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밭 달님
책표지 : Daum 책
사과나무밭 달님

권정생 | 그림 윤미숙 | 창비
(발행 : 2017/10/23)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그림책 제목을 조그만 소리로 따라 읽어 보며 캄캄한 밤 둥근 달님이 떠오른 사과나무밭 풍경을 떠올리다 보면 왠지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사과나무밭 달님”은 1978년 출간된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로 만든 그림책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남편을 잃은 충격에 정신을 내려 놓은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노총각 필준이가 등장합니다. 세상이 정한 일반적인 테두리 밖에 존재하는 필준과 그의 어머니 안강댁의 모습은 소외된 것,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을 동화의 소재로 쓴 권정생 선생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주인공의 모습입니다.

사과나무밭 달님

필준이네 어머니 안강댁은 남의 말을 빌리면 얼빠진 할머니였습니다.
필준이는 그런 안강댁의 외아들입니다.
나이 마흔 살이 가까웠지만 필준이는 아직 총각이었습니다.

강가 과수원지기를 하면서 실성한 노모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노총각 필준이는 사람들이 업신여김을 받아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저 어머니만 곁에 있어 주면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지요.

사과나무밭 달님

초로의 나이에 들어선 아들 필준과 동두깨비(소꿉놀이) 하자 조르는 어머니 안강댁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필준이가 아기였던 시절인 모양입니다. 어머니는 베개를 어린 아들 삼아 굽은 등에 업고 자장가를 부르면서 남편에게 이야기하듯 중얼중얼 이야기합니다.

“당신, 오늘 읍내 장 가거든 필준이 꽃신 한 켤레 꼭 사 와요.
애가 얼마 안 있음 자족자족 걸을 테니 말요.”

필준이 첫 돌을 며칠 앞두고 사라진 아버지는 일본 순사한테 잡혀 옥사를 하다 죽었다고도 하고 깡패들에게 맞아 죽었다고도 했습니다. 혼란스러웠던 시절, 어린 아들과 단둘이 남겨진 젊은 안강댁의 삶은 분명 녹록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과나무밭 달님

어머니의 정신이 온전치 못하게 되자 필준이는 국민학교 삼 학년에 다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이 집 저 집 다니며 밥을 얻어먹고 살았어요. 열두 살이 되자 거지 노릇을 그만두고 꼴머슴 일을 하면서 어머니를 정성으로 모시고 살았습니다.

보호받아야 할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보호자가 된 필준, 가난한 이들을 놀리고 손가락질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가진 것을 나누어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필준이는 삶을 꿋꿋하게 버텨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필준이에게 나누어주는 아주머니의 넉넉한 마음이 햇살처럼 따뜻하게 느껴지는 장면입니다.

사과나무밭 달님

이런저런 것들이 먹고 싶고 갖고 싶다며 어린아이처럼 아들 필준이를 졸라대던 안강댁은 정신이 좀 들면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필준아, 내가 나쁜 어미야…….”

등은 굽고 주름 투성이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는 필준이 마음은 그저 애처롭기만 합니다. 늘 배시시 웃고 있는 필준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쏟아질 것 같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지난한 세월 서로의 마음을 의지해 이제껏 살아왔기에……

강바람이 불어오는 사과나무밭 외딴집은 쓸쓸했지만 어머니와 함께하는 순간이 필준이는 더없이 행복했어요.

사과나무밭 달님

동산에 훤히 달이 솟아오릅니다. 두 사람은 저녁을 먹다 말고 마루 끝에 서서 어깨를 꼭 잡고 둥근 달님을 바라보았어요. 달님을 바라보며 필준이 아버지를 떠올리는 안강댁의 눈에도 필준이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옷에 떨어진 단추 하나 꿰매어 달아줄 줄 모르는 어린애 같은 어머니지만 그런 어머니가 옆에서 환하게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눈물 나게 고맙고 행복한 아들 필준, 하루하루 버겁기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 두 사람이 모진 세월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서로를 의지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동산에 떠오른 둥근 달님처럼 환하고 아름답습니다. 정직하게 꽃 피우고 열매 맺는 사과나무가 두 사람의 모습을 꼭 닮아있습니다.

필준의 얼굴에서 권정생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사과나무밭 외딴 오두막집은 권정생 선생님이 생전에 기거하셨던 안동 빌뱅이 언덕 작은 흙집을 떠올리게 하고요. 평생을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가슴에 품고 이 글을 쓰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더욱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존재가 가장 귀하다’는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 정신이 가슴 뭉클하게 담겨있는 “사과나무밭 달님”, 아픔 속에서도 정직하게 살아가는 모자의 이야기를 서정적인 느낌을 살려 잔잔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낸 윤미숙 작가의 그림은 이야기의 감동을 더욱 깊게 전해줍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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