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아이
책표지 : Daum 책
책의 아이

(원제 : A Child of Books)
올리버 제퍼스 | 그림 샘 윈스턴 | 옮김 이상희 | 비룡소
(발행 : 2017/10/15)

★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책 위에 다소곳이 앉아 생각에 잠겨있는 파란 아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잠시 바람을 쐬러 나온 걸까요? 아이가 걸터앉아있는 빨간 책에 열쇠구멍이 있어서 마치 작은 집처럼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저자 이름을 책 전면에 쓰는데 반해 이 그림책은 표지 그림에 나오는 책을 활용해서 작가나 출판사 이름이 자연스럽게 그림 속에 스며들게 했어요. 또 책의 그림자를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한 점도 눈에 띕니다.

그림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만나는 면지에는 잘 알려진 동화 제목과 작가, 작자 미상의 자장가 곡 제목이 깨알같이 적혀있어요. 플랜더스의 개, 홍당무, 라푼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꿀벌 마야의 모험, 보물섬, 15소년 표류기, 어린 왕자, 비밀의 화원, 수오 강, 작은 별, 브람스의 자장가…… 오랜만에 불러보는 친근한 이야기와 노래의 제목들. 옛 친구를 만난 것 같아 반가움과 뭉클함이 앞섭니다.

책의 아이

빛바랜 종이 위에 정갈하게 놓인 잉크와 펜, 종이 위에 빼곡히 써 내려갈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다음 장을 펼쳐 보니 빛바랜 종이는 책의 아이를 태운 작은 배의 돛으로 변신했어요.

나는 책의 아이,
이야기 세상에서 왔어요.

아이가 손에 쥐고 읽고 있는 책은 분명 그림책 표지에서 보았던 자물쇠 달린 빨간 책인데 책에는 아직 색깔이 없어요. 발 동동 물에 담근 채 독서 삼매경에 빠진 아이, ‘옛날 옛적 아주 먼 옛날에~’로 시작하는 문구가 잔물결이 되어 아이 주변을 살랑이고 있습니다.

책의 아이를 태운 작은 배는 바람의 힘이 아닌 상상의 힘으로 낱말의 바다 위를 떠다닙니다. 작은 돛단배에 탄 아이가 딛고 일어선 것은 이야기 바다의 파도 위, 상상의 힘으로 날듯이 떠가는 배 위에서 아이는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어요.

책의 아이

낱말의 바다를 여행하면서
물어보곤 하지요.
나와 함께 떠나고 싶은지.

몹시 무료해 보이고 의기소침해 보이는 소년 앞에 구세주처럼 책의 아이가 나타났어요. 걸리버 여행기와 보물섬, 해저 2만 리, 피노키오의 모험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파도가 넘치는 상상의 힘으로 너울거립니다. 반면 책의 놀라운 세상을 아직 접해보지 못한 소년 주변은 검은 그림자로만 이루어졌어요.

책의 아이

함께하고 싶지만 뭔지 모를 두려움에 손 내밀까 말까 망설이는 소년의 손을 먼저 잡아 준 것은 책의 아이입니다. 모험을 함께 할 친구를 만난 순간 책의 아이 세일러복에 파란 줄무늬가 생겨났어요. 파릇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파란색이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낯선 것은 언제나 두려움을 안겨주기 마련이지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두려움 가득한 소년을 상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책의 아이는 늘 소년보다 한 발 앞서 나가며 새로운 세상을 보여줍니다. 글자의 크기를 달리해서 생겨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굴’로 성큼성큼 내려가고, 분홍 구름이 동동 떠다니는 상상의 산을 함께 오르고, 나룻배를 타고 어둠 속 보물을 찾아 나서는 동안 어두웠던 소년의 얼굴이 차츰 밝아집니다. 새로운 세상은 낯설고 두려운 세상이 아니었음을, 가슴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가득한 세상임을  깨달았기 때문이겠죠.

책의 아이

옛이야기 숲에서 마냥 행복한 두 아이, 그런 두 아이 마음처럼 나뭇가지에서는 싱그러운 연초록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해요. 소년의 얼굴은 이전 보다 한층 더 밝아졌고요. 소년의 마음을 밝히는 희망의 상징 책의 아이는 점점 더 파란색으로 물들어 갑니다. 오래된 책들이 옛이야기 숲에서 자라는 나무가 되었고 숲이 나오는 동화의 구절들이 변해 나뭇가지가 되어 책 세상을 경험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더욱 느낌 있게 보여주고 있어요.

세상을 향해 한발 앞으로 내딛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소년은 이제 유령의 성에 사는 괴물에게 쫓기는 상황에서도 책의 아이가 높은 성에서 먼저 탈출할 수 있게 줄을 잡아줄 수 있는 용감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책의 아이

한바탕 책의 세상에서 즐겁게 놀다 온 두 아이, 이들과 함께 놀다 온 온갖 동화 속 이야기들이 세상 밖으로 튀어나왔어요. 책 속에 갇혀 지내던 체셔 고양이가 환하게 웃음을 짓고, 해저 2만 리의 문어가 꿈틀대며 기어 나오고, 피노키오를 찾으러 제페토 할아버지의 작은 배가 바다를 건넙니다. 이야기 속에 갇혀 지내는 동안 너무나 갑갑했었는지 한 번에 터져 나온 동화 속 주인공들…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이야기,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마음만 먹으면 모두 우리 것이고 우리 세상에 속해있음을 책의 아이가 마법처럼 펼쳐 보이는 순간입니다. 다양한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이야기 세상은 알록달록 온갖 색깔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책의 아이

우리의 집은 새로운 이야기가
샘 솟는 곳

여행을 마친 책의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어요. 나란히 선 집들 사이 소년에게 멋진 상상의 여행을 선물한 책의 아이 집만 유일하게 아름다운 색깔로 빛나고 있습니다. 책의 아이 집은 오늘 소년과 함께했던 공간들로 만들어졌어요. 핑크색 구름이 동동 떠다녔던 상상의 산, 숨바꼭질했던 옛이야기 숲, 자장가를 들으며 편안하게 잠들었던 노래 구름까지… 그러고 보니 책 표지에 등장했던 자물쇠 달린 빨간 책이 바로 책의 아이 집 대문이었네요. 책의 아이를 만나러 가는 유일한 방법은 책의 아이 집 문을 여는 것입니다. ^^

상상의 세상을 여는 열쇠는 언제나 우리에게 있다고, 열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책의 아이”가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책 읽는 즐거움을 맛 본 아이들이라면 언제라도 자신 있게 그 문을 열거예요. 느긋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말이죠.

“책의 아이”는 글자가 그림의 일부인 것처럼 표현한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해 이야기를 전달한 점이 눈에 띄는 그림책입니다. 동화에 나오는 문장들을 활용해 활자의 서체나 크기, 글자들의 간격 등을 달리한 시각적 이미지로 다양한 이야기 세상을 표현하고 그 세상에 흠뻑 빠져드는 소년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온갖 빛깔 이야기로 가득한 멋진 책 속 세상을 언제든 잊지 말고 찾아오라는 책의 아이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낸 그림책 “책의 아이”, 흩어진 낱말들을 이어 한 편의 재미난 이야기로 빚어내는 세상 모든 작가들에게 고맙다 말하고 싶어집니다. 쉴 새 없이 눈길을 사로잡는 재미난 것들 가득한 세상에서 이야기의 소중함을 알고 책 속으로 파고드는 아이들이 마냥 사랑스럽습니다.


※ 함께 읽어 보세요 :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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