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모자

하늘을 나는 모자

(원제 : Der Fliegende Hut)
글/그림 로트라우트 수잔네 베르너 | 보림
(발행 : 2017/08/01)


마술사 모자처럼 생긴 커다란 모자가 눈에 띕니다. 발꿈치를 들고 경쾌한 걸음을 사뿐사뿐 걸어가며 미소 짓고 있는 주인공이 모자를 잡고 하늘로 휭~ 날아오르며 시작되는 모험 이야기가 아닐까 미리 상상해 보았어요. 그림책 “하늘을 나는 모자”에 어떤 마법의 힘이 담겨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하늘을 나는 모자

바람 때문일까요? 소년의 모자가 날아오릅니다. 모자가 하늘로 날아가자 당황한 소년이 양팔을 하늘 위로 뻗어 잡아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늦었어요. 소년의 키보다 훨씬 높게 모자가 날아가 버렸으니까요.

그 모습을 함께 길을 가던 이들이 지켜보고 있어요. 다들 개성 넘치는 모자를 쓰고서 모자가 날아가는 것을 재미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모자 주인만 안타까운 표정입니다.

하늘을 나는 모자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모자는 저 혼자 날아가다 마침 길을 걷고 있던 오리 머리 위에 턱 하니 내려앉았어요. 다리를 건너서 모자가 날아갈 때만 해도 하얀 눈발이 폴폴 날리는 겨울이었는데 어느새 세상은 봄빛으로 가득합니다. 물 오른 나뭇가지에 작은 꽃봉오리가 맺혔고 들판은 연초록 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어요.

어디선가 날아온 모자를 쓴 오리는 태연스럽게 오리걸음으로 뒤뚱뒤뚱 제갈길을 가고 있고 그 모습을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새들이 흥미로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데요. 뒤따라가는 개의 표정이 어째 예사롭지 않아 보이죠? 오리의 모자를 낚아챈 개는 모자를 주인아주머니에게 가져다주었어요. 모자를 쓰고 동물원 구경을 간 아주머니는 원숭이에게 모자를 뺏기고, 원숭이의 모자는 먹이를 주러 왔던 사육사에게로 넘어가게 되죠. 하늘을 나는 모자는 이렇게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또 다른 곳으로 계속 이동합니다.

하늘을 나는 모자

퇴근길 사육사는 기차 선반 위에 모자와 가방을 올려놓았어요. 그런데 뒷좌석에 앉아있던 코트 입은 아저씨가 자신의 모자와 착각해 사육사의 모자를 들고 내리면서 모자의 주인이 또 뒤바뀌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쯤 와서 보니 무언가 등장하는 이들의 얼굴이 낯익어 보이지 않나요? 다시 앞장을 넘겨서 보면 그림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맨 처음 모자의 원래 주인이었던 소년과 함께 길을 걷던 이들이에요. 가물가물 의심된다면 다시 첫 장면으로 되돌아가서 확인해 보세요~ ^^ 코트 입은 아저씨는 첫 장면에서 책을 읽느라 유일하게 모자가 날아가는 것을 보지 못한 인물이에요.

아저씨가 바뀐 모자를 쓰고 기차에서 내렸을 때 계절은 어느새 가을로 바뀌었어요. 모자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졌나 봅니다. 맥주 한 잔 하면서 책을 읽으며 쉬고 있던 아저씨는 나뭇가지인 줄 알고 모자를 염소 머리 위에 올려놓았어요. 모자는 이제 염소에게서 토끼에게로 토끼에게서 꼬마에게로 옮겨갔어요. 모자가 이리 저리로 옮겨가는 동안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바뀌고 시간이 바뀌어 갑니다.

하늘을 나는 모자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날 꼬마는 모자를 눈사람에게 씌워줬어요. 그런데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이가 또 있네요. 바로 모자의 진짜 주인입니다. 민머리에 모자도 없이 추운 겨울 머플러만 두르고 길을 가고 있는 소년은 자신의 모자를 드디어 찾았어요. 모자를 되찾은 소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눈사람 머리에 들고 있던 바구니를 씌워줬어요. 눈사람에게는 바구니 모자가 훨씬 잘 어울리는군요.^^

한 때 모자의 주인이었던 토끼가 그 모습을 아주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소복하게 내린 눈으로 새하얗게 변신한 풍경이 이 신나는 소동이 이것으로 끝났음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하늘을 나는 모자

그런데 마지막 반전이 하나 남아있었습니다. 한차례 불어온 바람이 소년 주변에 있던 이들의 모자를 모두 날려 버리는 재미있는 장면! 첫 장면과 반대로 소년만 빼고 이번에는 다른 이들의 모자가 전부 날아가고 있어요. 첫 장면에서는 모자가 날아가는 소년만 빼고 다 웃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소년만 웃고 있군요. 아, 맨 뒤에 서있는 코트 입은 아저씨만 여전히 책을 읽고 있느라 자신의 모자가 날아갔는지 알지 못하고 있네요. 그나저나 아저씨는 언제쯤이면 저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교훈! 바람 부는 날엔 모자를 두 손으로 꼭 잡고 걸어라~ ^^

‘바람’때문에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이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저는 이 그림책을 보자마자 1974년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을 수상한 영국 작가 팻 허친스의 “바람이 불었어” 가 떠올랐습니다.  이 그림책을 쓴 로트라우트 수잔네 베르너는 독일 작가입니다. ‘수잔네’라는 이름 때문에 무언가 친근한 느낌이 드는(철수네 영희네 처럼^^) 로트라우트 수잔네 베르너는 2016년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작가입니다. 생존 작가 중에서 아동 문학에 기여도가 높은 작가에게 수여하는 안데르센상은 작품 하나가 아닌 작가로서 걸어왔던 모든 것들을 놓고 평가받는다는 점에서 작가에게는 아주 큰 영예로운 상으로 알려져 있죠.

이 모든 소동은 모자의 한바탕 일탈일까요, 바람의 짓궂은 장난일까요? 누가 그랬든 세상을 돌고 돌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모자의 모습이 잠시도 세상이 궁금해 가만있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 모습처럼 보입니다. 모자는 한동안 좀 잠잠하겠죠? 한동안만……^^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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