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호랑이
책표지 : Daum 책
금강산 호랑이

권정생 | 그림 정승각 | 길벗어린이
(발행 : 2017/09/22)


보기만 해도 아찔한 금강산 봉우리에서 아버지를 죽인 불구대천의 원수 호랑이와 유복이가 마주쳤습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호랑이도, 신중하게 활시위를 겨누고 있는 유복이도 서로에게 만만치 않은 상대입니다.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첩첩산중 금강산에 눈까지 내리고 있어 극한의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 호랑이를 찾아 나선 주인공 유복이의 활약과 성장을 담은 흥미진진한 우리 옛이야기 “금강산 호랑이”는 이야기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전해져 내려오던 구전동화를 권정생 선생님이 각색해서 만든 동화입니다. 이 그림책은 “강아지 똥”, “오소리네 집 꽃밭”, “황소 아저씨” 등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에 묵직한 느낌의 그림을 그려왔던 정승각 작가가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끝에 선보이는 작품입니다.

금강산 호랑이

옛날 옛날 어느 산골에 유복이란 아이가 살고 있었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단둘이서만 살았어요.

유복이가 일곱 살쯤 되어 글방에 공부하러 갔는데 아이들이 유복이를 ‘애비 없는 자식!’이라며 놀려댔어요. 아이들 놀림에 고개를 푹 숙이고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는 더벅머리 조그만 아이 유복이가 흘리는 눈물이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어요. 유복이를 놀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마치 장난 심한 도깨비들 같습니다. 울긋불긋한 색깔, 동적인 느낌의 그림이 놀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더욱 강조해 보여주고 있어 그 사이에 끼인 유복이의 모습이 더욱 작고 처량해 보입니다.

금강산 호랑이

아버지가 왜 없는지 묻는 유복이에게 어머니가 그 이유를 말해주었어요. 이름난 사냥꾼이었던 유복이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잡아먹는 금강산호랑이를 없애러 떠났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고요.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결심한 유복이는 그날부터 열심히 수련합니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났어요. 작고 연약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늠름한 청년으로 자란 유복이. 멀리서 화살로 물동이 쏘아 맞추기, 진흙을 묻힌 화살로 다시 한 번 쏘아서 뚫린 물동이 구멍을 감쪽같이 막기, 비쭉비쭉 베어낸 대나무 밭을 맨몸으로 구르기, 커다란 바위 번쩍 들기 등등 어머니가 내린 시험을 무사통과한 유복이는 드디어 금강산호랑이를 잡기 위해 먼 길을 떠납니다.

금강산 호랑이

눈물을 삼키며 아들을 떠나보내는 어머니와 애써 웃으며 작별 인사하는 유복이. 푸른빛 감도는 먹선으로 표현한 굽이굽이 고갯길이 앞으로 유복이가 넘어야 할 수많은 고난을 상징하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남편이 죽고 난 후 오직 유복이만 의지해서 살아온 어머니, 어머니는 유복이가 결코 살아 돌아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유복이를 보내줍니다. 떠나보내는 마음은 찢어질 듯 아프지만 자식의 성장을 위해서는 어머니도 반드시 넘어야 할 산입니다.

금강산 호랑이

본래 산신령이었던 오두막집 꼬부랑 할머니의 시험을 세 번이나 무사히 통과한 유복이가 드디어 금강산호랑이가 살고 있는 커다란 굴속으로 들어갔어요. 캄캄한 어둠은 유복이의 두렵고 답답한 마음 같습니다. 이윽고 동굴 깊은 곳에서 커다란 불덩어리 두 개가 켜졌다 꺼졌다했어요. 그 불덩어리는 바로 호랑이의 두 눈이었어요.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막연한 추측 때문에 실제보다 훨씬 더 크고 무시무시해 보이기 마련이죠. 시퍼런 불덩이 모양을 한 호랑이 눈빛에 유복이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릴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유복이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음을 다잡은 뒤 활시위를 당겼어요. 호랑이 소리가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커다란 호랑이가 유복이에게 달려들었어요.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 호랑이의 모습이 무시무시합니다. 오랜 시간 수련하고 어머니와 산신령의 시험도 무사히 통과했지만 금강산 호랑이는 유복이에게도 역시나 감당하기 벅찬 상대입니다. 결국 금강산 호랑이는 유복이를 한입에 꿀꺽 삼켜버렸습니다.

금강산호랑이

이대로 모든 이야기가 끝이구나 싶은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호랑이 뱃속에 굴러 들어간 유복이는 그곳에서 자신처럼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한 아가씨를 만났어요. 아가씨가 건넨 장도칼로 유복이가 호랑이 뱃속을 찔러댑니다.

뱃가죽을 찔러대는 유복이 때문에 고통스러워 금강산 여기저기 내달리는 호랑이의 모습은 우리 옛 그림에 나오는 우스꽝스럽고 해학적인 호랑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무섭고 두렵고 감당하기 힘든 카리스마로 무장한 호랑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습니다. 뾰족뾰족하게 솟은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들이 그런 호랑이를 보고 손가락질하며 놀려대고 있는 것 같아요. 푸른 밤하늘에 내걸린 웃는 입모양을 한 초승달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금강산 호랑이

그렇게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무사히 돌아온 유복이는 함께 살아 돌아온 아가씨와 혼인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해요. 푸른빛과 먹빛으로만 채워져 있던 유복이 주변이 이제 알록달록 환한 색깔로 물들었습니다.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색깔이 천신만고 끝에 유복이가 얻은 행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유복이의 ‘유복’은 ‘유복자’라는 뜻이 아니라 ‘복이 있다’는 뜻이었나 봅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어린 시절 한 번쯤 들어봤던 그런 이야기 같지 않나요? 아버지 원수를 갚는 이야기, 호랑이 뱃속에서 무사히 살아 나온 이야기, 자신에게 도움을 준 아가씨와 결혼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산 이야기, 언젠가 어디선가 들어보았던 친근하고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가슴 바짝바짝 졸이게 되는 전형적인 권선징악 구조를 가진 “금강산 호랑이”, ‘옛날 옛날에~’ 로 시작해 선과 악이 대립하고 주인공이 모험을 떠나 더 크게 성장해 돌아온다는 옛날이야기는 마지막에 착한 일을 하는 이에게는 복이 오고 나쁜 짓한 이는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는 교훈을 남겨줍니다. 그 교훈이 삶에 작은 힘을 실어주고 마음속에 따뜻함을 안겨줍니다.

2000년에 시작해 무려 17년이란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작품을 마무리했다는 정승각 작가의 그림이 옛이야기의 느낌을 아주 멋지게 잘 살려냈습니다. 고인이 되신 권정생 선생님이 이 그림책을 본다면 뭐라고 이야기하실까요? 아마도 말없이 흐뭇하게 웃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괜스레 마음이 울컥해집니다.

우리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마을 사람들을 헤친 호랑이를 없애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유복이의 아버지, 호랑이를 잡기 위해 홀로 떠났던 유복이가 아가씨의 도움을 얻어 원수를 갚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든 것처럼 어우렁더우렁 살갑게 어울려 살면서 서로에게 도움 주고 도움받으면서 살아가는 세상 아닐까요? 평생을 아이 같은 마음으로 살다 간 동화 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꿈꾸는 세상 역시 그런 세상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