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네 방앗간

할머니네 방앗간

글/그림 리틀림 | 고래뱃속
(발행 : 2017/10/23)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할머니네 방앗간

그림책을 펼치면 제일 먼저 만나는 면지 그림입니다. 털털털털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떡 방앗간 기계만 봐도 뭔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 곁을 함께하고 있는 채반이며 함지, 빨간 바가지, 주걱, 솔… 다양한 도구들은 또 얼마나 정겨운지요. 오래전 흔하게 보았던 사소한 물건들에게서도 이토록 진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참 묘합니다. 요즘 아이들도 이 풍경들이 전해주는 이 느낌을 알까요? ^^

할머니네 방앗간

하늘에 별이 총총 박힌 겨울밤입니다. 고만고만한 크기의 가게며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조그만 동네에서 유일하게 한 집만 불이 훤히 밝혀져있어요. 밤늦도록 불 밝힌 이 집이 오늘 이야기를 들려줄 할머니네 방앗간이랍니다. 할머니 방앗간에서 윙윙 거리는 기계 소리가 밤늦도록 이어진 다음 날이면 방앗간 앞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섭니다. 바둑이도 고양이도 주인을 따라 방앗간에 마실 나온 날, 두툼한 옷차림을 하고 나온 이들의 얼굴이 아주 밝아요. 오랜만에 만난 이웃들과 그간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지루한 기다림도 금방 끝나죠. 할머니 방앗간이 이른 아침부터 북적북적 바쁘게 돌아가는 오늘은 바로…

할머니네 방앗간

길쭉길쭉한 가래떡이 쭉쭉 나오는 날이거든.

방앗간 기계에서 쉴 새 없이 이어져 나오는 길쭉한 가래떡, 보기만 해도 든든해집니다. 인심 좋은 할머니의 넉넉한 웃음, 모두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을 한 입 베어 물면서 행복하게 웃고 있어요. 들썩들썩 바쁘고 유쾌한 풍경에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금방 나온 말랑말랑 따끈따끈한 가래떡, 저희 친정에서는 참기름 동동 띄운 간장에 콕콕 찍어 먹었어요. 결혼하고 나니 어머님은 금방 뽑은 가래떡을 조청과 함께 주시더라고요. 어떻게 먹어도 쫀득쫀득 맛난 가래떡, 어린 시절의 설날은 가래떡과 함께 찾아왔어요.

할머니네 방앗간

그렇게 겨울이 가고 쑥 향기와 함께 방앗간에는 봄날이 찾아옵니다. 새 학년이 된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동네에 새로운 이웃들이 하나둘 이사를 오면 방앗간은 시루떡을 준비하느라 또 바빠집니다. 커다란 떡판 가득한 시루떡, 한 입 뚝 떼어먹고 싶어지네요. 학교 갔다 와서 종이 접시 위에 반쯤 남은 시루떡을 보면 한 입 베어 물면서 ‘옆집에 누구 이사 왔어?’하고 묻곤 했죠. 떨어진 팥고물을 떡에 콕콕 찍어 먹으면서요.

금방 쪄낸 시루떡을 어깨를 들썩이며 척척 가르는 큰엄마, 꼬불꼬불 파마머리, 빨간 고무장갑, 일하기 좋게 꽃무늬 스웨터 소매를 척척 걷어올린 큰엄마는 분명 싱글벙글 웃고 있을 거예요.

편안하게 그려낸 그림이 누구나 쉽게 드나드는 동네 방앗간처럼 푸근해 보입니다. 수채화 그림과 함께 부분부분 실사 사진을 이용해 풍성한 느낌을 살린 점도 돋보이고요.

할머니네 방앗간

방앗간의 여름은 미숫가루와 함께 찾아와요. 쌀, 보리, 콩, 깨가 돌아가는 방앗간 기계에서는 드르륵드르륵 신나는 소리가 납니다. 계절마다 다른 재료들이 찾아오는 방앗간, 이웃들의 삶의 향기로 풍성한 방앗간은 계절마다 소리도 냄새도 맛도 다 달라집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엔 햇볕에 잘 말린 고추를 빻느라 바쁘게 보내고 나면 곧이어 추석이 돌아와요. 할머니네 방앗간에 다시 밤늦도록 불이 꺼지질 않습니다. 방앗간 들마루에 잔뜩 쌓인 종이 상자들, 밤늦도록 고사리손까지 한몫 톡톡히 하며 만들어낸 추석 송편, 몸은 힘들지만 온 가족이 서로 도와가며 한마음으로 만들어낸 떡입니다.

할머니네 방앗간

쉴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방앗간에 어느새 다시 겨울이 찾아왔어요.

절로 몸이 움츠러드는 추운 겨울날
우리 할머니 어깨가 들썩들썩거리면
또다시 설날이 다가오는 거야.
내가 형아가 되는
설날이.

소복소복 눈 내리는 날, 하얀 눈이 골목길을 덮고 눈 지붕을 만든 날, 연 날리는 아이도 고드름 칼싸움하는 아이도 마냥 즐겁기만 한 계절입니다. 눈이 와서 신나고 형아가 되어서 설레는, 무엇을 해도 마냥 즐겁고 신나는 아이들에게도 어김없이 새해가 찾아왔어요. 떡가루처럼 하얗게 날리는 눈 풍경으로 이렇게 할머니네 방앗간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리틀림 작가는 어린 시절 할머니네 방앗간의 풍경을 그림책 속에 그대로 담아냈다고 합니다. 1인칭 시점에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가까운 친구가 들려주는 것처럼 다정하고 정겹게 느껴지는 건 몸소 체험하고 느꼈던 그 시절 이야기이기 때문이겠죠. 일기장을 펼쳐 보이듯 계절의 풍경과 그 시절의 추억을 정겹고 따뜻하게 들려주는 그림책 “할머니네 방앗간”, 동네 작은 방앗간에 흐르는 시간들 속에 향수와 추억이 스며들어있는 포근하고 따스한 그림책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0 0 votes
Article Rating
알림
알림 설정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모든 댓글 보기
0
이 글 어땠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x