가보세요. 할머니와 손자는 아까 악어 씨와 같은 지하철을 타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바로 옆에 말이죠. 악어 씨가 타고 있던 지하철을 다시 들여다보니 동물은 악어 씨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마, 기린, 침팬지, 자신의 얼굴을 목도리로 가린 타조(?)…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껏 보았던 동물원의 동물들은 동물원에서 사는 게 아니었던 거네요. 우리들처럼 각자의 포근한 집이 있고, 우리가 모두 저마다의 직업이 있는 것처럼 동물들 역시 직업이 있었던 거네요. 직업은 바로 동물원 동물!

악어 씨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

혹시 방금 맨 위에서 여기로 건너뛰셨나요? 이곳에도 스포일러가 있으니 긴장 늦추지 마세요~ ^^

지금까지 장황하게 설명한 악어 씨의 출근길과 마지막에 드러난 악어 씨의 직업과 직장.

아이들과 함께 읽고 있었다면 녀석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웃음을 참지 못했을 겁니다. 엄마 아빠 얼굴 올려다보며 눈 마주치고 활짝 웃었겠죠. 악어가 출근한 곳이 동물원이라니!

하지만 읽어주던 엄마 아빠들 마음은 그저 재미있고 우습지만은 않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부대끼는 나 자신의 모습이니까요. 때로는 별 잘못도 없이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고, 때로는 내 기분과 상관 없이 억지 웃음을 짓기도 해야 하고, 있고 싶지 않은 곳 있어야 하고,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니까요.

제 발로 우리에 걸어 들어간 악어 씨의 모습에서 입시에 찌든 우리 청소년들의 퍽퍽한 얼굴도 떠오릅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보고 싶은 책과 영화도 수두룩하지만 그 모든 걸 잠시 뒤로 미룬 채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제 스스로 교문 안으로 들어서는 아이들의 축 처진 어깨……

우리는 과연 이대로 행복한 걸까요?

악어 씨가 꿈꾸는 삶

악어 씨의 직업

악어 씨의 직업

위 그림 두 장 중 첫 번째 그림은 “악어 씨의 직업”의 앞쪽 면지입니다. 두 번째 그림은 속표지를 재구성한 겁니다. 자명종이 울리며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만, 자명종이 울리기 바로 직전까지 악어 씨는 행복한 꿈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탁 트인 자연 그 속에서 편안하게 강물에 몸을 맡긴 채 유유히 떠도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고 있었죠.

악어 씨가 꿈에 그리는 것은 어쩌면 동물원이 있는 도시로 오기 전 자신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 어쩌면 동물원의 동물이 아닌 애초에 바랬던 자신의 꿈과 삶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꿈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꿈대로 살아가며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꿈보다는 현실 속의 안정을 택한 채 늘 자신의 꿈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테구요. 또 꿈과 현실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유지하며 나름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구요.

이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삶은 어떤 이들의 것일까요? 자신의 꿈대로 살아가는 사람이건 자신의 꿈을 간직한 채 현실을 선택한 사람이건 꿈을 잃지 않는 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행복이고 축복 아닐까요? 불행은 꿈을 잃은자들의 몫일 겁니다. 행복한 삶은 바로 꿈꾸는 삶입니다.

내 꿈,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악어 씨의 직업

아까 악어 씨가 지나치던 원숭이 우리와 위 그림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원숭이 우리 그림에선 원숭이들도 노란 새들도 모두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무에 매달려 놀거나 우리의 창살 주변에 모여 이런저런 일들을 하며 보내고 있었죠. 우리가 늘 봐왔던 동물원 원숭이들처럼 말이죠. 그들에겐 선택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물론, 이 그림책 속 원숭이들은 우리 안에 있기를 선택했겠죠. 매일 아침 동물원으로 출근했다가 저녁이면 집으로 퇴근하는 원숭이들일테니까요 ^^)

그런데 위 그림에선 울타리나 창살이 없습니다. 그림 왼쪽은 경계 안쪽입니다. 원숭이와 노란 새 한 마리가 있습니다. 노란 새는 경계 너머엔 관심조차 없습니다. 지금 있는 곳이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하지만 원숭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경계 너머로 자신의 꿈을 찾아 날아간 또 다른 노란 새 한 마리를 마냥 바라보고 있습니다. 과연 원숭이는 무엇을 선택할까요? 지금 이 곳의 삶에 머무를까요? 아니면 경계 너머 저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꿈,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설까요?

나라마다 다른 그림책 표지, 어떤게 더 맘에 드나요?
악어 씨의 직업
이미지 출처 : amazon

“악어 씨의 직업”을 만든 작가들이 살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그림을 선택해서 그림책 앞뒤 표지를 각각 구성했습니다(이탈리아 판 책표지 보기). 그런데 북미 판은 조금 다릅니다. 북미 판은 위 그림에서와 같이 앞표지는 출근 준비를 하며 오늘은 어떤 타이를 할까 고민하는 악어 씨의 모습이, 뒤표지는 우리나라 판의 앞표지의 그림을 선택했습니다.

앞표지는 마지막 장면에서의 반전을 좀 더 임팩트 있게 전하기 위한 출판사의 의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앞표지에 쓴 그림을 그림책의 맨 마지막 뒤표지에 담은 건 아마도 동물원의 우리 안에서 제 본래의 모습을 숨긴 채 살아가는 악어 씨가 꿈꾸는 삶이 무엇인지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어서였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북미 판이 더 마음에 듭니다만 여러분들은 어떤 구성이 더 마음에 드시나요?

지금까지 글 없는 그림 속에 수많은 이야기와 생각 거리들을 담은 그림책 “악어 씨의 직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